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버지니아 울프는 자신의 에세이 ‘자기만의 방’에서 여성이 글을 쓰기 위해서는 연간 500파운드의 수입과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고 말하며, 여성이 자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함을 강조한다. 이로 인해 울프를 대표적인 페미니즘 작가로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전기 소설의 탈을 쓴 ‘올란도’에서 그는 올란도라는 인물이 누구인지에 대해 탐구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수백 년의 시간동안 늙지 않거나 두 가지 성별을 모두 취하는 등의 허구적 설정은 독자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작가가 직접 등장해 전기 소설이 과연 객관성을 가질 수 있는지 질문을 던지고, 메타적 장치를 통해 독자 스스로 이 소설이 허구임을 깨닫게 한다.
즉, 전면에 나서서 여성 인권에 대해 말하는 ‘자기만의 방’에 비해 ‘올란도’는 우회적인 방식을 선택했다. 독자는 소설 전반을 아우르는 환상성 속에서 자주 길을 잃는다. 그리고 54년이 지난 뒤, 샐리 포터 감독의 영화 ‘올란도’가 개봉했다. (한국에서는 지난 4월 8일 4K 리마스터링 재개봉을 했다.)
영화 ‘올란도’
영화는 소설과 다른 노선을 취한다. 감독은 올란도의 각 여정에 이름을 붙이고, 해석한 주제의식을 바탕으로 대사와 장면을 취사선택했다. 그 결과 올란도의 생애는 한층 간결해지고 이미지와 메시지의 강렬함은 배가되었다.
영화가 소설에 비해 정치적이며 페미니즘적인 색채를 뚜렷하게 띠고 있음에도, 원작의 대표적 특징인 환상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데에는 샐리 포터 감독의 섬세한 미장센과 올란도 역을 맡은 틸다 스윈튼의 존재감이 크게 작용한다. 틸다 스윈튼의 새하얗고 중성적인 얼굴은 성별과 시대를 초월하는 신비로운 느낌을 준다. 마치 책 속의 올란도가 밖으로 걸어나온 것만 같다.
틸다 스윈튼의 강렬한 힘은 스크린에서 직접 마주하길 바라며, 이제 영화가 보여주는 젠더와 권력, 그리고 역사에 대한 문제의식을 따라가 보고자 한다.
죽음에서 탄생까지


앞서 말했듯 영화는 올란도의 생애를 챕터와 연도로 명확히 구분하여, 관객이 길을 잃지 않도록 다루고자하는 주제를 선제시한다. 또한 원작이 소설임을 밝히며 시작하고, 소설의 전기체 서술을 나레이션으로 활용하는 대신 올란도가 화면 너머를 응시하거나 짧은 대사 한 줄을 건네는 행위로 축약한다.
첫 장은 죽음이다. 16세기 엘리자베스 1세는 노쇠하여 죽음에 가까워져 있다. 여왕은 자신과 달리 생생한 젊음을 소유하고 있는 올란도를 총애하며, 그에게 영원히 시들지 않기를 명령한다. 결국 여왕에게도 죽음은 공평하게 찾아오고, 이어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나자 올란도는 자연스럽게 어느 여성과 약혼하는 수순을 밟게 된다.
그러나 올란도는 당시 귀족 사회의 허영에서 벗어나 자신의 욕망에 따라 살고자 한다. 그는 약혼자 대신 러시아 대사의 딸 사샤와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그 행복이 사라질 것을 두려워하며, 사샤를 자신의 소유로 붙잡으려 하지만 결국 실패한다.
사랑의 상실 이후 올란도는 시를 통해 이를 극복하려 하지만, 시인은 그가 이미 너무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어 시가 머무를 공간이 없다고 말한다. 올란도는 죽음을 통해 인간의 유한함을 목격했고, 사랑과 시라는 추상적 가치에서도 배반당한다. 권력은 인간의 진실한 욕구를 채워주지 못한다.
그는 상실을 달래기 위해 잉글랜드를 떠나 동쪽으로 향한다. 대사의 신분으로 도착한 그곳에서, 제국주의 국가 출신인 올란도는 환영받지 못한다. 그들은 올란도에게 전쟁과 피를 요구한다. 전쟁에서 인간은 개별적 존재로 존중되지 않고, 오로지 아군과 적군으로 나뉜다. 올란도는 세상이 남성에게 요구하는 가치들 속에서 반복적으로 실패를 겪는다.


깊은 잠에서 깨어났을 때, 올란도는 여성의 몸을 가지게 된다. 그는 성별만 달라졌을 뿐 여전히 같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성별이 바뀌는 순간부터 사소한 것들에서조차 제약을 받게 된다. 일단 복장이 달라졌다.
몸을 조이는 코르셋과 넓게 퍼지는 스커트는 그의 움직임을 제한하고, 여성이라는 이유로 재산을 소유할 수 없어 소송에 휘말린다. 또한 과거 자신이 사샤에게 했던 것처럼, 이제는 해리 대공으로부터 강압적인 구애를 받게 된다.
그가 사교계에 발을 들이자 여자는 아버지와 남편 없이는 본성을 찾을 수 없으며, 오로지 치장을 통해 아름다움을 뽐내야만 가치가 있다는 평가를 듣게 된다. 여성으로서의 무력함에 올란도는 억압을 벗어나고자 미로 속으로 뛰어든다.
필자는 이때의 장면 전환을 최고의 장면으로 정하고 싶다.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와도 맞닿아있으며, 긴박해지는 음악과 한순간 가벼워지는 올란도의 옷차림을 통해 올란도 개인의 성장과 시간의 흐름을 한순간에 느낄 수 있다.
이후 셸머딘과의 만남에서 나누는 대화는 성별에 대한 기존의 관념을 벗어나고자 하는 영화의 주제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올란도는 점점 내면적 우울에서 벗어나 가벼워지는 듯 보인다.
그리고 올란도가 태어난 시점에서부터 약 400년이 지난다. 16세기와 달리 올란도는 자유로워보이지만 여전히 그를 가두는 제약은 존재한다. 영화는 ‘올란도는 올란도일 뿐’이라며 한 인간으로서의 올란도를 노래하며 끝이 난다.
영화의 마지막 장은 탄생이다. 죽음으로 시작하여 탄생으로 끝이 나는 영화는 완결보다 연속성을 갖게 된다. 영화는 올란도 개인의 생애를 보여주지만, 궁극적으로는 보편적 인간 개인의 자유를 이야기한다. 인간 개인은 어느 하나의 개념으로도 완전히 정의될 수 없으며, 당신이 여성이든 남성이든 모두가 그렇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