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야구를 둘러싼 열기가 뜨겁다. 프로야구가 천만관중의 시대를 맞이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오늘날 야구는 대중에게 각광받는 스포츠이다. 이러한 성행 가운데, 야구장을 찾는 발걸음은 더욱 늘었다. 경기를 화면 너머가 아닌 직접 보기 위해 팬들이 찾아오는 것이다. 그러나 빗발치는 인기 속에서 직관 티켓을 거머 쥐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이유는 좌석 예매를 성공해야 하기 때문인데, 그 과정이 상당히 지난한 탓에 이른바 ’피케팅’이라는 말이 탄생하기도 했다. 피케팅은 입장권을 구하려는 티케팅(ticketing)과 피가 튈 만큼 치열하다는 의미의 합성어로, 예매를 위한 일련의 절차가 경쟁과도 같음을 나타낸다.
최근 국내 모든 구단은 돈을 더 투자해야만 더 좋은 자리를 얻을 수 있도록 유료 멤버십 제도를 도입했다. 이른바 ‘선예매 제도’를 도입한 것인데, 이는 남들보다 먼저 예매할 수 있는 권리를 돈을 지불하고 구매하는 시스템이라 할 수 있다. 하물며 그들은 멤버십의 등급을 나누어 최상위 회원에게 우선적으로 권리를 주는 상품화를 진행하기도 했다. 그렇기에 남은 좌석을 선점하는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게 되는 것이다.
한창 달궈지는 야구를 향한 열기, 하지만 그런 아지랑이 속에서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한 모서리가 존재한다. 설레는 마음을 품고 경기장으로 향하는 사람들과 그 밖에서 단지 서성일 수밖에 없는 이들, 바로 고령층이다. 표는 경기일로부터 일주일 전 온라인을 통해 구매할 수 있다. 하지만 디지털 기기에 미숙한 고령층이, 더군다나 젊은 층마저 버거워 하는 온라인 예매를 통해 표를 얻는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때문에 온라인 예매를 시도조차 해보지 못하는 고령 팬들은 경기장 밖에서 현장 예매만을 기다릴 뿐이다.
문제는 이러한 현장 예매조차 성공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점이다. 입장권은 전량 온라인 예매를 통해 판매되며 취소표조차 온라인에서 풀린다. 그리고 끝내 팔리지 않는 표가 현장에서 판매되는 것이다. 온라인 예매의 치열함을 떠올리면 현장에서 입장권을 구매하는 것은 사실상 거의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이에 현장 예매를 위해 줄을 서있던 LG 트윈스팬 최씨는 “인터넷에서만 전부 다 100% 예매하니까 나같이 나이 칠십이 다 된 사람들은 못 산다. MBC청룡 때부터 팬인데 못 들어가는 거다.”라며 불만을 토로했다. 경기장 안으로 향하면 관람객의 대다수는 젊은 층이며, 50~60대 이상은 찾기 힘들다. 경기장 내에 있던 관람객 최씨는 “딸한테 야구 표를 구해달라고 말해야 야구를 관람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렇듯 온라인 예매를 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는 고령층은 가족의 힘을 빌려야만 겨우 관람이 가능해진다. 야구를 열렬히 사랑하는 마음은 모두 같음에도 불구하고 ‘디지털 격차’라는 굳건한 벽 앞에서 누군가의 발걸음을 가로 막히는 현실이다.
보건복지부가 2023년 65세 이상 노인 약 9,955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83.6%가 메시지 수신에, 74.7%가 메시지 전송에 스마트 기기를 활용한다. 사진 및 동영상 촬영은 52.7%, 정보검색 및 조회는 51.1%를 차지한다. 반면, 애플리케이션 검색 및 설치는 13.4%, 키오스크 활용 주문 및 접수는 17.9%로 급격히 이용률이 하락함을 알 수 있다. 이는 노년층이 스마트 기기를 보유하고 있더라도 전화나 문자, 촬영 등 기본적인 기능을 위주로 사용하고 있으며, 그 밖의 기능을 사용하는 데에는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디지털화가 급격히 확산되어 가는 요즘, 그로부터 편리함을 얻기도 하지만 동시에 소외되는 이들 역시 나타났다. 이는 비단 야구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택시를 탑승할 때나 키오스크로 주문할 때 등 소외는 일상에서 몇 번이고 빈번히 발생한다. 이는 문화를 향유함에 있어도 마찬가지인데, 일례로 영화관이 있다. 과거 영화관은 직원을 통해 현장 예매를 할 수 있었으나, 현재는 온라인 혹은 키오스크를 통해서만 예매가 가능하다. 그렇기에 온라인이나 디지털 기기에 능통하지 않은 이들은 영화를 관람하는 것조차 불편한 상황이다.
최근 일종의 고유 명사처럼 자리 잡은 ‘효도 티케팅’ 또한 이와 마찬가지이다. 효도 티케팅이란 임영웅이나 나훈아 등 중장년층 및 고령층에게 인기가 많은 아티스트의 콘서트 티켓을 자녀가 부모에게 선물하는 것으로, 효도와도 같다 하여 등장한 말이다. 해당 현상은 겉보기에는 따뜻한 광경으로 비추어진다. 하지만 효도티케팅은 결국 온라인을 기반으로 하는 치열한 티케팅에 취약한 이들이 타인의 손을 거쳐야만 공연을 관람할 수 있음을 시사하기도 한다. 만약 부탁할 자녀가 손주가 없다면, 그들은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 기댈 곁이 없는 사람은 공연에 함께할 수 없는 것일까. 타자에게 의지해야만 비로소 닿을 수 있고, 능동적으로는 다가갈 수 없는 존재. 그런 것을 편의이자 발전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인가. 사회는 이러한 지점을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디지털 소외 계층과 관련된 문제 제기는 몇 년 전부터 끊임없이 등장했다. 그러나 여전히 한편에는 키오스크를 사용하지 못해 쩔쩔매는 사람들이, 그 건너에는 다른 이의 도움만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 나날이 발전하는 기술과 그 간격을 따라잡지 못하는 자들. 이러한 문제를 언제까지 지켜볼 것인가. 당장 스스로가 직면하지 않았다고 방관하기엔 우리도 분명 무언가 앞에서 취약해지는 순간이 올 것이다. 무릇 생명은 나이들어가므로, 이건 모두의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