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기 전에 ‘굴욕’이라는 단어를 먼저 떠올려보았다. 기쁨, 슬픔, 우울, 벅참처럼 익숙한 감정들 사이에서 왜 하필 굴욕이었을까. 기쁨과 슬픔은 비교적 단순하다. 좋은 일이 생기면 기쁘고, 잃으면 슬프다.
하지만 굴욕은 다르다. 굴욕은 혼자서는 성립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시선이 있어야 하고, 그 시선 속에서 내가 작아질 때 비로소 발생한다. 그래서 다른 감정들과는 굴욕은 ‘느끼는 감정’이라기보다 ‘당하는 감정’에 가깝다. 철저히 관계 속에서 피어난다. 더 이상한 점은, 이 감정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는 데 있다. 기쁨은 흐려지고 슬픔도 결국 옅어지지만, 굴욕은 시간이 지나도 선명하게 남는다. 이미 끝난 일이 아니라, 반복해서 현재를 침범하는 기억으로 남기 때문이다.
굴욕이라는 감정은 꽤나 특별하다. 과거로만 존재하는 일이 아니라, 지워지지 않은 채 남아 새벽에 우리를 이불킥하게 만들고, 이미 지나간 장면을 다시 떠올리며 입술을 질끈 깨물게 만든다.
아마 그래서 케스텐바움이 이걸 책 한 권으로 쓸 수 있었을 것이다.
굴욕을 말하는 방법

우리는 매일 타인의 굴욕을 소비하며 산다. 연예인의 스캔들 기사를 클릭하고, 누군가의 실언이 담긴 영상에 웃음을 터뜨리고, 리얼리티 쇼에서 참가자가 망가지는 순간을 손에 땀을 쥐고 바라본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자신이 굴욕이라는 감정과 깊이 연루되어 있다는 사실을 좀처럼 직면하려 하지 않는다. 웨인 케스텐바움의 에세이집 '굴욕'은 바로 그 불편한 외면에 도전하는 책이다.
케스텐바움은 뉴욕 시립대학교 대학원 석좌교수이자 시인이며 문화비평가다. 그는 이 책에서 굴욕이라는 감정을 철학적으로 정의하는 데서 출발한다. 그에 따르면 굴욕은 단순한 창피함이 아니다. 피해자, 가해자, 목격자라는 세 사람의 삼각관계를 전제하는 사건이며, 사적인 고통이 공적인 시선 앞에 강제로 노출되는 과정이다. ‘더럽힘’이 그 필수조건이며, 한 번 새겨진 흔적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이 정의는 단순해 보이지만, 읽는 내내 독자를 불편하게 만든다. 피해자였던 기억뿐 아니라, 목격자 혹은 가해자로서 그 삼각관계에 참여했던 자신의 과거가 차례로 소환되기 때문이다.
책의 형식 또한 독특하다. 저자는 굴욕에 대한 일관된 논증을 전개하는 대신, 음악의 푸가처럼 서로 다른 단상들을 병렬로 배치한다. 마이클 잭슨의 모욕적인 몸수색, 아부 그라이브 수용소에서 미군 병사들이 웃으며 찍은 기념사진, 취한 채 TV에 출연한 주디 갈런드의 딸, 화장실에서 오수 소리를 엿들은 사소한 일상까지. 가볍고 무거운 사례들이 나란히 놓이며 예상치 못한 공명을 만들어낸다. 아우슈비츠와 리얼리티 쇼가 같은 장에서 함께 논의된다는 점은 처음에는 당혹스럽지만, 읽다 보면 그것이 의도된 구성임을 알게 된다. 굴욕은 거대한 역사적 비극 속에서도, 평범한 일상의 작은 균열 속에서도 동일하게 존재한다.
이 책에서 가장 날카로운 지점은 미디어 문화에 대한 비판이다. 저자는 타인의 굴욕을 구경하고 소비하는 일이 현대 대중문화의 핵심 동력이 되었다고 지적한다. 우리는 누군가가 추락하는 장면에서 안도감을 느끼고, 그것이 자신의 일이 아니라는 사실에 묘한 위안을 얻는다. 그 무감각함이야말로 저자가 진정으로 문제 삼는 지점이다. 라틴어 어원에서 굴욕(humiliatio)과 인간(humanus)이 같은 접두사를 공유한다는 사실은 그래서 더욱 의미심장하다. 굴욕을 겪는 것이 곧 인간의 조건이라면, 우리는 타인의 굴욕을 소비하며 결국 인간 그 자체를 소비하고 있는 셈이다.
책의 마지막 장에서 저자는 스스로의 굴욕 목록을 열거한다. 출판사에 원고를 거절당한 경험, 선물한 서명본 책을 중고서점에서 다시 발견한 일, 어린 시절 외모로 놀림을 당했던 기억들. 이 고백은 책 전반을 가로지르던 긴장을 한 번에 풀어낸다. 저자는 비평가이기 이전에 굴욕의 피해자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는 “굴욕에 대해 끊임없이 말하는 것이 곧 굴욕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 책 자체가 그 실천이다.
오늘은 나도 내 굴욕을 다이어리에 적고, 같이 사는 언니에게 이야기해보려 한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막막하다. 남의 굴욕을 소비하는 대신, 나의 굴욕을 고백하는 법 부터 배워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