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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부터 ‘창의력’은 마치 선행학습처럼 칭찬받아야 할 자질로 주입되었다. "넌 참 창의적이야"라는 말은 하나의 축복처럼 들렸고, 창의성이 있다는 것은 미래의 무한한 가능성을 암시하는 듯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그 단어의 실체에 점점 의문을 품게 됐다. 창의력이란 정확히 무엇인가? 무엇을 얼마나 새롭게 해야 ‘창의적’이라 불릴 수 있는가? 그리고 그 ‘창의성’이라는 개념은 과연 객관적인가?

 

나는 이 질문들에 뚜렷한 답을 찾지 못한 채로 ‘창의성’이라는 단어를 점점 피하게 되었다. 오히려 그럴싸한 말 뒤에 숨어있는 공허함이 나를 더 멀어지게 했다. 그리고 그 회의감 끝에서 만나게 된 책이 새뮤얼 W. 프랭클린의 ‘창의성에 집착하는 시대’였다.

 

창의성이란 무엇인가, 애초에 정의 가능한가? 책은 시작부터 명료한 정의 대신, 창의성이 얼마나 모호한 개념인지를 고백하며 출발한다. 창의성은 천재 예술가의 전유물처럼 여겨지기도 하고, 일상의 작은 기지에도 붙여지곤 한다. 누군가는 테이프로 욕실 타일을 메운 것도 ‘창의적’이라 말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베토벤의 교향곡을 예로 든다. 이렇듯 창의성은 그 쓰임과 맥락에 따라 얼마든지 변주되는 개념이며, 그래서 더욱 정의 내리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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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이 모호함을 정면으로 응시한다. 그리고 그 모호함 속에 담긴 시대적, 이념적 배경을 추적해 나간다. 흥미로운 점은, 우리가 창의성을 ‘본성’처럼 여기는 데 반해, 이 개념이 사실은 철저히 역사적 산물이라는 점이다.

 

 

 

창의성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전후 미국, 그리고 이데올로기

 

프랭클린에 따르면, 창의성이 본격적으로 대중 담론에 등장한 것은 20세기 중반, 특히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사회에서다. 경제 대공황을 딛고 전쟁 승리를 거머쥔 미국은 자본주의의 정당성을 내세우는 과정에서 새로운 인간상을 필요로 했다. 그 인간상은 단순히 부지런하거나 성실한 사람이 아닌, 자기 주도적이고 유연하며, 독창적인 사람이었다. 이는 곧 공산주의 국가의 획일적 인간상과 대비되는 전략적 개념이었다.

 

이러한 흐름에서 ‘창의성’은 일종의 문화적 무기가 되었다. 과학기술, 예술, 기업 활동 어디에서든 ‘창의적인 인간’이 이상적인 인재로 부상했고, 이는 교육과 산업 전반에 스며들었다. 창의성은 더 이상 예술가들의 전유물이 아닌, 모든 인간이 가져야 할 능력처럼 포장되었다.

 

이러한 사회적 요청과 역사적 흐름을 따라 창의성은 숭배의 대상이 되었고, 우리는 어느새 ‘창의적인 인간’이 되기 위해 자신을 끊임없이 증명해야 하는 시대를 살고 있게 된 것이다.

 

책은 예술과 창의성의 관계에도 중요한 균열을 제시한다. 많은 이들이 예술가를 창의성의 상징처럼 여긴다. 하지만 이 책은, 창의성이 반드시 예술적 재능과 연결되지 않으며, 예술 역시 창의성 외의 수많은 맥락과 기술, 반복과 실패로 이루어져 있다고 말한다.

 

예술교육자 빅토어 로웬펠트의 말처럼, 창작은 단순한 표현이 아니라 자기 동일화의 과정이다. “베토벤은 교향곡 9번 그 자체였다”는 표현은, 창작이 결과물이 아니라 존재 방식이었음을 말해준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창의성을 오히려 ‘성과’나 ‘도구’로 대하고 있으며, 이는 창의성의 본래적 감각을 상실케 한다.


 

 

AI와 창의성, ‘대체 불가능함’이라는 허상

 

우리는 AI가 인간을 완전히 대체하지는 못할 거라 믿으며, 그 이유로 종종 ‘예술’을 든다. “AI는 감성을 이해하지 못하므로 예술은 인간의 영역이다”라는 믿음 말이다. 그러나 이 책은 그런 낙관을 경계한다. AI는 인간의 창작물을 학습하고, 그것을 재구성하여 ‘그럴듯한 창작물’을 만들어낸다. 물론 그것이 예술인지, 단지 기술적 산출물인지는 논란이 있겠지만, 그 판단 역시 결국 수용자의 몫이라는 점에서, ‘창의력’이라는 마지막 보루조차 위태로워진다.

 

그렇다면 우리가 끝까지 붙잡아야 할 창의성은 무엇인가? 이 책은 그 답을 직접 주지 않는다. 다만 우리는 ‘창의성’이라는 개념에 담긴 이데올로기적 무게를 인식해야 하며, 맹목적인 숭배에서 벗어나 다시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말한다.

 

‘창의성에 집착하는 시대’는 결국 한 가지 중요한 제안을 던진다. 그것은 창의성을 버리거나, 반대로 계속 찬양하자는 것이 아니라, 창의성이라는 개념 자체를 민감하게 바라보는 감수성을 회복하자는 것이다. 창의성이 역사적 산물이라면, 그것은 시대에 따라 바뀌고 재구성될 수 있는 개념이다. 즉, 창의성은 단단한 정답이 아니라, 사회적 맥락에 따라 끊임없이 질문해야 할 대상이다.

 

책장을 덮으며, 나는 내가 가졌던 창의성에 대한 회의가 비단 나만의 것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은 ‘창의력’이라는 단어에 불편함을 느껴본 이들에게 그 불편함의 근원을 짚어주는 안내서이며, 동시에 우리가 어떻게 더 자유롭게 창의적일 수 있는지에 대한 깊은 성찰을 남긴다.

 

‘창의성’이라는 말을 너무 당연하게 여겨왔던 이들에게 이 책은 하나의 전환점이 될 것이다. 마치 “왜 우리는 창의적이어야만 할까?”라는 단순한 질문을 새삼 낯설고 중요하게 만들어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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