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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전조: 짓물린 몸짓
영화의 막이 오르면, 메마른 들풀 사이로 한 여인의 기이한 춤사위가 시작된다.
영혼이 반쯤 빠져나간 육체가 풍경에 동화되려 애쓴다. 나풀거리는 그녀의 움직임은 들판의 풀과 뒤섞이며 노랗게 짓물린다. 파국을 맞이한 영혼이 과거를 연소시키며 동적 비명을 내뱉는다. 들판이라는 황량한 무대 위에서 홀로 흔들리는 여인의 모습은 결말부의 춤사위와 맞물려 영화 전체를 원형의 관 속에 봉인한다.
시작과 끝이 맞물리는 궤도 속에서 그녀(김혜자 扮)가 밟는 스텝이 탈출구가 없는 미로였음을 직감한다.
#상응 :원죄의 고착
이 비극의 시발점은 모성애라는 숭고한 이름 뒤에 숨겨진 엄마의 ‘원죄’에 있다. 엄마가 아들 도준에게 베푸는 모든 헌신은 실은 지독한 속죄의 변형이다. 아들을 죽이려 했던 과거의 과오는 도준의 불완전한 정신 상태로 고착되었고, 이는 다시 그녀를 평생의 수사 주체로 살게 하는 동력이 된다. 그녀의 삶은 아들을 지키기 위한 투쟁임과 동시에 저지른 죄에 대한 뒷수습이기도 하다.
수사의 주체인 엄마가 도준의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 파헤치는 진실의 끝에는 그녀의 과오가 기다린다. 범인을 찾는 과정이 결국 거울 속 자신을 마주하는 일로 수렴되는 그것은 어쩐지 조금 기이하다. 대상을 지키려는 행위가 곧 수신자의 죄를 확인하는 과정이 되는 동일성의 굴레. 범인의 실체는 쫓을수록 점차 그녀의 모습과 닮아간다. 혹은 닮아있다. 구원을 갈구할수록 죄의 증거가 선명해지는 역설은 그녀를 끝없는 굴레로 가둬버린다.
#도구 :배신
혜자가 지닌 침술은 영화의 서사에 있어 중추적인 상징으로 작동한다. 그녀는 특정 혈자리를 찌름으로써 나쁜 기억을 도려낼 수 있다고 믿는다. 그녀에게 망각은 곧 면죄부다. 아들이 과거의 살인미수를 잊었기에 그녀는 헌신하는 어머니라는 가면을 쓸 수 있었고, 이제는 아들의 살인을 덮어줌으로써 다시 한번 망각이라는 구원을 완성하려 한다.
잔인한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망각을 선사하는 도구인 '침통'은 가장 결정적인 범죄의 증거가 되어 돌아온다.
"이런 걸 아무 데나 흘리고 다니면 어떡해?"
묻는 도진의 천진난만한 목소리는 그녀가 쌓아 올린 망각의 탑을 단숨에 무너뜨린다. 망각을 선물하려던 바늘이 원죄를 확증하는 칼날이 되어 돌아왔던 그날, 그녀는 더 이상 도망갈 곳이 없음을 깨닫고는 자신의 허벅지를 찌르는 선택을 하고야 만다. 스스로를 망각의 심연으로 밀어 넣으며 자신에게 면죄부를 부여하는 자해적 의식이다.
#회귀
결말부, 혜자는 관광버스 안의 소음과 광기 섞인 사람들 사이에 섞여 춤을 춘다. 모든 진실을 불태우고 남은 재 위에서 '기억의 연소‘를 춤춘다. 잦아든 연기 속에는 여전히 불씨가 숨겨져 있다. 그녀가 덮어버린 진실이 뼈와 근육 속으로 파고든다. 기괴한 움직임으로 발현된다.
증거가 남았고, 순환의 궤도는 필연적으로 들어맞았다. 도준의 망각이 진심이었는지, 그조차도 어머니의 죄를 목도한 자의 연기였는지 더이상 중요치않다. 그녀는 영원히 그 궤도를 회전하며 자신의 그림자를 쫓아야 할 것이다. 모성이라는 면죄부로 뒤덮으려 했던 범죄는 결국 뚜렷함이라는 확실성으로 그녀를 짓누른다.
영화 <마더>는 다시금 그 메마른 들판의 덧없음 속으로 우리를 초대하며 숭고함 이면에 숨겨진 일그러진 춤사위 속으로 밀어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