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북을 읽기 전
“변한답니다..! 사랑은..”
“이른 아침, 온 세상에. 안개가. 자욱해도! 오후에는. 어느샌가~ 햇.살.이 눈.부.시.죠~
사~랑~은, 마치, 마치, 오늘의 날씨처럼. 흐렸다 환해지고~ 추웠다 따뜻해져~ ...”
- 뮤지컬 [레드북] 넘버 '사랑은 마치'rep 중
몇 년 전, 유튜브에서 한 뮤지컬 영상을 보았다.
처음에는 박진주 배우와 김세정 배우가 뮤지컬 넘버(*뮤지컬에 사용되는 노래)에 맞게 사랑스러운 포텐을 뿜어내며 부르는 숏츠였다. 배우와 넘버, 공연장의 습도와 분위기 연출 모든 게 한 공간에 어우러진 모습에 반해 곧바로 넘버의 모든 영상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정신 차려 보니 영상을 무한 반복하며 열심히 표정을 묘사하고 박자를 쪼개 따라부르는 내 모습이 화면에 겹쳐졌다.
아쉽게도 이 넘버는 음원으로 정식 발매되지 않아서 영상으로 반복하는 수밖에 없었고 언젠가 노래방에 음원이 올라올 날만을 고대했다. 열심히 따라부르는 것에 지쳐있을 무렵, 자연스럽게 뮤지컬이 보고 싶어졌고 죽기 전에 꼭 하나 뮤지컬을 볼 수 있다면 ‘레드북’이었으면 좋겠다 싶을 정도로 한동안 내 머릿속은 ‘레드북’으로 가득 찼었다.
언제 다시 극이 올려질지 모르기에 할 수 있는 일은 영상을 돌려보는 일 뿐이었는데, 드디어! 올해 4번째 시즌으로 ‘레드북’이 돌아왔다는 소식을 접했고 언제로 예매할지 타이밍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시기에 딱 떨어지게 아트인사이트에서 볼 기회가 생긴 것이다. 단 하나 보고 싶은 뮤지컬이 생겼고, 올해 시즌이 돌아왔고, 시간과 돈을 쪼개서라도 어떻게든 보러 가려고 했는데, 마침 이 뮤지컬을 아트인사이트 에디터로 볼 수 있게 되었다. 운명이라고밖에 생각이 들지 않아 바로 그 운명에 뛰어들었다.
공연장 ‘유니버설 아트센터’에 도착했을 때,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부터 뮤지컬이 시작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마치 ‘레드북’을 위해 존재하는 것 같은 공연장 분위기였다. 흘러나오는 배경음악, 화장실 곳곳까지도 원래 이런 건물인건지 오직 ‘레드북’만을 위해 리모델링한 것인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물론 설렘이 앞서서 모든 것에 의미 부여한 걸 수도 있지만 그제야 뮤지컬을 본다는 것이 실감났다.
레드북을 읽으면서
공연 천막은 정확히 7시 30분에 맞춰 걷어 올려졌다. 첫 번째 넘버를 중심으로 모든 출연진이 밝고 명랑하게 등장했는데, 그중에서도 오늘의 주인공은 ‘안나’역의 ‘옥주현’, ‘브라운’역의 ‘지현우’였다. 솔직히 말하면 평소 즐겨보던 영상들에서 주인공들은 실제로 젊은 배우들이었기에 기대하던 분위기가 나오지 않을까 봐 걱정했다.
하지만 극이 끝난 후 바로 반성했다. 뮤지컬에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되새기면서 말이다. 다른 배우들의 ‘레드북’은 물론 보지 못했지만, 결론적으로 확신했던 것은 분명 다른 매력이 뿜어져 나왔다는 것이었다. 배우들의 연기와 흡입력이 뛰어나 기존에 내가 상상하던 인물의 평범함에서 벗어나 오히려 신선한 느낌을 주었다. 젊은 배우들이 연기한 ‘안나’가 20대의 사회초년생 안나 같았다면, 옥주현 배우가 연기한 ‘안나’는 좀 더 짙고 원숙한 30대의 사랑스러운 ‘안나’였다. 결코 어느 쪽이 가볍다거나 나이가 들어 보인다는 뜻이 아니다. 배우들이 만들어낸 각각의 ‘안나’가 모두 저마다의 색이 묻어나있고 그 안에서도 사랑스러움만큼은 공통으로 깃들어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해둔다.
이렇게 유머와 사랑스러움과 서정성과 아련함과 단단함을 모두 갖춘 뮤지컬이 또 있을까 싶다. 대단하고 압도적인 서사의 이야기를 가진 다른 뮤지컬도 많겠지만, 내게 ‘레드북’은 첫 뮤지컬로서 앞으로 뮤지컬에 대한 기준을 심히 올려놓았다. 주연 배우들의 실력은 말할 것도 없기에 좀 더 주목하고 싶은 건 조연 배우들이다. 앉은 좌석에서 눈 크게 뜨고 집중해서 보니 커튼콜쯤에는 모든 배우가 멀리서도 구분될 정도로 극 중 각각의 임팩트가 뛰어났다. 자칫 잘못하면 오글거리거나 몰입이 깨질 수 있는 장면들도 배우들이 역량을 발휘했기에 손색이 없었다.
특히 ‘바이올렛, 도로시’ 역할의 한보라 배우와 ‘로렐라이’의 홍우진 배우, 신사의 합을 보여준 원종환, 김승용 배우의 쌍둥이 같은 합은 장면이 끝날 때마다 박수치게 만들었다. 한보라 배우의 도로시와 바이올렛 역할은 안나뿐만 아니라 관객인 나에게도 그의 따뜻한 손길이 느껴졌다. 안나의 가능성을 알아봐 주고 진심으로 경청해주는 자세가 그 마음만으로도 나의 어딘가가 쓰다듬어지는 느낌이었다. 홍우진 배우의 로렐라이는 중간에 그 서사가 나와서 전체 이야기에 부피감을 더해주었다. 로렐라이가 될 수밖에 없었던 사연을 통해 당시 영국에서 여자가 글을 쓰는 것에 대한 반감, 하지만 누군가 한 명이라도 지지해주고 여자들이 자유롭게 글을 쓸 수 있도록 길을 펼쳐주는 존재가 있었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고 로렐라이의 존재가 극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고도 생각했다.
감초 중 감초라고 할 수 있는 ‘신사즈’, 원종환 배우와 김승용 배우는 1인 2역을 맡았는데 신사로서 합이 다음엔 어떤 장면을 보여줄지에 대한 기대감으로 내 눈을 반짝이게 했던 게 잊히지 않는다. 그들이 나올 때마다 내 몸은 앞으로, 더 앞으로, 하마터면 무대에 올라가서 같이 춤을 출 뻔했다. 코믹하기만 한 게 아니라 마지막 재판에서 결정적인 역할까지 해주는 그들 덕분에 재판 장면이 더욱 풍성해졌다. 이 외에도 등장하는 모든 배우가 본인의 역할에 푹 빠져들어 조명이 비추지 않을 때도 그 사람 자체를 연기해주기 때문에 ‘레드북’에 휩싸여 있는 모든 인물이 밉지 않고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아 이제야 내용에 대해 이야기 한다. 가장 알아본 건 사람들이 뭐라고 쏟아내든 본인을 부끄러이 여기지 않고 당당하게 맞서왔던 안나도 사실은 상처받고 있었다는 것이다. 바이올렛이 ‘이야기를 써보렴’이라고 말할 때도, 브라운이 의도야 어찌 됐든 안나만의 의미 있는 일을 해보라고 했을 때도, 안나는 주저한다. 사람들의 매서운 눈길을 받는 안나가 정말로 본인이 잘할 수 있는 게 있는지 의심하는 장면에서 그 단단해 보이던 안나도 사실은 속이 말이 아니었음을 느낄 수 있다. 그러던 중 ‘로렐라이 언덕’이라는 여성 문학회에 들어가며 글로서 입증해낸다.
처음 ‘사랑은 마치’ 넘버만 알고 ‘레드북’을 접했을 때는 그저 사랑에 대한 이야기인 줄 알았다. 물론 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맞다. 하지만 그 범위가 훨씬 넓고 싶었다. 안나와 브라운 사이의 사랑도 있지만 가장 중요하게 다루고자 한 건 안나의 글에 대한 사랑, 좀 더 세밀하게는 여자가 글을 쓰는 것이 금지되던 공간에서도 글을 사랑하길 멈출 수 없었던 사랑, 넓게는 그런 본인을 억압하지 않고 자유롭게 해주고 싶었던 자신의 인생을 위한 사랑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안나만이 실현한 게 아니다. 잡지 ‘레드북’에 실린 안나의 연재글 덕분에 팍팍한 삶에서 벗어나 잠깐이라도 자유를 맛보며 본인의 삶을 실감 나게 마주할 수 있었던 모든 사람에게도 해당한다.
안나는 나대로, 꾸밈없이, 흉내 내지 않고, 진심을 담아 털어놓고 싶은 이야기를 펼쳐내며 자신을 이해하게 되었고 그런 안나의 글에 영향을 받은 사람들은 글을 읽으며 자신을 이해하게 되었다. 공감에서 시작된 이해는 금기되었던 것의 방향을 바꾸었고 억압되던 것으로부터 숨통을 만들어줬다. 안나와 글이 중심이 되는 이 극은 결코 안나 혼자서 해낸 것이 아니다. 안나를 지지해주고 응원해준 사람, 비판과 비난 속에서도 안나와 글의 곁을 지켜준 사람, 영향이 닿은 그 모든 독자까지 모두가 자기 자신의 인생을 위로하고 응원하게 만들었다. 글을 쓰면서 자신을 부정하지 않았던 안나에게 중요한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이었고 그렇게 이야기를 만드는 것은 누군가에게는 희망과 변화를 도모했다. 극의 말미에서 모든 인물이 구분갈 정도로 임팩트 있었다고 말한 것에는 그들의 인생 하나하나가 보였다고 할 수도 있다.
레드북을 읽고난 후
이야기는 과거, 현재, 미래를 꿈꾸고 움직이게 한다. 이야기를 통해 과거를 돌아보며 위로할 수 있고 맞닥뜨린 현재를 헤쳐나갈 힘을 부여해준다. 나아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기대하게 하고 그 미래를 곧 현실로 만들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이게 한다. 이야기를 상상함으로서 미래를 바꿀 수 있다고는 생각했지만, 과거와 현재에 영향을 줄 거란 생각은 못 했던지라 이걸 깨닫고는 왠지 멍해졌다.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전혀 공감하지 못할 수 있지만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대부분 것을 바꿀 수 있다. 실천까지 한다면 베스트겠지만,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나 자신은 3초 전의 나와는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 좀 더 용맹하고 대담해진 나 자신을 만나게 되면 앞으로 하는 선택들은 오롯이 나를 위한 것이 되어있으리라는 걸 조심스럽게나마 장담하고 싶다.
나는 내가 사랑해줄 때 가장 빛이 난다. 주변 사람들의 애정을 받고 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장 효과 좋고 오래 가는, 또 휘황찬란하게 나를 빛낼 수 있는 대상은 나뿐이다. 그래서 안나도 소중한 사람들보다 자신을 위한 결정을 우선할 수밖에 없었겠지. 내가 나를 위하는 마음은 어쩔 도리가 없다. 나는 곧 나를 말하는 사람이므로. 그 안쓰럽고도 사랑스러운 나 자신들을 좀 더 아껴주고 들여다 봐주는 것이 나로 태어나 내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