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 탑승 하루 전, 늦은 좌석 선택으로 창가도 복도 쪽도 아닌 가운데 양쪽에 사람에 낀 좌석에 앉고 말았다. 그래도 화장실을 자주 가는 편도 아니고 다운 받아온 영화도 있었고 옆에 친구도 있었기에 큰 불만은 없었다. 왼쪽은 친구가 앉아서 오른쪽에는 누가 앉으려나 궁금해하던 찰나에 한 꼬마 친구가 나타나 착석했다. 보아하니 꼬마 친구의 가족분들은 우리보다도 늦게 좌석 선택을 하셨는지 전부 따로 앉게 되셨나 보다. 꼬마의 부모님은 혼자 앉는 꼬마가 걱정되셨는지 자리를 옮기지 않아도 괜찮겠냐고 재차 물어보셨다. 하지만 아이는 연신 괜찮다고 했다. 씩씩하게 혼자 앉는 꼬막 나와 내 친구 눈에는 그저 귀엽게 보였기에 우리는 인사를 했다.
“안녕!”
“안녕하세요^^..”
말간 눈웃음과 함께 꼬마가 대답해왔다. 경직되어있던 몸이 사르르 풀리며 수줍고도 순하게 인사하는 모습이 사랑스러웠다. 보통은 경계하는 눈빛이 서려 있거나 아주 수줍어하는 탓에 인사를 받아주지 않는데, 이렇게 순한 얼굴은 오랜만이라 왠지 감격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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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는 어린 나이 같아 보였지만 (내 나이가 아니면 나이 가늠을 못하겠다.) 비행기가 처음이 아닌 듯했다. 오히려 나보다 능숙했다. 내 경우에는 성인이 되고 비행기를 꽤 타 봤는데도 좌석에 모니터가 있는 비행기는 처음이었다. 영화도 볼 수 있고 게임도 할 수 있고 비행 현황도 볼 수 있었다. 여기까지는 놀랍지 않았는데 옆에서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꼬마가 게임을 하기 위해서 모니터에 붙어있던 리모컨을 분리한 것이다! 리모컨인 줄도 몰랐고 분리되는 건 더더욱 몰랐기 때문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곧바로 어떻게 하는 건지 물어보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아이는 사용법을 척척 알려주고는 능숙하게 바둑을 두기 시작했고 리모컨을 자유자재로 컨트롤했다. 마치 비행기가 자기네 집 오락실인 것처럼.
꼬마 친구가 능숙해 보이긴 했어도 ‘아이는 아이구나.’ 싶었던 순간도 있었다. 비행기 안에서 사람들이 일제히 비슷한 행동을 할 때마다 꼬마는 나를 흘깃 쳐다보고는 따라 했다. 한번은 쥐고 있던 동물 인형을 떨어트려 어쩔 줄 몰라 해서 주워줬을 때도 그 말간 눈웃음으로 감사하다고 했다. 딱 봐도 착하고 순한 아이 같았다. 그런데 어쩐지 동시에 걱정스런 마음도 들었다. 문득 보이는 행동들과 말투에서 꼬마 친구가 뭔가를 참고 사는 건 아닌지 싶었기 때문이다.
심성이 좋든 나쁘든 앞으로 자라날 아이를 내 멋대로 분류하고 정의 내리는 건 좋지 않지만 종종 나도 모르게 아이를 분류하고 한다. 산만한 아이, 착한 아이, 순한 아이, 못된아이. 물론 그 끝을 아이의 잘못으로 귀결시키진 않는다. 이날 본 아이는 나의 눈에 착한 아이로 비쳤다. 그리고 거기서 시작된 걱정은 대개 이런 것들이다. 혹시 벌써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는 건 아닌지, 예쁨받는 법과 미움받지 않는 법을 너무 빨리 습득해버려서 아이답게 행동하지 못하는 건 아닌지, 주장을 삼키고 하고 싶은 말을 참고 사는 건 아닌지 같은 것들. 물론 1시간 30분동안 비행기에서 본 것만으로 그 꼬마와 삶을 판단 내릴 순 없지만, 그냥 당시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그런 마음에서인지 챙겨주고 싶었다. 혼자 앉은 비행이 너무 심심하지 않게, 너무 외롭지 않게, 좀 더 바라자면 좋은 기억으로 남을 수 있게. 혹 이 모든 게 내 오지랖이었다면 성가신 어른으로 기억되지만 않았으면 한다.
기내식이 나왔고 아이도 따라서 테이블을 펼쳤다. 아이는 펼친 테이블을 보면서 난감한 표정을 지었는데 시선을 따라가 보니 음료를 놓는 곳에 음식물이 묻어있었다. 게임기를 조종하던 때와 달리 어쩔 줄 몰라 하는 얼굴이 영락없이 어린 아이의 표정이었다. 나는 재빨리 물티슈로 그 얼룩을 닦아주었다. 아이는 어김없이 말했다.
“감사합니다^^..”
아이의 테이블에 기내식이 올려졌고 부모님께서 오셔서 물을 놓는 곳부터 볶음밥에서 먹을 수 있는 것, 식사 후 할 일까지 하나하나 일러주셨다. 부모님은 걱정과 당부의 말을 늘어놓으셨지만 아이는 믿음직한 얼굴로 전부 알겠다고 했다. 부모님께서 자리로 돌아가신 후 믿음직한 표정은 어디가고 다시 어린 아이의 얼굴이 돌아왔다. 밥은 5분의 1도 비우지 않았고 앉은 채로 주토피아를 보고 있었다. 하나둘 승객들의 기내식이 치워지기 시작했고 나도 내 것을 승무원분께 드렸다. 아이의 어머니께서 음식을 다 먹으면 승무원분께 치워달라고 말하라고 하신 걸 들었다. 하지만 일찍이 식사를 끝냈는데도 아이의 기내식은 계속해서 테이블 위에 놓여 있었다. 내 기내식을 치우면서 승무원분이 내게 아이의 기내식도 치우느냐고 물으셨고 나는 아이의 의사를 물어본 뒤 치워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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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간 30분동안 옆에서 지켜보며 느낀 것들이 있다. 벌써부터 사람들의 눈치를 보는 저 연약한 마음이 안쓰럽긴 해도 그 마음 중심부에 있는 순한 심지가 오래 보전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앞으로 고약하고 힘들고 이해되지 않는 일의 연속이겠지만 부디 착하고 바른 마음을 잃지 않기를 바랐다. 착하게만 자라 달라는 어른들의 말을 내가 누군가에게 투영하고 있었다.
하지만 착하게‘만’ 살라는 건 아니다.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고 비겁한 일 투성이기에 착하게만 사는 건 어쩌면 나 자신을 서서히 망치는 것일지도 모른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착하다’란, 감사할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으며 그 맑게 갠 미소를 머금은 “감사합니다”를 잃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다.
하루하루 더 살아가며 느끼는 건 사람들은 누군가의 친절을 당연히 여기기 쉽고 그런 사람들이 모여 만들어지는 사회는 순수한 빛에 어린 미소를 잃어가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언젠가 내 삶도 잠시 그런 주변에 둘러싸여 있을 때가 있었고 언제든 그렇게 되기 십상이고 당장 내일 또 그런 순간이 올지도 모른다. 그래서 내게는 이런 만남과 기억이 소중하다. 어렸을 때의 기억, 어린 시절에 했던 생각들과 어렸기에 가질 수 있었던 순수하고 예쁘고 투명한 마음들. 이제는 간접적으로 떠올리는 것도 힘에 부치기에 그런 빛을 가지고 있는 꼬마 친구를 만나는 일은 굉장히 귀하다. 꼬마일 때 만나는 한 명 한 명의 어른이 얼마나 그 순간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지 알기에, 아직 많이 모자라긴 해도 부끄럽지는 않은 어른이 되려 노력한다.
알고 있던 것을 까먹으려 할 때쯤 나타나 준 이 꼬마 친구에게 별로이지 않은 어른이었길 바라며, 그리고 감사함을 표하며, 착륙 인사를 건넨다.
“안녕! 좋은 여행이었길!”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