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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인사이트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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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이러하다. 대학교 4학년 2학기, 나는 숨이 헐떡이는 것을 넘어 턱끝까지 차올랐었다. 당시 졸업을 코앞에 두고 1년의 휴학을 결정했었기에 돌아온 이후 맞이한 학업에서의 공백은 생각했던 것보다 타격감이 컸다. 뒤늦은 취업 준비의 발판을 부랴부랴 마련하며 지금까지 미뤄두었던 졸업 요건을 맞춰나가기엔 나의 정신력이 받쳐 주지 못했다. 그렇게 공허한 눈으로 수업을 듣던 와중, 창밖으로 바뀌는 계절의 변화가 문득 느껴졌다. 선명한 색의 단풍잎이 바람에 날려 떨어지는 모습과 은행나무들이 뿜어내는 마지막 잎이 뿜어내는 강렬한 생명력. 언제 시간이 되면, 산에 한 번 가볼까? 자연스레 떠오른 이 생각 한 줄기가 등산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많은 대학교가 산을 끼고 있듯이, 우리 학교 또한 산의 자락이 학교 곳곳에 존재했다. 덕분에 동기들과 점심을 먹고 운동도 할 겸 가벼운 등산을 하곤 했는데, 그때마다 묘한 해방감이 느껴졌다. 하루 대부분을 보냈던 갑갑한 건물과 사람에게서 벗어나 뒷산에 가면, 발끝에서 기분 좋게 바스락거리는 낙엽들과 시시콜콜한 대화가 있었다. 하루를 버티게 해주는 이 짧은 시간이 점점 기다려지게 되었고, 동기들 사이에서는 습관처럼 서서히 일상 속으로 스며들게 되었다. 그러다 누군가가 아이디어를 내었다. “우리 점심에 하는 산책 같은 거 말고, 주말에 진짜 산을 한번 타볼래?”

 

미리 말하자면, 나는 등산을 싫어했다. 많은 이들이 말하듯, 어차피 내려올 산을 굳이 올라가는 것이 이해가 안 됐다. 고작 산꼭대기를 맛보기 위해 몇 시간이고 발끝만 바라보며 끝이 어딘지 모를 목적지를 향해 가는 것도 힘들었다. 다리가 너무 아픈 나머지, 지나가는 어른한테 “정상까지 얼마나 걸려요?”라고 물을 때면 다들 대본이라도 있다는 듯 “얼마 안 걸려. 10분이면 도착한다. 금방이야.”라고 대답하곤 했는데, 이 말을 철석같이 믿고 1시간 내내 걸어도 도착하지 못할 때 느껴지는 배신감(?)도 싫었다. 그런 내가 자발적으로 산에 오르게 된다니, 어렸을 때라면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그렇게 오르게 된 산은 예상했던 것과 같이 힘들었다. 혹시라도 이끼 낀 돌에 넘어지기라도 할까 힘을 주고 걸은 다리는 점점 후들후들 떨렸고, 옷 안이 땀으로 젖기 시작했다. 점차 숨소리가 거칠어졌고, 눈에 보이는 쉼터는 무조건 앉아야 다음 코스로 넘어갈 수 있었다. 물론 나만 이런 것은 아니었고, 산을 제대로 타보지 못한 동기들이 대체로 이런 증상을 호소했다. 만약 혼자 왔었더라면 금방이라도 포기하고 돌아갔을 것이다. 역시 등산은 나랑 잘 안 맞는다니까. 라는 회피적인 감상과 함께 다시는 산을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테다.


그러나 곁에는 나와 비슷한 마음가짐을 가진 동기들이 있었다. 함께 대화를 나누며 이야기를 공유하고 힘듦을 나누며 전진하다 보니 조금은 할 만한 것 같았다. 오히려 재밌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렇게 마주한 산의 정상은 생각보단 시시했다. 첫 등산이라 오르기 쉬운 코스로 선정하기도 했고, 산꼭대기의 경치가 그렇게 극적이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었다. 가쁜 숨을 간신히 고르느라 다른 것은 안중에 없기도 했었고, 얼른 내려가서 고픈 배를 채우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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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산을 천천히 내려가면서 숨이 안정되자 눈에 들어온 전경은 점차 아름답게 느껴졌다. 등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산은 내려가기 위해 올라간다”라는 말이 가슴에 와닿는 순간이었다. 그 잠깐만큼은 가슴을 무겁게 짓누르는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만 같아 보였다. 시간을 소요하여 올라온 거리만큼 고민으로부터 비례하여 떨어진 것처럼 느껴졌다.

 

등산을 마무리하고 내려오면 꼭 해보고 싶은 것이 있었다. 바로 막걸리에 파전을 먹는 것이다! 식당으로 향하는 발걸음에는 이미 힘이 빠져버린 지 오래. 막걸리 잔을 드는 손이 파들파들 떨렸지만, 다 함께 무언가를 극복하고 돌아왔다는 묘한 성취감 같은 것이 들었다. 그날 동기들과 우리만의 산악회를 만들었다. 산악회의 이름은 막걸리와 친구를 사랑하는 동호회, 일명 막친회였다.

 

그 역사적인 막친회의 첫 등산으로부터 시간은 점차 흘러갔고, 동기들은 이제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열과 성을 다하는 사회인이 되었다. 대학생 그 시절만이 가지고 있는 시간적인 여유와 굴러가는 낙엽에서 빵 터지는 웃음, 그리고 이름 모를 풋풋함은 조금 없어졌을지 몰라도 우리는 여전히 모여서 산을 탄다.

 

날씨가 지나치게 좋은 날이면 등산 생각이 절로 난다. 막친회가 필요한 날이다. 고민도 잠시, 지난 등산 이후로 잠잠하기만 한 단톡방에 아저씨처럼 한 줄을 남긴다. “오늘은 날이 참 좋다. 조만간 산 탈 사람 구함.” 얼마 지나지 않아 현실로부터 잠시 눈을 돌리고픈 친구들 하나, 둘이 모이고 등산 날짜가 잡힌다.

 

그래. 이번에는 어떤 산을 타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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