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OP은 이제 한국을 대표하는 가장 상징적인 분야가 되었다. 한국이 아이돌 육성에 특화된 국가로 자리 잡으면서, 세계 각지의 인재들이 K-POP 스타를 꿈꾸며 한국으로 모여들고 있다. 멤버 대부분이 한국인이었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다국적 멤버로 구성된 그룹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K-POP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발 빠르게 다음 전략을 모색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현지화 아이돌 그룹’이다. 이들은 해외 현지를 타겟으로 삼아 현지에서 데뷔하고 활동한다. 대개 한국 기획사가 해외 지사를 통해 제작하며, K-POP의 트레이닝 시스템과 음악적 방향성을 이식해 음악 시장이 큰 국가나 대륙을 공략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러한 현지화 아이돌 그룹을 향한 우려의 시선도 존재한다. 이들이 오히려 K-POP 고유의 색깔을 흐리게 만드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다. 글로벌 시장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에 치중한 나머지, K-POP만의 특징을 잃어버리고 보편적인 팬덤을 사로잡기 위해 그룹의 개성을 포기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우려가 있다.
이런 시점에서 현지화 그룹이 정말 K-POP의 글로벌 전략으로서 제 역할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단순히 한국에서 하던 방식을 그대로 반복하는 수준을 넘어, 이들이 현지 팬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택한 구체적인 전략과 그들만의 색깔은 무엇인지 알아보고자 한다.
HYBE의 미국 현지화 걸그룹 ‘KATSEYE(캣츠아이)’
‘KATSEYE(캣츠아이)’는 2024년 8월 16일에 데뷔한 걸그룹이다. 하이브(HYBE)와 유니버설 뮤직 그룹(UMG)의 게펜 레코드(Geffen Records)의 합작으로 제작되었으며, HYBE UMG의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The Debut: Dream Academy’를 통해 결성됐다. 미국 현지화 그룹인 만큼 활동의 주무대 역시 미국이다.
대개 현지화 아이돌 그룹은 타깃 지역 출신의 멤버를 포함하여 구성된다. 캣츠아이 역시 투표 결과가 반영되었으나, 결과적으로 다양한 배경을 지닌 멤버들을 한데 모은 것은 전략적으로 매우 효과적이었다. 아이돌 팬덤에게 이른바 ‘덕질’이라 불리는 몰입을 끌어내는 핵심 동력은 아티스트와의 ‘유대감’이기 때문이다. 팬들은 자신과 같은 국가나 문화권에 속한 멤버에게서 본능적으로 공감대를 형성하며, 일면식 없는 사이일지라도 하나의 울타리 안에 있다는 연결감을 느끼곤 한다. 이러한 이유로 최근 K-POP 그룹들은 현지화 그룹이 아닐지라도 글로벌 팬덤 확보를 위해 다국적 멤버 구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추세다.
캣츠아이는 주무대인 미국뿐만 아니라 여러 문화권을 아우를 수 있는 멤버들로 이루어져 있다. ‘다양성’이라는 그룹의 지향점이 멤버 구성에서부터 고스란히 드러난다. 리더 소피아는 필리핀과 미국 복수 국적자이며, 마농은 스위스와 이탈리아 복수 국적을 가졌다. 이 외에도 라틴계 미국인 다니엘라, 인도계 미국인 라라, 스웨덴계 미국인 아버지와 중국계 싱가포르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미국인 메간, 그리고 유일한 한국인 멤버 윤채가 자리하고 있다.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지닌 멤버 구성은 현지 팬덤을 흡수하기에 매우 유리하다. 다만 한편으로는 미국 현지화 그룹이라는 정체성 때문에 이들을 온전한 K-POP으로 정의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이 남기도 한다. 만약 한국인 멤버 윤채마저 없었다면 그 혼란은 더욱 컸을 것이다. 결국 K-POP이 특정 장르를 가리키는 키워드가 아니라, 하나의 시스템에 불과한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된다.
실제로 캣츠아이의 노래 중 한국어 가사가 포함된 곡은 없다.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현지화 그룹인 만큼 가사 전체를 영어로 소화하는 전략을 택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들이 한국 활동을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데뷔 이후 꾸준히 한국 음악 방송에 출연하고 아시아 시장을 위한 프로모션도 진행했다. 하지만 이러한 행보를 지켜보다 보면, 이들이 K-POP 가수인지 혹은 잠시 내한한 팝 가수인지 혼란스러울 때가 있다. K-POP의 트레이닝 시스템을 거쳤을지언정, 결과물에서 한국 대중음악 고유의 정서를 느끼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규격화된 틀을 벗어난 자유분방함
캣츠아이가 지금까지 선보인 곡들은 국내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아이돌 그룹의 음악과는 결이 사뭇 다르다. 대표적으로 큰 화제가 된 노래 ‘Gnarly’가 그렇다. 기존 걸그룹 음악에서는 쉽게 접하기 힘들었던 과감하고 이색적인 사운드가 귀를 사로잡는다. 최근 많은 그룹이 음악적 실험을 이어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캣츠아이의 시도는 충분히 새롭다. 쇼츠(Shorts) 등 숏폼 콘텐츠에만 최적화된 곡이라는 비판이 존재하지만, 아이돌 그룹의 홍수 속에서 이들만의 확실한 유니크함을 보여주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이들의 음악과 퍼포먼스가 한국 팬덤의 입장에서 꽤나 낯설고 신선하게 다가온다는 사실이다. K-POP의 주무대가 국내에 머물던 시절에는 대중이 선호하는 보편적인 취향을 맞추는 것이 유리했다. 그룹의 서사를 담은 가사와 절도 있는 군무가 중심이었고, 완벽한 '전체의 합'을 위해 때로는 개인의 개성을 억눌러야 하는 시기도 있었다. 하지만 과거의 K-POP이 조화로운 합을 상징했다면, 캣츠아이와 같은 현지화 그룹은 '개개인의 개성'을 지향한다.
이 지점에서 문화적 정서의 차이가 극명히 드러난다. 공동체 안에서의 조화를 중시하는 한국적 정서와 달리, 서구권 시장에서는 아티스트 각자의 뚜렷한 매력이 가장 강력한 셀링 포인트가 된다. 캣츠아이는 K-POP 특유의 규격화된 틀을 넘어, 서구 팝 시장이 선호하는 자유분방함과 개별 멤버의 매력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진정성이 빚어낸 새로운 브랜딩
개인의 개성을 중시하는 서구권을 주 활동 무대로 삼은 캣츠아이의 행보에서 가장 눈에 띄는 지점은 아티스트의 '주체성'이다. 철저히 기획된 이미지 내에서 움직이는 전통적인 K-POP 그룹과 달리, 이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데 주저함이 상대적으로 적다. 특히 멤버 라라와 메간이 자신의 성적 지향을 당당히 밝힌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는 결코 기획된 마케팅이나 의도적인 노이즈 마케팅의 산물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본질을 숨기지 않겠다는 아티스트 개인의 용기 있는 고백에 가깝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이러한 아티스트의 진솔한 삶의 태도는, 인위적인 기획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강력한 '브랜딩 효과'를 낳았다. 아티스트의 진정성 있는 삶에 열광하고 그 서사에 깊이 공감하는 서구권 Z세대의 정서와 완벽히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고백은 단순한 화제성에 머물지 않고, 같은 가치를 공유하고 지지하는 이들에게 깊은 유대감을 선사하며 팬덤의 결속력을 다지는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다. 결국 'K-POP 시스템'이라는 틀 위에서 피어난 아티스트의 개인적 용기가, 현지 시장에서는 그 어떤 기획보다 강력한 정체성이 된 셈이다.
경계를 허문 시스템, 현지에 녹아든 K-POP
캣츠아이의 사례를 통해 본 현지화 아이돌 그룹은 우리가 그동안 익숙하게 보아온 K-POP 그룹과는 결이 다르다. 조화로운 '합'보다는 개개인의 '개성'을 우선시하고, 기획된 이미지보다는 아티스트의 '주체성'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이들의 모습은 분명 낯설게 다가온다. 활동 방식부터 멤버들의 사고방식까지, 기존의 K-POP 공식으로는 이들을 온전히 설명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제 K-POP은 특정 그룹의 정체성을 정의하는 키워드가 아니라, 하나의 시스템으로 남게 된 것일까? 한국어 가사 한 줄 없이, 한국적 정서와 거리가 먼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이들을 K-POP 아티스트라 부를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은 여전히 남아있다.
결국 K-POP은 이제 '한국적 정서'라는 특정 값을 가진 장르가 아니라, 다양한 문화와 재능을 K-POP이라는 틀에 담아 새롭게 빚어내는 하나의 '시스템'이 되었다. 우리가 캣츠아이에게서 낯섦을 느낀다면, 그것은 K-POP이 실패해서가 아니라 K-POP이라는 시스템이 완벽하게 현지화에 성공했기 때문일 것이다. 비록 우리가 알던 K-POP의 고유한 색채는 옅어졌을지 모르나, 이제 K-POP은 국가적 경계를 넘어 전 세계 음악 시장에서 자신의 존재 가치를 새롭게 증명해 내고 있다.
* 이미지 출처: KATSEYE 공식 'X' 계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