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파가니니>를 관람하고 나오는 길에 한 가지 상상을 하게 되었다.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 파가니니의 재능을 얻을 수 있다면, 나는 그렇게 할 것인가.
물론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넘긴다’라는 단어가 주는 무거움이 있는지라, 쉽사리 파가니니의 재능을 얻길 선택하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뮤지컬 <파가니니>도 30여 년 동안 매장을 금지당한 파가니니의 모습에서 시작하지 않는가. 죽어서까지 악마라 불리는 게 유쾌할 리 없다. 그럼에도, 재능과 천재성과 동경에 목말라 악마에게 영혼을 팔겠다는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나는 한 가지 물음을 던지고 싶다.
당신은 파가니니가 될 수 있는가?
뮤지컬 <파가니니>는 죽은 지 30여 년이 지났음에도 아직 땅에 묻히지 못한 그의 모습에서 시작한다. 교회가 파가니니에게 내린 죄목은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 얻은 재능으로 사람들을 현혹했다.’ 파가니니의 아들 아킬레는 이러한 아버지의 오명을 씻고, 매장을 허락받고자 파가니니의 일생을 우리 앞으로 끌어올린다.
파가니니는 ‘악마의 재능’을 가진 바이올리니스트다. 사람들은 그들의 상식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파가니니의 재능을 입에 담고자 그러한 수식언을 붙어 주었으나, 그때까지만 해도 정말로 그를 악마라 생각하는 이들은 소수였다. 파가니니가 교회와 이단 심문관들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은 다름 아닌 ‘사람’과 ‘사람’과의 사건 때문이다.
야심만만한 젊은 사업가 콜랭은 파가니니와 함께 그의 이름을 딴 카지노를 설립하여 큰 돈을 벌어들일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파가니니의 반대와 함께, 카지노 설립 허가는 불발되고 만다. 그러자 콜랭은 이단 심문관 루치오를 찾아간다. 그의 입을 통해 파가니니의 재능은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 얻은 재능, 파가니니의 바이올린은 악마의 바이올린으로 변모한다.
사람들은 ‘악마’ 파가니니의 연주를 감상하려 찾아오고, 그 연주에 매혹되며, 그를 손가락질한다. 시기와 질투, 그리고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천재성이 악마의 것이 되는 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파가니니> 속 콜랭과 루치오 두 인물은 파가니니를 무너트리려 한다는 점에서는 공통된 목적을 가지고 행동한다.
다만 콜랭은 파가니니의 재산을 탐한다는 자신의 지극히 개인적인 욕망으로 행동한다면, 루치오는 파가니니가 정말로 악마와 계약했다고 믿어, 그를 회개시키고 사람들을 구하려 행동한다는 점이 다르다. 루치오는 말한다. 파가니니가 자신이 악마임을 인정하고 회개한다면, 이 모든 상황이 끝나고 그가 더 심한 일을 당하지 않으리라 진심으로 조언하고, 또 진심으로 믿는다.
잘못된 신념을 굳게 믿는 자의 목소리는 강렬하다. 이단 심문관과 종교 재판이 가지는 의미가 큰 파가니니의 시대에, 루치오의 진심 어린 설득을 외면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파가니니는 자신이 ‘악마’라는 것을 끝내 인정하지 않는다. 그것은 자신의 재능이 ‘악마’라는 타인의 것임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자, 자신의 재능이 자신의 것임을 스스로 굳게 믿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다. 이것이 내가 위에서 파가니니가 될 수 있느냐는 물음을 던진 이유이다. 악마의 재능은 가질 수 있지만, 파가니니와 같은 확신을 가지는 것은 다른 문제이기에. 우리는 파가니니를 기억하게 된 것이다.
뮤지컬 <파가니니>는 분명 추천할 만한 좋은 공연이다. 필자는 액터 뮤지션인 KON(콘)의 공연을 보았는데, 그가 연주하는 7분 가량의 파가니니 음악은 어디서도 쉽게 보지 못할 신선하고 충격적인 경험이었다. 뿐만 아니라 루치오, 콜랭, 아킬레, 샬롯 등의 인물들도 충분한 개연성을 가지고 살아 노래한다. 액자식 구성으로 전개되고 있지만 복잡하지 않아 뮤지컬을 많이 접해보지 않은 이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아들 아킬레가 들려주는 파가니니의 이야기가 과연 파가니니라는 한 사람을 조명하기에 적절했는가에 관한 의문이 남는다. 관객들은 악마의 재능을 가진 이 바이올리니스트의 인생에 공감할 준비를 마쳤지만, 뮤지컬 <파가니니>는 도무지 그 속을 잘 내보이지 않는다.
‘악마의 재능’을 가진 연주자 파가니니는 볼 수 있을 것이지만, ‘인간’ 파가니니는 볼 수 없을 것이라고, 그 시대의 파가니니가 말하는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