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원에서 ‘한강’의 소설을 읽는다. 낯설다. 혹자는 「내 여자의 열매」 같은 단편을 떠올릴 수도 있을 텐데, 아쉽게도 무관하다.
식물원 안 카페 2층에는 드문드문 책장이 있다. 어울리지 않는 저자들이 나란히 서 있다. 카페 주인의 취향이라기보다는 기증받은 구성으로 보인다. 그 일관성 없는 도열이 반갑다. 『흰』도 그곳에 있다.
간혹 이런 곳에선 ‘책’이라는 물성에 뒤틀린 사랑이 핀다. 무슨 말이냐면, 그곳에 어울리지 않는 책이기에 그것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으로 전환된다. 슬쩍해야겠다는 어떤 행위적 욕망이라기보다는 막연히 가지고 싶다는 본능적 소유욕에 가깝다.
식물원 『흰』은 초판 3쇄로 ‘2016년 6월 1일’에 발행되었다. 1쇄 발행이 ‘2016년 5월 25일’이니 그 간극이 예닐곱밖에 되지 않는다. 노벨문학상 수상 이전에도 그가 얼마나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그렇다고 1쇄도 아닌 3쇄를 굳이 가지고 싶으냐고 묻는다면, 그와 관련된 기억을 꺼낼 수밖에 없겠다.
문학깨나 애호하는 사람이라면 있을 법한 경험일 텐데, 고등학생 때 특정 작가에게 매료되어 도서관에 꽂힌 그의 책을 모조리 읽었다. 전권이 있지는 않았으나 알려진 책은 대개 있었다. 그렇게 『흰』과 조우했다.
그전에 읽었던 그의 여타 소설과는 사뭇 달랐다. 비교적 분량이 적었고, 소설이라기보다는 산문, 즉 자전적 소설에 가까웠다. 사실 그렇게 보일 뿐이지, 어디까지가 ‘나’이고 어디까지가 ‘그녀’인지 몰라 짐짓 ‘자전적’을 판단할 순 없었다. 무엇보다 사이사이에 사진이 있었는데, 딱히 내용과 관련 없어 보이는 그 이해 못 할 괴리가 새뜻했다.
그 이끌림은 가지고 싶다는 생각을 거쳐 온라인 구매까지 이어졌다. 그런데 착오가 있었다. 택배를 까놓고 보니, 생뚱맞은 판본이 들어있었다. 무엇보다 사진이 온데간데없었다. 뒤늦게 깨달은 바로는, 도서관에 꽂힌 책은 출판사 ‘난다’에서 출간되었고, 배송받은 책은 ‘문학동네’였다. 지금은 ‘난다’가 ‘문학동네’의 임프린트 출판사(일종의 자회사)인 것을 모르지 않으나, 당시에는 출판사에 대한 개념이 그리 정립되지 않았기에 개정된 줄 모르고 구매하지 않았을는지 싶다. 책을 펼쳐 보니 2018년 4월 25일 부로 2판 1쇄가 발행되었고, 소장본은 2판 5쇄로 2019년 1월 14일이다.
돌이켜 생각해 보아도 출판사가 바뀐 것은 충분히 이해하나, 어떤 연유로 사진이 빠졌는지는 도통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또 제목 그대로를 담았던 표지가 안색이 흐려진 이유도 알지 못한다. 눈여겨볼 부분은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문학동네'에서 개정 3판이 발행되었는데, 다시금 표정이 밝아졌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런저런 이유로 이따금 ‘난다’의 『흰』을 만나면, 가지고 싶다는 생각이 막연히 떠오르는 것이다. 사실 초판이 절판되었다고는 하나 적잖게 중쇄를 찍어낸지라 중고로 구매하려면 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럴 계획은 따로 없다. ‘난다’의 『흰』은 그 물성 자체를 가지고 싶다기보다는 관련된 기억을 간직하고 싶을 뿐이다.
세 번이나 옷을 갈아입은 『흰』을 두 번 읽었지만, 모두 같은 옷으로 만났다. 겉옷을 달리한다고 해서 그 속내가 크게 달라지지는 않겠지만, 독자의 시선은 다소간 달라질 수 있다. 나에겐 이름과 어우러진 하얀 웃음 속 이제는 자취를 감춘 흑백 피사체만으로 기억을 아로새기련다. 어쩌면 제각기 소장하고 있는 『흰』의 겉모습만으로 ‘한강’에 대한 애정의 길이를 단편적으로 가늠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리하여 누군가 묻는다면, 애써 변명할 것이다. 저는 2판을 소장하고 있기는 한데, 초판으로만 두 번 읽었고요……
그 연장선에서 눈에 밟힌 소설 한 꼭지를 옮긴다.
「입김」
어느 추워진 아침 입술에서 처음으로 흰 입김이 새어나오고, 그것은 우리가 살아 있다는 증거. 우리 몸이 따뜻하다는 증거. 차가운 공기가 캄캄한 허파 속으로 밀려들어와, 체온으로 덥혀져 하얀 날숨이 된다. 우리 생명이 희끗하고 분명한 형상으로 허공에 퍼져나가는 기적.
어느 추워진 날 나는 흰 숨을 쉴 것이고, 그 숨을 볼 것이다. 직관을 직감할 때 이 글에 숨어볼 것이다. 한숨을 내쉬어도 흰 김이라 변명할 수 있다면. 그날엔, 이 기억을 꺼내 흰 김에 싸 먹자.
[부연]
책은 그 자리 그대로 꽂아두고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