근미래인 2060년의 서울을 배경으로 한 연극 <워크맨>은 ‘걷지 않고 일하지 않아 발생한 비극’을 보여준다. 미래의 현대인들은 고도로 발달한 기술과 이상기후 속에서 대다수가 정신질환을 안고 산다. 우울증은 성인병처럼 흔해져 누구나 관리해야 할 ‘익숙한’ 질환이 되어 있을 정도다. AI의 발달로 <워크맨> 속 서울 시민들은 주 3일, 일일 세 시간만 일하면 된다. 출근 일수가 줄어드니 나가서 걸을 일도 줄어든다. 안드로이드 로봇 알마가 상용화되어 집안일을 비롯해 인간의 각종 편의를 돌봐준다. 대부분의 인간이 할 일 없이 시간만 남아도는 상태다. 야외로 나가 여가를 즐기기에는 기후위기가 발목을 잡는다. 날씨는 하루 안에도 몇 번씩 바뀔 정도로 변덕스럽다. 게다가 비가 오면 2060년의 인간들은 극심한 우울과 불안을 느낀다. 이에 정신건강의학 전문의 ‘김민준’은 ‘워크맨 운동’을 창시한다. ‘워크앱’ 공지 방송으로 당일 일조량이 가장 많은 장소를 알린다. 현대인들이 바깥에서 햇빛을 쬐며 걷기를 독려한다. 워크앱 사용자들은 매일 아침 자신의 심리 상태에 맞는 약과 걸음 수를 처방 받는다.
민준의 딸 ‘김 시트왓 설린’은 우울증이 회복되어 간다 믿었던 엄마의 자살로 인한 트라우마가 있다. 아빠가 전문가임에도 엄마를 살리지 못했다고 생각하기에 아빠의 워크맨 운동에도 회의적이다. 중증 우울증 환자인 설린은 등장인물 중 가장 자살사고가 심하지만 친구인 로봇 AS 기사 ‘정하루’가 소원을 이루는 데에는 보탬이 되고 싶어한다. 하루는 부모의 기대 때문에 키즈유튜버로 활동했으나 부모님의 논란 탓에 영문도 모르고 야유 속에 활동을 접어야 했던 과거가 있다. 때문에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들을 부담스러워하며 먼 나라로 떠나고 싶어한다. 성인 ADHD 진단을 받은 ‘김도윤’은 직장에 자주 지각하여 AI 감독관에게 낮은 근태평가를 받는다. 도윤은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종종 아슬아슬한 발언을 해 호감을 잃거나 충동성 때문에 문제를 만든다. 도윤은 하루의 낯익은 얼굴을 빤히 보며 어디서 봤는지를 꼭 맞추려 든다. 이런 행동이 하루의 분노조절장애를 자극한다.
‘한유리’가 겪고 있는 만성 불면증의 원인은 양어머니 ‘최미연’과의 관계에서 오는 심리적 문제로 암시된다. 미연은 현재 유리와 하니의 결혼 추진에 더 적극적이지만 한때는 유리가 동성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외면한 적이 있다. 엄한 어머니 밑에서 자라며 자기 자신을 그대로 인정받지 못했다는 유리의 좌절감과 불안감은 여전히 유리의 무의식과 수면에 영향을 미친다. 베트남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하니는 평소 쾌활한 성격이다. 그러나 자신이 두 나라 모두에 잘 녹아들지 못하고 타자화되는 것을 느낄 때면 하니는 극심한 정체성 혼란을 느낀다. 이 혼란스러움은 하니가 좀 전까지 잘 구사하던 한국어 어순을 뒤섞어 낯선 언어처럼 구사하는 것으로 표출된다. 103세로 극중 최고령자인 미연은 노인 우울증에 걸려 있다. 청년도 생산적인 활동을 하기 힘든 시대인데 기술 발달로 인간의 기대수명은 늘어간다. 권태롭고 무기력한 삶을 더 연장하고 싶지 않은 미연은 안락사 심의 과정을 기다리는 중이다.
워크앱을 둘러싼 인물들의 정보가 풀리고 난 후 가장 먼저 인식된 것은 인물 별 말하기 능력이다. 우선 AI 상용화 전부터 사회생활을 했을 나이대의 인물들, 즉 최미연과 김민준은 낯선 타인과의 대화도 어색함 없이 이어간다. 그 다음으로 노인심리상담사로 일하는 하니도 (정체성 혼란을 느낄 때가 아니면) 말에 막힘이 없다. 재건축 동의서를 면대면으로 받으러 다니는 유리와 어릴 적 유튜버였던 하루도 고객(혹은 서명 대상자)과의 대화가 어렵지 않다. 문제는 타인과의 상호작용에서 자주 마찰을 일으키는 도윤과 중증 우울증으로 인해 집밖에 잘 나가지 않던 설린이다. 직장에서 만난 두 사람이 대화를 할 때면 대화를 나누는 게 아니라 서로가 놀란 가슴을 안고 소리를 지르는 것만 같다.
하나에 꽂히면 타인의 싫은 기색을 잘 읽지 못하는 도윤은 설린에게 궁궐의 높은 계단에 올라가보라고 강권한다. 높은 곳에서 설린은 자살충동을 느낀다. 집안에서도 식탁에 올라가 창문을 보고 있자 설린의 행동과 생체 반응 데이터를 감지한 알마가 AI 시스템으로 집의 모든 창문을 잠궈버린다. 이때 알마는 인간의 안전 면에서 상당히 유용해 보인다. 그러나 알마의 시스템은 설린이 자기 감정을 분출할 틈을 주지 않는다. 알마가 설린의 안정을 위해 클래식 음악을 틀어줄 때는 개인적으로 열이 받았다. ‘몇 초 전까지 자살 생각하고 있었는데 무슨 클래식 음악이야. 심박수만 떨어지면 다야.’ 이런 생각이 들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알마는 인간도 아니고 전문 심리상담사도 아니다. 설린이 알마의 시스템 내부에 입력된 ‘적정 수치 이상으로’ 크게 울고 화냈다면 그것은 위험한 소동으로 간주되어 설린의 행동은 억제되었을 것이다.
격한 감정을 즉시 내보내는 것은 관계를 망가뜨릴 수 있다. 자기 상처를 말하는 일은 그 자체로 아프고 두렵다. 말하기에 앞서 수치심이 자극되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자주 마음을 숨긴다. 그러나 슬픔, 분노, 우울, 절망과 같은 고통스러운 감정을 인간의 몸 안에 영원히 묵혀두어서는 안 된다. 화병이란 병이 괜히 생겼겠는가. 인간에게는 감정을 표현하고 분출할 시간과 기회가 필요하다. 때로는 이런 감정 분출에 오랜 시간과 사유가 할애되어 부정적인 감정이 예술로 승화되기도 한다. 글, 그림, 춤, 더 복합적인 매체를 통한 표현까지. 그러나 가장 기본적인 것은 말하기다. 가장 바람직하게는 믿고 의지하는 사람에게, 하다못해 대나무숲에라도. 사람은 터놓고 말할 곳을 필요로 한다.
마음 놓고 쉴 수 있는 곳이 나올 때까지 발걸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런 곳이 세상에 있기는 한 것인지도 알 수 없었지만 말이다. 그나마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걷다 보면 정처 없는 행군도 견딜 만했다.
- 루리, <긴긴밤>, pp. 61-62
김민준 박사는 아내의 죽음에서 받은 충격으로 ‘현상 유지가 최선’이라는 믿음 아래 워크맨 운동을 운영 중이다. 약물 치료는 뇌의 호르몬 불균형 문제 개선에 도움을 주고, 햇빛을 받으며 걷는 행위도 심신의 건강에 좋은 영향을 준다. 그러나 병인으로 명확한 환부가 있을 때는 그 부위에 처치를 해줘야 한다. 환부가 마음에 있을 때는 내면의 상처를 직면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는 때때로 생존을 위협하는 괴로운 일이기도 하다. 상처를 보고 다시 죽고 싶어지는 사람들도 있으니까. 그럼에도 워크앱 처방에 한계를 느끼는 사용자들이 늘어난다. 약을 먹어서 감정을 제어하기만 하면 다 되는 걸까? 왜 열심히 걷는데도 계속 잠을 잘 수 없을까? 현상 유지가 최선이라기에는 사람들은 이미 물이 다 찬 채로 움직이는 물잔 같다. 억압된 감정이 한 방울만 더해져도, 혹은 물잔에 조그마한 충격이 가해져도 찰랑이는 물은 곧장 흘러넘쳐 손을 적실 것이다. 지금 가슴에 묵직하게 자리잡아 나를 자꾸만 무겁게 가라앉히는 이 상처를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다면, 나아질 거라는 희망이 점점 신기루처럼 느껴진다면 무엇을 위해 걷는 걸까?
한편 인턴 설린의 회피 행동 탓에 도윤은 직장에서 불이익을 겪는다. 사과하고 싶다는 설린의 말에 도윤은 오늘의 워크맨 운동 장소에 와서 직접 사과하라고 말한다. 하필 그날 일조량이 가장 많은 곳이 설린의 엄마가 투신한 전곡항이다. 설린은 처음에 주저하지만 놀랍게도 전곡항에서의 약속을 피하지 않는다. 불면증이 도통 낫지 않는 유리는 조용히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다 엄마 미연과의 관계를 개선하려 한다. 안락사 집행일까지 기다릴 수 없는 미연은 스스로 목숨을 끊을 마음을 먹는다. 각자의 요동치는 감정을 안고서 모든 인물들이 전곡항에 모인다. 그리고 예보와 다르게 비가 내린다. 밝음을 기대했던 모두가 혼란에 빠진다.
설린의 걸음은 성난 파도 앞에서 멎는다. 자신을 살리고 싶은 마음과 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항상 싸우던 설린은 파도치는 바다를 보고 후자의 마음이 이겼음을 인정하며 바다에 뛰어든다. 바다에 사람이 투신했다는 경보음이 울리고 사람들이 모여든다. 사람들이 걱정스럽게 말한다. ‘죽으면 안 되는데. 꼭 살았으면 좋겠어.’ 생을 마감할 작정이었던 미연조차도 누군가의 투신 장면을 보고 죽겠다는 생각도 잊고 얼굴도 모르는 사람의 생존을 빈다. 구조 로봇 알마가 설린을 바다에서 건져올리고 응급 처치를 한다. 깊은 바다에서 돌아온 설린이 숨을 토해내고 사람들이 다행스러워하는 장면으로 연극은 끝을 맺는다.
우울증은 흔히 바다에 비유된다. 우울증이 있는 사람들은 마음이 고통스러울 때 파도에 휩쓸리는 기분을 느끼고, 가망이 없다는 생각에 빠질 때 깊은 바다 아래로 가라앉는 인상을 받는다. 죽을 것 같은 고통 속에서 느끼는 공포, 혹은 내가 나아지지 않을 것 같아 느끼는 무한한 슬픔 중에서 그래도 생존 반응과 연관되는 것은 전자였다. 우울증이 심각한 환자는 모든 것이 버겁기 때문에 자살시도를 할 힘도 없다고 한다. 그래서 어느 정도 기력을 되찾았을 때가 더 위험할 수 있다. 설린의 엄마가 이런 경우에 해당한다. 전곡항에서 만나기를 거부하지 않은 설린도 외출과 인턴 활동을 통해 마음의 힘이 다소 생긴 상태였다. 물론 회복 추세에 막 접어든 것 치고 생각보다 빠르게 트라우마와 직면하게 되었지만 설린은 자신을 고립시키던 기술에 의해 구조된다. 우울의 바다에서 돌아온 설린은 앞으로도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새로운 고통과 만날 테지만, 바다에 영영 잡아먹히지 않은 경험도 생겼으니까.
연극이 끝나고 천착하게 된 지점은 자기도 죽고 싶거나 괴로운 상태이지만 타인이 죽을 위기에 처했을 때 그 사람의 무사귀환을 바라던 마음들이다. 인간이라면 모두가 살아가는 것이 결과적으로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것임을 안다. 유한한 생을 타고났기에 갖는 동질감이 있다. 죽음의 위기를 가까이서 접했을 때, 위험에 처한 사람의 공포가 남같지 않고 그에게 연민이 드는 이유다. 이 공포심과 연민 속에서 모순적이게도 생존본능이 일깨워진다. 죽고 싶었던 사람들에게마저도. 꺼져가던 삶의 욕구가 여즉 최소한의 자생력을 갖고 있음을 알게 되는 순간이다.
흔히들 문학은 생각할 거리를 준다고 한다. 근미래 SF 장르는 현실과 벌어진 거리 만큼 감상자가 생각할 틈(공간)을 준다는 것을 연극 <워크맨> 감상을 통해 알게 되었다. 시차로 인해 생긴 공간은 창작자가 어떤 설정으로 채우는가에 따라 생동감이 달라진다. <워크맨>은 정신건강의학 전문의의 감수로 이 벌어진 세상의 개연성을 뒷받침했다. 인물마다 가진 정신질환의 특징이 인물 간 상호작용 속에서 부딪히며 사건을 일으키는데 그 흐름이 자연스러웠다. <워크맨> 연출 특유의 리듬감은 감상의 재미를 더했다. 배경음악과 맞아떨어지는 배우들의 움직임, 등장인물들의 자연스러운 등장과 퇴장에서 연출의 관록이 엿보였다.
유의미한 노동을 박탈 당할지도 모르는 인류는 앞으로 무엇에서 생산성을 찾고 삶의 의미를 일구어 나가야 할까? 아직 답을 하지 못하더라도, 많은 것이 바뀌어 혼란스러울 미래에도 사람 간의 소통과 교류가 필수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기술이 발달되어도 인간의 마음은 다른 인간의 마음에 기대어 사니까. 내가 남에게 기댄 후에는 남이 내게 기대니까. 서로 어깨를 내어주는 삶을, 고립과 단절이 더 쉬워지는 세상에서 어떤 형태로 지켜갈 것인가. 고민은 또다시 벌어진 세상에서 돌아온 우리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