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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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든 여성 배우가 말하는 동물보다 영화 주연을 맡기가 어렵다는 기사를 본 적 있다. 영국의 연령차별 반대 캠페인 측에서 2023년부터 2025년까지 영국에서 개봉한 최고 흥행작 100편을 조사했을 때 60세 이상의 여성이 주연을 맡은 영화는 5편에 불과했으나 인간 언어를 구사하는 동물이나 초자연적 생명체가 주연으로 등장하는 영화는 약 20편에 달했다. 또한 지난 10년간 영국 영화에서 65세 이상 여성 캐릭터가 등장하는 비율이 같은 연령대의 남성 캐릭터보다 3배 이상 낮으며, 50세 이상 여성 캐릭터는 같은 나이대의 남성 캐릭터보다 대사량이 14% 적었다.

 

우리나라도 나이든 여성 예술인의 자리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다. 지난 3년간 개봉한 한국 상업영화 100편을 분석했을 때 촬영 당시 50대 이상인 여성 배우가 주연을 맡은 영화는 약 19편으로 50대 이상 남성 배우 주연 작품 45편에 비해 턱없이 부족했다. 또한 공식 주연으로 등록되어 있어도 극 중 활약이나 비중 면에서 조연 수준에 머무는 영화가 다수이다. 누군가의 아내나 노모와 같은 종속적인 캐릭터다. 유튜브 예능 '도시여자대피소 EP.03'에 출연한 배우 고아성은 기혼 여배우는 캐스팅 단계에서부터 제약이 있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외모지상주의의 제약을 보다 많이 받는 여성에게 노화란 단순한 신체 기능 저하가 아닌 인간으로서의 쇠퇴와 배제에 가깝다. 물론 노인이 차별에 시달리는 사회적 약자라지만 수전 구바의 말처럼 노화의 이중 잣대는 세상이 여자의 몸을 남자의 몸보다 더 일찍 늙었다고 평가하며 더 역겨운 것으로 본다는 서글픈 사실의 증거다. 작가는 여성의 노화와 관련된 고정관념을 상쇄하는 것은 노년 자체의 일상적인 상실, 쇠약함과 장애, 질병, 고통, 그리고 잃어버린 벗들에 대한 애도에 뿌리내려야 한다고 말한다. 이런 현실적인 렌즈를 통해야만 우리는 나이든 여인들의 실존적이고 미학적인 생존 기술과 그 고뇌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이해해야 우리도 창조적 노년을 정의내리고 스스로 그런 노년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노인들은 일반적으로 간과되거나 경시당하지만, 노년기는 삶의 가장 창의적인 단계가 될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유아기와 유년기에 우리는 부모의 통제를 받는다. 청소년기와 청년기에는 교육이 우리 삶 대부분을 지배한다. 중년에는 흔히 가족의 의무나 직업적 의무가, 자녀나 일, 주거비나 대출, 부양해야 할 부모에 대한 책임들이 우선순위를 차지한다. 많은 사람이 더 나이가 들어서야 창조적 추구로 주의를 돌릴 수 있다. 장수하면서 노년기에도 창조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예술가들을 살펴보면 나머지 우리도 그럴 수 있게 도와줄 전략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메리 루 윌리엄스


 

여섯 살 때부터 탁월한 음악적 재능을 드러낸 메리 루 윌리엄스는 열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밴드 멤버가 되어 미국 중서부 지역으로 순회공연을 다녔다. 가정부로 일하는 어머니와 도박장을 드나드는 아버지를 본격적으로 부양하기 위해 공연을 하면서 밴드 멤버들로부터 차별을 받았다. 흑인 여성이라는 이유로 대화 자체를 거절당하거나 공연 보수조차 못 받는 일이 허다했다. 운전사 노릇과 멤버들의 손톱 손질까지 담당하면서도 악보에 작곡한 곡을 옮기는 방법과 즉흥 연주를 배웠다. 어느날 밴드의 피아니스트가 펑크를 내자 연주를 부탁받은 윌리엄스는 가는 길에 열차 차장에게 성폭행을 당했음에도 끝내 시카고까지 간 후 트라우마를 마주하면서 직접 작곡한 두 곡을 성공적으로 녹음했다. 이후 능력을 인정받은 윌리엄스는 여러 밴드로부터 초청받아 뉴욕에서 공연을 하기 시작했다.

 

1950년 즈음의 인종차별과 성차별 속에서도 음악 활동을 이어가던 그는 사별의 슬픔, 외로운, 자학에 빠져 사십 대 중반에 음악을 그만두고 가톨릭 신자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하지만 교회에서 음악을 통해 사람들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음을 깨닫고 재즈 찬송가를 작곡했다. 예순 살이 넘어서 새로운 꿈을 찾은 그는 1903년부터 여성은 전례 의식에도, 성가대에도 참여할 수 없다는 규칙이 바뀌는 과도기적 상황을 겪으면서, 공연하는 교회에서 그의 활동을 반대하는 시위대를 만나기도 했다. 결국 그녀는 백악관에 초청을 받아 공연을 하고, 듀크대학에서 상주 예술가로 활동하게 되면서 생애 처음으로 고정적 급여야 자가, 건강보험을 예순일곱살에 갖게 되었다.

 

말년에 방광암 진단을 받은 후 수술과 항암치료, 방사선치료로 쇠약해진 몸으로도 음악 활동을 이어간 그는 집에서 호스피스 치료를 받다가 일흔한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삶은 가족 부양과 방황, 도전과 아픔을 딛고 앞만 보며 달린 청년기, 그리고 종교적 사명과 후대 예술가 양성을 목표로 한 노년기의 깊이 있는 '스윙'이었다. 종교라는 새로운 싹이 움트며 그의 삶에서의 고통을 예술로 승화하는 과정을 함께 걷다보면, 무언가에 진실로 공명하는 것이 예술가로서의 삶에서, 특히 노년기에 얼마나 위대한 소명이 되는지 알게 된다.

 

 

 

우리 할머니, 예술가


 

메리 루 윌리엄스의 행적을 읽으면서 유난히 외할머니가 떠올랐다. 젊은 날 4남매를 키우면서 아이들이 아직 성인도 되기 전 남편을 잃고 홀로 자식들을 키워낸 그는 현재 복한 문화예술인으로 거듭났다. 플루트, 드럼, 색소폰, 통기타, 일렉 기타, 클라리넷 등 수많은 악기를 문화센터에서 꾸준히 배우며 주기적으로 공연도 올리고, 캘리그라피나 수채화 등 미술 활동도 해오고 있다. 나도 외할머니의 1호 플루트 제자로서 할머니가 아끼는 플루트를 물려받아 8년 정도 배우다 어느 순간부터 그만두게 되었는데, 이를 눈치 챈 외할머니가 다시 내게서 플루트를 회수해 다시 연주를 즐기고 있다.

 

그리고 외할머니도 윌리엄스처럼 교회를 매우 열심히 다니고 있는데, 교회에서 드럼 연주까지 맡을 정도로 열정적이다. 멀리 사는 손녀라 자주 찾아뵙지는 못하지만 찾아뵐 때마다 건강하라고 손을 꼭 잡고 기도해주신다. 가끔 깜짝 선물 삼아 찾아가려고 하면 문화센터 사람들하고 노느라 바쁘다고 자리를 비우곤 한다. 누가 이 사랑스러운 단발머리 할머니를 보고 노년 여성의 삶이 단조롭고 쇠퇴했다고 하겠는가? 결국 살아있기만 하다면 우리는 얼마든지 삶을 예술로 만들어낼 수 있다.

 

예술가는 은퇴하지 않는다. 그 형태가 변할 뿐이다. 이 변이를 지나치게 두려워하다간 노년의 아름다움을 맛보지 못하고 말 것이다. 젊을 때만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이 있다면, 늙어서야만 얻을 수 있는 기쁨이 있다.

 

안타까운 것은 사람들이 노화를 너무나도 두려워한다는 데에 있다. 영화 <서브스턴스>에서도 반짝거리던 젊은 여배우가 중년이 되어 노화를 맞이하여 겪는 괴로움을 다루는데, 결국 더 나은 '나'를 만들기 위하여 위험한 약물에도 손을 댄다. 이는 순전히 개인의 루키즘적 문제에만 집중할 게 아니라, 노인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태도, 특히 여성과 관련하여 사람들이 말을 얹는 방식에 대한 것이다. 노인이 되면 쓸모없는 사람 취급을 받고, 더이상 무언가를 생산할 수 없는 '멈춤' 상태로 여겨진다. 그렇게 누구도 더이상 나를 동경하거나 내게서 매력을 느끼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에 모든 걸 회피하고픈 충동에 휩싸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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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하면, 출산을 하면, 육아를 하면, 나이가 들면. 주름이 패이고 관절은 약해진다. 머리가 하얗게 세고 하루가 길어진다. 이것을 마냥 아름답게만 보라고, 이것을 피하고픈 마음이 드는 당신을 나무라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시간을 들여 받아들여야 한다. 저자는 2008년 난소암 진단과 동시에 6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고 수술과 항암 치료를 견디며 시도한 임상 실험에서 성공적으로 생존하며 현재까지 문학비평가로서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그 역시 예상치 못한 노년기를 안겨준 기적의 약물뿐만 아니라 '정상적으로' 늙은 다른 노인에 비해 더 많이 쇠약하고 더 외로워질 이후의 노년기에 대한 두려움이 이 책의 뿌리라고 밝힌다.

 

저자가 9명의 여성 노인 예술가의 삶을 한 권의 책에 담은 원동력도 매일 새로운 상실을 예감하며 눈뜨는 노년의 삶에 대한 공포를 상쇄하기 위해, 충분히 예견되는 시련들에 대처할 긍정적 자극을 찾아나서기 위함이었다. 노년은 흔히 세상의 종말처럼 여겨지지만, 당연하게도 아직 막이 내린 것은 아니다. 노년까지 살아남은 여성들의 말은 대체로 일허버린 신체 기관과 소중한 사람들마저도 삶을 아예 앗아가지는 않는다는 것이었다. 모 유명 빵집의 와르르 케이크처럼, 허물어져도 괜찮은 시기가 바로 노년이지 않을까 싶다.

 

쇼는 그들뿐만 아니라 나, 그리고 모두가 없이도 계속되리라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누군가 기억해줄 인생의 피날레를 준비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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