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을 좇는 ‘영웅들’
언론인이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연극 <빅 마더>를 보고 나서 나는 ‘언론인이란 어떤 존재인가’, 그리고 ‘그들의 의무는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지금 세종문화회관에서는 거대 권력의 실체를 폭로하려는 기자들의 치열한 싸움을 그린 이 작품이 상연되고 있다.
지난주 관람한 <빅 마더>는 ‘영웅’에 대한 나레이션으로 시작한다. ‘영웅은 언제나 악의 무리와 맞서 싸워 많은 사람을 구한다’는 목소리가 극장 안을 울린다. 그 목소리에는 이 이야기에서 ‘영웅’이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할 것이라는 불길한 암시도 담겨 있었다.
이야기는 ‘뉴욕 탐사’라는 언론사의 정치부 기자들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열정적이지만 다소 어수룩한 신입 알렉스 쿡, 강한 사명감으로 똘똘 뭉친 줄리아 로빈슨, 노련한 베테랑 케이트 블랙웰, 그리고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고뇌하는 편집국장 오웬 그린. 극중 배경인 미국에선, 대선을 앞두고 대통령의 성추문 영상이 공개되어 나라 전체가 혼란에 빠진 상태였다. 뉴욕 탐사 역시 이 사건을 앞서 보도한 언론사였다.
한편 알렉스 쿡은 발행인인 아버지 덕분에 뉴욕 탐사에 입사해, 동료와 상사의 인정을 받기 위해 분투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마주한 진실의 실마리는 그의 인정욕구를 더욱 불태웠다. 그와 오웬 그린 팀은 사건의 진상에 빨려들어가는 듯 가까워졌고, 결국 거대 권력의 어두운 실체에 접근하게 된다. 이제 그들은 권력의 압박과 방해 속에서도 진실을 보도해내야 한다. 그것만이 국민이 거대 권력의 농단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길이었다.
‘언론 영웅’은 현실에서도 성립하는 존재일까?
극중 인물들은 진실을 향한 열망으로 가득 차 있다. 설사 그로 인해 정부나 거대 권력과 대립하게 되더라도 굴하지 않는다. 반면, 현실의 기자들이 마주하는 세상은 생각보다 냉혹하고, 초라하다. 실제 언론의 보도는 수많은 이해관계와 얽힌다. 때때로 권력에 맞서는 용기보다 ‘눈치 빠른 사회생활’과 ‘순응’이 더 생존에 유리한 덕목으로 작용한다.
<빅 마더> 속 기자들이 보여준 열정은 누구도 부정하기 어려운 숭고한 가치였다. 그러나 현실의 언론사와 비교할수록 씁쓸함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실제로 기자가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결국 극 초반의 알렉스 쿡처럼 권력의 설계 아래에서 움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 현실에선 회사도, 상사도 기자가 엄청나게 혁명적인 진실을 밝혀낼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다.
내 생각은 지나치게 단정적인 측면도 있다. 극중 발행인이 말하던 “진실을 공개하기엔 너무 이르다”, “국민들에게 지나친 혼란을 줄 수 있다”는 대사와도 맞닿는다. 그 말처럼 권력에 정면으로 맞서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느낀다. 설사 맞선다 해도, 그것은 즉각적인 보도보다는 오랜 시간 물밑에서 준비된 거대한 자본과 프로젝트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빅 마더>의 결말은 열린 채 끝났지만, 만약 이야기의 배경이 현실의 대한민국이었다면 결말은 좋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다.
영웅은 꼭 혁명을 일으켜야 할까?
이런 체념 속에서도 질문은 남는다. 언론인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언론인의 사명은 진실을 알리는 것이다. 하지만 이전에 기자도 자신의 생계를 위해 일하는 개인이다.
분명 세상을 뒤흔들 폭로를 통해 모두를 깨우치는 것은 언론인에게 허락된 특별한 꿈일지도 모른다. 다만 현실의 언론인은 그보다는 시스템 안에서 이해관계를 조율해야 할 때가 많다. 그러면서도 조금 더 나은 방향을 제시하려 애쓰는 것이 고작이다.
결국 ‘좋은 언론인’은 파격적인 폭로보다는 수많은 논쟁과 타협을 거쳐 사회가 진실에 조금 더 가까워지도록 이끄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진실을 향한 의지(정)와 권력의 억제(반)가 끊임없이 맞부딪치며, 그 사이에서 새로운 합(合), 즉 사회적 진보의 조각이 만들어진다. 언론이 그 합의 한가운데에서 미묘한 균형을 제시할 수 있다면, 비록 완전한 진실에는 닿지 못하더라도 세상은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