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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재즈를 전신으로 느꼈습니다.

시즈오카 재즈바에서의 단상

by 김지은 에디터
2026.05.11 14:57

 

 

지친 발을 이끌고 시즈오카 거리를 걷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재즈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피곤함을 이기지 못하고 예상보다 일찍 숙소로 향하던 길이었다. 두리번거리며 소리의 출처를 찾아보니 건너편에 ‘라이프 타임(LIFE TIME)’이라고 적힌 근사한 재즈바가 있었다. 그 길로 오늘 밤 공연을 예약했다. 공연은 1시간 후. 당장이라도 눕고 싶던 마음이 씻은 듯 사라졌다.

 

김연수의 소설에서 배운 것처럼, 삶에 찾아온 우연을 능동적으로 받아들여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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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재채기는 길 수 없다고 했던가. 재즈 앞에서는 까딱거리는 발을 숨길 수 없다.

 

굽은 허리와 불만 가득해 보이는 표정이 ‘스크루지’를 연상 시켰던 어느 노년의 관객. 감상보다는 평가를 하러 온 것임이 분명(!)해 보였던 그가 공연이 시작되자 발로 리듬을 타며 사랑스러워진다. 주위를 둘러보니 모두가 발을 까딱이며 재즈에 탑승하고 있다. 일본어 번역체라 어색했던 '재즈를 전신으로 느꼈습니다'라는 재즈바 리뷰가 단번에 이해되는 순간.

 

공연을 보며 색소폰은 으로 연주하는 악기라는 걸 깨달았다.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한 말일 테지만 색소폰의 소리를 숨으로 낸다는 사실이 왠지 생경했다. 그래서 가장 목소리처럼 들리는 것인가. 보컬과 색소폰이 주고받을 때는 꼭 보컬 듀오 같다.

 

내가 재즈 공연에서 주목하는 건 연주자들의 표정이다. 인사할 때 서글서글 웃던 피아니스트는 연주에 돌입하면 을 참는 듯 입술을 앙다물며 사뭇 진지해지고, 도깨비처럼 생긴 데다 (죄송합니다) 좀체 웃지 않던 드러머는 리듬을 따라 미소를 짓는다. 급기야는 드럼을 치다 소리 내어 껄껄 웃어 악기가 하나 추가 되기도 한다.

 

웃음이 악기라니. 이보다 더 멋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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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시선의 순서는 보통 이렇다.


연주자의 손 → 연주자의 표정 → 연주하지 않는 이들의 표정.


특히나 재즈에서 놓치고 싶지 않은 게 바로 솔로 연주자를 바라보는 동료들의 표정이다. 주로 다들 웃고 있는데, 그 표정을 해석해 보면 대개 '쟤를 누가 말려'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재즈 특성상 동료들조차 처음 듣는다는 표정을 짓는 순간 이 공연이 더욱 즐거워진다. 연주하고 있는 이를 제외한 모두가 동등한 청자가 되므로. 여기에 앉아 있는 나도, 무대 위에 서 있는 동료 뮤지션들도. 이때 드러머는 모두를 골탕 먹이고 있다는 듯 꾸러기가 된다.

 

아- 재즈 연주자 안에는 은 나이테가 얼마나 많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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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재즈바는 한 세션이 끝날 때마다 연주자가 돌아다니며 인사를 한다. 아는 사람이 아니어도 감사하다는 의미로 모든 관객에게 찾아간다. 첫 쉬는 시간에 나에게 다가온 색소포니스트가 "뮤지션입니까?" 라고 물었다. 공연 내내 쉬듯 뱉어지던 생각을 노트에 전투적으로 적었는데 아마 그래서 뮤지션일 거라고 착각한 것 같다. 이유는 몰라도 날아갈 것 같았다. 일본 재즈바에서 색소포니스트에게 듣는 “음악가냐”는 질문... 그 질문에 “네”라고 답하고 싶어서 뮤지션이 되고 싶은 기분.


나는 숨으로 악기를 연주하진 못하지만 공연을 보며 적던 나의 들은 이 글의 토대가 되었다. 다룰 줄 아는 악기 하나 없는 나는 줄곧 연주자를 질투한다. 피아노 공연을 보면 피아노를 배우고 싶고, 색소폰 연주를 들으면 색소폰을 시작하고 싶다. 그런데  스스로를 제물로 바치는 엄청난 연주를 만나면 오히려 질투는 사라진다. 그와 똑같은 걸 하고 싶은 마음보다 내가 할 줄 아는 걸 잘하고 싶다는 생각이 온몸을 지배한다.

 

인사를 하고 다니는 연주자들이 몇몇 관객에게는 다음 공연 포스터를 나눠주는데, 처음에는 내가 여행객인 걸 알았는지 받지 못했었다. 두 번째 쉬는시간, "나 사실 걷다가 재즈가 들려서 들어왔어"라는 나의 말로 시작한 대화가 마무리될 쯤 보컬리스트가 포스터를 건넸다. 분명 내가 못 온다는 걸 알고 있을 뿐더러 오기를 바라는 것도 아니었다.

 

마치 내가 그 포스터를 받으면 절대 버리지 않고 간직할 걸 알기라도 했는지 "못 올건 알지만.. 그래도.. 내 이름을 기억해줘!"라며 포스터에 적힌 이름을 가리켰던 와카바야시 미와. 기억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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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이 끝나고 '사진 타임'을 갖겠다더니 본인들끼리만 찍는 게 아니라 원하는 관객과 기념사진을 찍어주는 거였다. 요청할 생각이(혹은 용기가) 없어 무대를 등지고 가방을 챙기고 있었는데 시끌벅적한 소리에 뒤돌아보니 연주자들이 나를 향해 환하게 웃으며 손짓을 하고 있었다. 같이 사진 찍자고. 얼른 올라오라고! 함께 찍은 사진도 정말 마음에 들지만, 아름다운 선율을 연주하던 손과 들로 나를 막 부르던 그 순간을 영원히 붙잡아 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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