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J컬쳐의 뮤지컬 <파가니니>가 삼연으로 돌아왔다.
이 작품은 뛰어난 연주 실력으로 인해 악마와 결탁했다는 의혹을 받았던 비르투오소, 니콜로 파가니니의 생애를 다룬다. 극은 그의 아들 아킬레 파가니니와 신부 루치오 아모스의 재판으로 시작된다. 아킬레는 자신의 아버지가 악마가 아니었음을 피력하며 교회에 매장될 수 있기를 바라는 청원을 작성했고, 루치오는 파가니니를 악마라 규정하며 이를 거부한다.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관객들은 파가니니의 삶의 여정을 함께 따라간다. 그의 유년 시절과 사랑, 음악에 대한 순수한 열정을 지켜보는 동시에, 그가 어떻게 악마로 매도되는지, 그리고 군중들의 시선과 소문이 어떻게 그를 추락시키는지를 목격하게 된다.
악마의 스타성, 파가니니
이 뮤지컬에서 가장 설득력을 가져야 하는 부분은 '인간을 어떻게 악마로 매도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지점이다. 21세기를 살고 있는 현대의 관객들에게 '악마'라는 존재는 다소 비현실적이기 때문이다. 단지 뛰어난 재능을 가졌다는 이유로 악마와 결탁했다고 믿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나 극이 가리키는 본질은 악마 그 자체가 아니라 '마녀사냥'에 있다.
마녀사냥은 21세기에도 여전히 자행된다. 오히려 19세기 당시보다 훨씬 더 교묘하고 악의적이며, 막기 힘든 방식으로 일어난다. SNS를 통해 확산되는 허위 정보, AI로 생성된 정교한 딥페이크 기술, 논리적이진 않지만 자극적이고 흥미로운 루머들이 이를 대변한다.
악마를 두려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구경하고 싶어 하는 대중들, 소문을 맹신하는 자들과 그 소문을 이용해 사익을 취하려는 자들. 이 다양한 욕망의 시선 속에서 스타는 서서히 말라간다. 그러면서도 자신을 진정으로 바라봐 줄 단 하나의 시선을 하염없이 기다린다.
뮤지컬 <파가니니>는 이처럼 19세기 비르투오소의 삶을 조명하며, 시대를 관통하는 스타의 숙명과 고독을 바라보게 만든다.
전율로 증명한 '악마의 연주'
서사 속에서 맴도는 '악마의 의혹'이 관객에게 감정적인 해소와 당위성을 부여하려면, 무대 위의 파가니니가 실제로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듯한 연주를 선보여야만 한다. 그리고 타이틀롤을 맡은 KoN은 무대 위에서 이를 완벽하게 증명해 낸다.
공연을 보는 관객들은 이미 이성적으로 그가 악마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극 중에서 묘사된 그의 인간적인 고뇌와 아픔도 전부 지켜보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대 위에서 폭발하듯 펼쳐지는 그의 바이올린 독주를 직면하는 순간, 객석에는 기묘한 침묵과 전율이 감돈다. 당대 사람들이 왜 그를 보며 '정말 악마와 계약한 것이 아닐까' 하는 경외감 섞인 의심을 품을 수밖에 없었는지, 굳이 대사로 설명하지 않아도 온몸으로 납득하게 되는 순간이다.
'마지막 7분, 전율의 무대'라는 뮤지컬 <파가니니>의 메인 홍보 카피는 결코 관객을 현혹하기 위한 과장이 아니었다.
화려하고 압도적인 연주를 통해 예술의 정점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 온기 없는 환호 뒤에 가려진 인간 파가니니의 쓸쓸한 고독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참으로 밀도 높은 여운을 남기는 무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