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색. 어딘가에서 번진 듯한 빛무리. 포스터를 처음 마주한 순간의 감정은 복잡다단했다. 몰입이라는, 저 간단하고도 확신어린 이름이 무엇을 향해 있는지 궁금해졌다. 어둡게 가라앉은 배경 위에 선명하게 적힌 IMMERSION은 마치 블랙홀 같았다. 몰입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것이 거기 있을 듯한 기분이었다.
우주를 만나러 성수로 향했다.

음악의 질감은 언제나 낯설다. 글을 쓰는 일도, 그림을 그리는 일도, 서툴지만 그 창작 기제를 아주 모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음악은. 음과 음을 잇고 하나의 흐름으로 만든다는 것은 내겐 너무 낯선 일이다. 공연의 프로그램 챕터를 보고도 쉽게 상상이 가지 않았다. 의문과 기대, 어쩌면 혼란 속에서 '몰입'이 시작되었다.
조명이 비치는 곳, 무대 가운데 배우가 독백한다. 힘있는 것 같으면서도 어딘가 불안한 과거의 편린들. 느릿하게 걸어들어가는 배우를 뒤로하고 피아노와 바이올린, 첼로, 신디사이저가 어떤 기억을 운반한다.
음악이 흐르는 동안 언어는 등장하지 않는다. 치열하게 움직이는 출연진들의 손끝이 낯설었다. 건반과 현 위를 오가며 무형의 무언가를 만들어낸다. 소개글에 따르면, 그것은 대체로 추억의 재현이었다.
'몰입' 속 추억은 낯설었다. 익숙치 않은 음악의 물성 때문만은 아니었다. 조명이 바뀌고 챕터가 넘어가면 챙겨두었던 공연 책자를 들추어본다. 불이 다 꺼진 객석에서, 저쪽 무대의 조명에 의지해 지금 연주되는 추억이 무엇인지 가늠하려 애쓴다. 예컨대, <섬 집 아기>의 초반 반주는 이제 십 년은 되었을 초등학교 음악 시간을 떠오르게 했다. 다만 어떤 추억은 여전히 타인의 몫처럼 이질적이고 또 어떤 것은 내 감정과 전혀 다른 결을 가진 채 달음박질친다.
그러므로 뇌는 익숙한 것을 통해 낯선 것을 이해한다. 공간을 흐르는 기억의 파편 속에서 문득 떠올린 건 <비행운>이었다.
중학교 국어 시간 숙제로 누군가 그 가사를 발췌해왔던 기억이 났다. '비행운'의 끝자락 꼬마가 간직했던 꿈인 우주 비행사. 여기 '몰입' 속 우주인의 신호, 아득하게 먼 우주의 별들. 별을 바라보며 떠올리는 할머니. 어린 시절의 이야기들―.
결국 어른이 되어버린 삶과 기억 너머의 과거를 떠올린다는 것에서 어떤 공통점을 찾았을지도 모르겠다. 다소 제멋대로인 이해일지라도 음악의 추상성은 이런 점에서 요긴했다.
되새김질을 하듯 내 기억들을 들추며 흐름을 따라가다보니 공연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새삼스럽게도 인간의 기억은 불완전하고 파편화되어 있었다. 지나온 시간은 드문드문 궤적만 남고, 사람은 때로 그것에 의지해 무언가를 빚어냈다. 음악으로 되새긴 과거의 기억은 청자의 몰입감 속에서 산화되었다. 생경한 음율을 넘어.
하지만, 때로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우리는 언젠가의 시간에 충분히 '몰입'하여 지금 이 순간에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