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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사랑이라는 이름을 의심하기 - 로테/운수

주변 인물로 머물렀던 두 여성을 서사의 중심에 세워, 사랑과 헌신이라는 오래된 언어를 다시 묻는다.

by 정충연 에디터
2026.06.07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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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읽었던 동화와 소설들은 당시에는 즐거움과 교훈을 주는 이야기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뒤 다시 생각해보면, 그 안에는 쉽게 지나칠 수 없는 장면들이 있다. <선녀와 나무꾼>에서 선녀의 옷을 훔친 나무꾼의 행동은 과연 순박한 사랑으로만 볼 수 있을까. <잭과 콩나무>에서 하늘 위에 살던 거인의 금은보화를 빼앗은 잭은 정말 용감한 주인공이기만 할까. 이처럼 고전은 시간이 지날수록 새로운 관점으로 파고들 틈을 드러낸다.

 

연극 <로테/운수> 역시 마찬가지다. 익숙한 서사의 이면을 들여다보며, 우리가 사랑과 비극이라는 이름으로 미처 묻지 않았던 질문들을 다시 무대 위에 올린다.

 

<로테/운수>는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을 페미니즘 관점에서 재해석한 작품이다. 두 원작에서 로테와 운수는 남성 주인공의 감정과 비극을 설명하기 위해 존재하는 인물에 가까웠다. 로테는 베르테르의 고통을 완성하는 대상이었고, 운수는 김첨지의 뒤늦은 후회와 비극성을 극대화하는 존재였다. 그러나 이 연극은 질문의 방향을 바꾼다. 베르테르의 사랑은 로테에게 무엇이었는가. 김첨지의 분노와 폭력 속에서 운수는 어떤 삶을 견뎌왔는가.

 

작품은 남성의 감정이 중심이었던 고전의 언어를 걷어내고, 그동안 주변에 놓였던 여성의 몸과 감각, 침묵을 이야기의 중심에 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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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테>는 장미꽃 한 송이에서 시작된다. 낭만적 선물처럼 보이는 장미는 이 작품 안에서 불안의 표식이 된다. 로테는 젊은 나이에 대학의 미술사학과 부교수가 된 인물로, 자신의 커리어와 삶을 구축해온 여성이다.

 

그러나 반복적으로 침입하는 타인의 감정은 그의 일상을 흔든다. 누군가에게는 ‘애정 표현’으로 포장될 수 있는 행동이 당사자에게는 감시와 공포가 될 수 있음을 작품은 차분히 보여준다. 특히 로테를 더욱 고립시키는 것은 스토커의 행위만이 아니다. “인기 좋다”, “네가 여지를 준 것 아니냐”는 식의 주변 반응은 폭력의 책임을 피해자에게 되돌린다. 작품은 이 지점에서 스토킹을 단순한 범죄 사건이 아니라, 여성에게 끊임없이 ‘피해자다움’을 요구하는 사회적 시선의 문제로 확장한다.

 

<운수>는 <운수 좋은 날>의 비극을 전혀 다른 자리에서 다시 읽게 만든다. 원작에서 김첨지의 거친 말과 행동은 종종 가난과 사랑의 뒤틀린 표현으로 해석되어 왔다. 하지만 이 연극은 그 언어를 낭만화하지 않는다. “오라질 년”이라는 말, 반복되는 폭력, 가정을 지킨다는 명목 아래 누적된 고통은 더 이상 남성 인물의 비극을 장식하는 배경이 아니다.

 

운수는 오랜 가정폭력 끝에 남편을 살해하고 법정에 선다. 중요한 것은 그가 ‘왜 죽였는가’라는 자극적인 질문이 아니라, 왜 그에게 다른 길이 충분히 주어지지 않았는가 하는 질문이다. 작품은 운수를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단순한 이분법에 가두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자신을 지켜야 했던 사람으로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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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의 힘은 고전을 현대적으로 바꾸는 방식이 단순한 설정 전환에 머물지 않는다는 데 있다.

 

<로테/운수>는 원작의 유명한 남성 주체를 여성으로 대체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원작이 당연하게 사용해온 언어의 질서를 의심한다. 순애보, 가장의 고단함, 아내에 대한 뒤늦은 사랑, 낭만적 집착 같은 말들이 누구의 입장에서 아름다운 것이었는지를 묻는다. 그 질문은 오늘의 현실과도 맞닿아 있다. 스토킹이 사랑으로 오인되고, 가정폭력이 사적인 문제로 축소되며, 여성의 고통이 참고 견뎌야 할 일로 처리되는 사회에서 이 작품은 고전을 빌려 현재를 정면으로 비춘다.

 

무대가 두 여성의 말과 침묵에 집중한다는 점도 인상적이다.

 

많은 사건을 나열하거나 폭력을 과장하기보다, 작품은 인물 안에 축적된 시간의 밀도를 따라간다. 로테의 불안, 운수의 분노, 그리고 두 인물이 끝내 붙들고자 하는 생존의 감각은 관객에게 쉽게 소비되는 비극이 아니라 오래 남는 질문으로 다가온다. 여성 배우 2인이 이끄는 구성은 이러한 밀도를 더욱 선명하게 만든다. 남성 인물들이 부재하거나 주변화된 자리에서, 오히려 그들의 말이 남긴 상처와 구조가 또렷하게 드러난다. 침묵했던 여성들이 말하기 시작할 때, 고전은 비로소 다른 얼굴을 갖는다.

 

결국 <로테/운수>는 오래된 이야기를 오늘의 언어로 번안한 작품이자,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가려져 온 폭력을 다시 부르는 작품이다. 이 연극은 고전을 파괴하지 않는다. 다만 그 안에서 지워진 사람들을 불러내고, 우리가 미처 듣지 않았던 목소리를 들려준다.

 

그래서 <로테/운수>의 성취는 분명하다. 남성의 고통을 중심으로 조직되었던 서사를 여성이라는 소외자, 약자의 자리에서 다시 써냄으로써, 고전이 여전히 현재적일 수 있는 이유를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사랑은 아름다운 말일 수 있다. 그러나 그 말이 누군가의 공포와 침묵 위에 세워져 있다면, 우리는 먼저 물어야 한다.

 

그것은 정말 사랑이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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