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

본 글은

연극 <안산, 황금용>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은 물류창고와 제조업 공장이 많은 곳이다. 그래서인지 시내를 나가면 관광객보다는 일을 하기 위해 온 것처럼 보이는 외국인을 많이 볼 수 있게 된다. 나 역시 베트남 음식점에서 잠시 일을 했을 때 함께 일하던 선배가 베트남에서 온 분이었고 많은 도움을 받았다.


'이주노동자'. 원래 살던 곳이 아닌 타국에 정착해 일을 하는 사람들. 국내 체류 이주민은 260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5%를 이미 넘어섰고, 저출산고령화와 지방 소멸로 인해 생긴 빈 일자리들은 100만 명에 가까운 외국인 근로자들로 채워지고 있다고 한다. 시내에 나가면 전보다 외국인이 많아진 모습을 볼 수 있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KakaoTalk_20251224_113724913_04.jpg

 

 

연극 <안산, 황금용>은 '코리안 드림'의 이름 아래 한국을 찾는 이주노동자, 이들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작품은 본래 독일 작가 '롤란트 쉼멜페니히'의 <황금용>을 한국 정서에 맞게 각색한 공연으로 안산 다문화 거리에 있는 타이·차이나·베트남 식당 '황금용'을 중심 공간으로 삼는다. 7개의 파편적인 에피소드가 마치 조각난 퍼즐처럼 48개의 장으로, 비선형적으로 진행되고, 이 파편들은 끝내 하나의 그림으로 맞춰진다.

 

 

빨간 냅킨에 싸온 이가 놓여 있습니다.

희미한 가로등 불빛에 이에 난 구멍이 보입니다.

검게 썩은 구멍이 앞니를 관통했습니다.

 

 

비좁은 '황금용' 식당 주방 안 동남아와 티베트에서 온 요리사들은 많은 주문을 소화하느라 분주하다. 그리고 그 중심에 유난히 아파 보이는 얼굴의 '꼬마'가 있다. 그는 이 식당에 막 들어 온 새내기자 막내여서 '꼬마'라고 불린다. 베트남에서 여동생을 찾기 위해 한국에 온 그는 극심한 치통에 시달리고 있지만 불법 체류자 신분으로 병원을 찾을 수 없다.


치아가 아프면 일상은 무너진다. 먹는 것도 말하는 것도 잠을 자는 것도 고통이 되지만 이에 따라 죽는 일은 잘 없다. 그러나 이 극에서 놀라웠던 점은 '치통'이 하나의 비극으로 번져간다는 사실이었다. 결국 꼬마의 충치는 파이프렌치로 뽑히고 그렇게 빠져나온 치아는 날아가 음식에 섞인다. 그리고 음식을 주문한 항공기 승무원은 치아를 가져가 버린다. 그렇게 치아를 잃은 꼬마는 과다 출혈로 죽음에 이른다.

 

 

KakaoTalk_20251224_113724913_03.jpg

 

 

이 모든 과정은 지나치게 잔혹하지만, 연출은 의외로 익살스럽다. 웃음이 섞인 장면들 속에서 잠시 웃다가도, 곧 그 웃음이 누군가의 삶을 얼마나 가볍게 소비하고 있는지를 깨닫게 된다. 극은 그렇게 웃음을 통해 비극을 더 선명하게 만든다.


또 하나 인상 깊었던 것은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였다. 베트남인 여성이 베짱이로 등장하고, 개미에게 감금되어 말로 다할 수 없는 일을 당한다. 처음에는 단순한 우화처럼 보이지만 이 이야기가 실제 현실을 반영한 것이며 그 여성이 바로 꼬마가 찾고 있던 여동생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는 순간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동화의 외피를 쓴 장면이 가장 현실적인 비극으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이 극은 여섯 명의 배우가 수많은 인물을 연기한다. 여자가 남자 역할을 남자가 여자 역할을 맡고 배우들은 자신이 맡은 배역을 서술로 소개한다. "나는 줄무늬 셔츠를 입은 남자다."와 같은 문장은 관객에게 지금 보고 있는 것이 연극임을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그럼에도 이 이야기들이 결코 허구처럼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그 안에 담긴 현실이 너무도 구체적이기 때문이다.

 

 

살아야 하니까 우리는 없는 사람들이야.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이 대사는 꼬마의 시체를 신고할 수 없어 결국 강가에 버리려는 때, '황금용' 식당 사람들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너무 담담해서 더 잔인하게 들린다. 이 한 문장은 이 연극이 말하고자 하는 이주노동자의 현실을 정확히 찌른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삶. 죽음마저도 기록되지 못하는 사람들.

 

 

KakaoTalk_20251224_113724913_01.jpg

 

 

<안산, 황금용>은 현실적이면서도 비현실적인 극이다. 익살스러운 연출과 낯선 형식 속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는 결국 우리가 외면해 온 현실을 정확히 겨냥한다. 치통처럼 사소한 고통이 죽음으로 이어질 수 있는 삶, 동화처럼 포장된 폭력이 실제 누군가의 현재일 수 있다는 사실. 이 연극은 그 사실을 익살스럽게 때로는 냉소적으로 보여준다.

 


사진 출처 : 창작집단 상상두목 / c : 윤헌태

 

 

 

임혜인_아트인사이트 에디터.jpg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