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물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세상엔 정말 다양한 취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누군가에게는 시간 때우기 용도도 안되는 작품이 누군가에겐 인생에 다시 없을 감동을 줄 수 있으니 말이다.
이야기의 전개 방식 또한 진한 호불호의 영역에 있다. 웹툰을 매일 보는 편인데, 웹 소설 등의 원작이 있는 경우 종종 새드엔딩이면 이만 작품에서 하차하게 결말을 스포해달라는 댓글을 보기도 한다. 해석의 여지가 없는 꽉 막힌 해피엔딩을 원하는 이들이 꽤나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당장 내 주변만 봐도 굳이 심란한 이야기가 아닌 가볍고 행복한 내용을 선호하는 이들이 꽤 많다. 골칫거리는 현실의 것으로 충분하기에 가상의 세계에서라도 마음 편하게 즐기고 싶다는 것이 이유이다.
사실 나는 이와 반대의 이유로 열린 결말, 혹은 현실적이거나 슬픈 결말을 좋아한다. 내가 영화를 보고 책을 읽는 이유는 너무나 많지만, 보통은 내가 겪을 수 없는 세상에 대한 신선한 자극, 마치 내 이야기를 보고 위로 받는 듯한 공감, 혹은 다양하게 생각을 할 여지를 주는 복잡성 등이 있다. 그런 점에서 동화처럼 가슴 따뜻해지는 이야기는 그만의 재미가 충분하지만, 나에게 있어서는 매력이 조금 떨어지는 것이 분명했다.
슈퍼히어로 영화를 즐겨보지 않는 것 또한 이런 맥락이었다. 많은 슈퍼히어로 영화를 본 것은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멋진 영웅이 나오는 영화의 특징은 이렇다. 우연한 혹은 특정한 계기로 슈퍼히어로가 탄생하고, 여러 역경을 겪지만 결국은 악당을 물리치고 세계를 구해내며 아름다운 결말을 맞이한다. 선과 악이 분명하며 늘 선이 이기는 세계이다.
얼마 전, 팀 버튼 감독의 ‘배트맨2’를 보았다. 1992년에 개봉했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유려한 영상미가 눈을 사로잡는 영화였다. 슈퍼히어로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가장 좋아하는 히어로를 굳이 꼽자면 늘 배트맨을 말하고는 했었다. 그리고 이 영화는 그 이유를 다시 떠오르게 만들어주었다.
배트맨 2에는 세 명의 중요 인물이 등장한다. 배트맨, 캣우먼, 펭귄맨이다. 배트맨은 히어로, 캣우먼과 펭귄맨은 악당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영화를 보면 볼수록 그들간의 경계는 흐릿해진다. 우선 캣우먼과 펭귄맨은 여타 히어로 영화 속 악당들과 사뭇 다르다. 그들은 단순히 ‘악’을 사랑해서 악당이 되지 않았다. 캣우먼은 어디서나 무시 당하며 직장에서는 여성으로서 차별을 받는다. 펭귄맨은 태어나자마자 부모에게서 버려져 퀴퀴한 하수구 속에서 펭귄들과 자란다. 캣우먼이 세상으로부터 인정을, 펭귄맨이 버려진 자신의 자아를 찾고 싶어 졌을 때, 그들은 악당으로 변했다.
배트맨은 영웅이지만 일반적인 히어로는 아니다. 그는 초능력이 없다. 한낱 인간이지만 스스로 개발한 여러 장비들을 이용해 싸운다. 또 그는 고뇌한다. 다른 히어로들이 망설임 없이 세상을 구하길 택할 때 배트맨은 영웅의 길과 자아를 찾는 길 위에서 갈팡질팡 망설인다. 어릴 적 괴한에 의해 부모가 죽은 뒤, 악의 소굴인 고담시를 구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브루스 웨인의 자아와 배트맨의 자아 속에서 무엇이 진짜 자신인지 확신하지 못하며 어느 쪽이든 가면을 쓰고 행동하는 스스로에게 분열과 답답함을 느낀다.
그렇기에 그는 악당인 캣우먼에게 동질감을 느끼고 이해 받기를 원한다. 배트맨을 내려놓고 가면을 벗는 장면은 그에게 일 순위가 단지 세상을 구하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정형화 된 ‘정의’를 위해서 영웅적 행위를 하는 여타 히어로들과 아주 상반되는 지점이다. 진정으로 자신을 이해 받을 수 있다면 영웅의 직함마저 내려놓을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펭귄맨과 캣우먼 그리고 배트맨의 공통점은 셋 모두 진정으로 이해 받기를 원하며 자아를 찾으려 한다는 점이다. 셋의 위치는 다 다르지만 그들 모두 사회적으로 고립된 외로운 존재들이다. 진짜 ‘나’를 아는 이도, 들여다 보는 이도 없는, 심지어 스스로도 자신이 누군지 모르는 이들이다. 영화의 결말 또한 참 외롭다. 이보다 더 쓸쓸하게 엔딩을 맞이하는 슈퍼히어로 영화가 있을까 싶다. 펭귄맨은 결국 죽음을 맞이한다. 인간의 세상에서 자아를 찾고 녹아 들기를 원했지만 끝내 주류 사회에서 내팽개쳐지며 오직 펭귄 들만이 그를 애도했다. 캣우먼은 복수에 성공했지만 내면의 분노와 상처를 끝내 극복하지 못하고 배트맨의 곁을 떠나 홀로되길 선택했다. 배트맨 또한 고담시를 구했지만 결국 그 뿐, 여전히 내면의 결핍을 간직한 채 가면을 벗지 못한다. 정말 원하던 것을 얻은 이는 아무도 없다. 외려 한층 더 깊어진 상실만이 그들 속에 자리 잡았을 것이다.
어릴 적 겪은 충격적 사건으로 정신적 문제를 겪는 것이 명백히 보이는 히어로와 악을 위한 악이 아닌 저 나름대로의 이유를 가진 악당들. 다면적인 구조를 가진 이 인물들이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영화를 보는 이들조차 완전무결하기보다 모두 각자만의 결핍을 가지고 있을 테니 말이다.
역시 나에게 있어 최고의 히어로는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배트맨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