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미님.
원미님이라고 해야 할지, 미님이라고 해야 할지 조금 고민이 되었지만 혹시 미님께는 '원미님'이라고 부르면 제가 '이재원님'이라고 불렸을 때와 같은 느낌이시지 않을까 싶어 어색하지만 미님이라고 불러볼게요! 아무래도 이름 전체를 부르면 관공서나 병원 같은 느낌이 드니까 말이에요.
미님이 쓰신 글들을 읽으며 미님과 저는 참 다르면서도 비슷하게 세상을 보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미님이 오피니언을 남겨주신 공연, 영화, 전시, 음악들 중 제가 직접 보고 들은 것은 손에 꼽게 적었어요. 예술이 좋아서 모인 사람들이 있는 이 플랫폼에서는 흔치 않은 일일지도 모르겠어요. 제가 미처 알지 못했던 세상이 이렇게나 넓다는 것을 새삼스레 느꼈답니다. 예를 들어 국악이나 현대 음악은 저에게 많이 낯선 분야예요. 제가 아는 국악은 아마 학교에서 배운 내용, 그리고 제가 좋아하는 밴드인 ‘카디’의 음악의 거문고가 전부일 것 같아요. 그래서 거문고를 전공하셨다는 미님의 글을 읽고 너무 멋있다는 생각과 함께 이 분야에 문외한인 저보다 같은 곡에서도 더 많은 것을 느끼실 수 있을 것 같아 부럽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최근에도 카디를 보고 왔답니다
저희가 본 작품들에 교집합은 많지 않을지언정 마음속에 품고 있는 어떤 생각들에는 공통점이 꽤 많다고 느꼈어요. 일단 저도 영화관에 갇히는 것을 좋아해요. 자발적인 감금을 위하여 영화관에 가고 있습니다. 미님 말씀대로 집에서 영화를 보면 영화 감상을 방해하는 요소가 너무 많고, 영화관에서는 영화와 나 단둘만이 있을 수 있으니까요. 꼭 영화관에서 봐야 하는 영상미가 있는 영화가 아니더라도 영화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는 경험은 소중한 것 같아요.
미님은 영화관에서 보지 않았더라면 절대 끝까지 보지 않았겠다고 느끼신 영화가 있나요? 저는 ‘미드 소마’와 ‘시라트’가 그랬어요. 너무 충격적인 내용이라 집에서 봤다면 스킵을 하거나 영화를 껐겠죠. 영화관에서 본 덕분에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충격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어요. 그저 좋은 경험이었는지는…잘 모르겠지만요.
음악 취향에서도 발견한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저도 영화 음악을 무척 좋아한다는 것이에요. 좋은 영화에는 반드시 좋은 음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편이기도 하고요. 영화에서 음악이 감정을 조성하고 서사에 몰입할 수 있게 한다는 미님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해요. 그리고 저도 한스 짐머의 곡을 좋아해서 2019년 내한 콘서트에 다녀왔었어요. 저는 ‘듄’과 ‘다크나이트’의 곡을 정말 좋아하는데 작년 콘서트에 갔다면 ‘듄’의 사운드트랙을 들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갑자기 아쉬워지네요. 개인적으로 이 두 영화의 사운드트랙은 영화 그 자체라고 생각하거든요. 미님이 보셨던 영화 중 음악이 가장 인상 깊었던 영화가 무엇인지도 궁금해요.
그러고 보니 미님은 음악으로 기억을 간직하시는 편인가요? 누군가는 사진을 남기는 것에 공을 들이고 누군가는 여행지에서 새로운 향수를 쓰는 것처럼 향으로 기억을 남기기도 하죠. 교환학생 Playlist 글을 보며 미님은 음악으로 기억을 하시는 걸까 싶었어요. 사실 저도 네덜란드로 교환학생을 갈 기회가 있었는데 아쉽게도 직후에 코로나 사태가 터지며 기회를 놓쳤던 적이 있어요. 그 후로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아쉬움이 남아서 언젠가는 꼭 제가 가고 싶었던 나라에 살아봐야겠다는 막연한 목표를 가지고 살고 있어요. 그러던 와중에 미님의 글을 읽고 만약 그때가 온다면 저도 미님처럼 그 시간을 기억할 수 있는 곡들을 간직해야겠다고 다짐했답니다. 덕분에 좋은 아이디어를 얻었네요!

제가 좋아하는 여행지의 사진을 올리고 싶었는데 이상하게 제주도 고양이 사진이 가장 마음에 드네요.
귀여우니까 한번 보시라고 올려봅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미님의 글들 중 제가 가장 공감했던 글은 작품에 대한 오피니언은 아니었어요. 저도 벌써부터 가을을 기다리고 있어서 그런지 가을에 대한 소고가 제일 기억에 남아요. 여름은 덥고, 겨울은 춥고, 봄에는 황사가 있지만 가을은 무언가 딱 좋은 계절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1년의 절반 이상을 살아내고 슬슬 마무리를 향해 다가가는 기분도, 구름 없는 높은 하늘도, 선선한 가을 바람에 흔들리는 붉은 단풍도 제가 정말 좋아하는 가을의 모습들이에요.
무엇보다도 가을은 저라는 사람과 온도가 딱 맞는 계절인 것 같아요. 저는 열정적인 것이 피곤하고 다들 좀 천천히 살았으면 좋겠다고 늘 생각하는데, 미님이 표현하신 것처럼 이 그리 높지 않은 마음의 온도가 가을과는 잘 어울리거든요. 어쩌면 저희는 비슷한 온도를 가진 사람들일지도 모르겠네요. 일단 지금 저희가 앞둔 계절은 여름이니 한동안은 열심히 살아볼까 싶어요. 그러다 보면 다시 가을을 맞이하고 마음의 여유가 생기는 때가 오겠죠. 여유의 기쁨도 바쁜 시간이 지난 후에 진정으로 맞이할 수 있으니 역시 우리의 인생에서도 계절의 흐름은 꼭 필요한 요소인 것 같아요.

작년에 경의선 숲길에서 찍은 사진이에요. 계절이 바뀌는 모습이 담겨있어 좋아하는 사진입니다.
새삼스럽지만 낯선 사람과 글을 통해서만 소통하는 것은 신기한 경험이네요. 글에서 한 사람을 발견하고 내적 친밀감을 느끼게 되는 과정이 실제로 사람을 만나고 친해지는 것만큼이나 반가운 일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사실 그동안 제 글을 쓰기에 바빠 다른 에디터분들의 글을 많이 읽어보지 못했는데, 이번 기회에 미님의 이야기가 담긴 글들을 읽을 수 있어 기뻤어요. 우연히 어디에선가 마주치게 된다면 반갑게 인사하면 좋겠습니다.
그럼 오늘도 평화롭고 산뜻한 하루를 보내시길 바라며 이만 글을 마칩니다.
2026년 5월 3일
다가올 계절을 기대하며
재원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