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reaction 제반응
친구들과 오랜만의 영상통화에서 초반 주제는 건강이었다. 저마다 '나만 이런 거 아닌가, 어디 문제 있나' 우려했으나 입에서 나온 순간 모두의 것이 되었다. 언제부터였을까 이렇게 건강이 주요 대화 소재가 되기 시작한 건.
어느 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회사의 영향을 너무 많이 받고 있다고. 만병의 근원은 스트레스, 스트레스의 원인은 회사. 그런데 이렇게까지 회사에 휘둘리며 살아도 되나? 기분이 좋지 않았다.
주체적으로 자주적으로 건강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라서 일단 스트레칭부터 시작했다. 다리를 꼬지 않고 허리 세우고 경추가 올바른 자리에 잊게 하려고 노력을 아주 조금씩 하기 시작했다.
사실 직장인에게 제일 중요한 건 멘탈 관리인데 일단 놓지 않고 붙잡고 있는 것만으로도 큰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서럽지만 그렇다.
조금 이르게 퇴근 준비를 하던 날 포털 메인화면에 뜬 언론사 목록에서 조금 낯선 이름을 발견했다. '정신의학신문', 얼마 전 치료가 끝나고 단약하고 약간의 혼란에 빠진 상태라서 나도 모르게 커서가 향했다. 공감할 요소들이 많았다. 호더기질, 불안장애, 간헐적인 우울 등 눈에 보이는 많은 것이 내 이야기였다. 아니 수많은 것들 중에서 내 이야기만 쏙쏙 골라읽었다.
나는 불안장애 치료를 일단 마무리했다. 약 요량을 줄이다가 빈도를 줄이다가 단약 수순을 밟았다. 약을 줄이기 시작할 때는 괜찮았지만, 약을 끊을 때는 쉽게 판단이 서지 않아서 좀 더 유예기간을 두고 상비약을 받아뒀다. 걱정되는 부분을 숨기지 않고 의사 선생님에게 말했더니 한 번 경험했기에 어느 정도는 이제 극복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너무 작은 불안도 약으로 없애고 싶어 했던 마음이 들켰던 걸까. 갑자기 증상이 나타나더라도 바로 예약 잡을 수 없을 테니 만약을 대비하여 2주치 분량의 약은 처방하되 다음 진료 예약은 없었다. 졸업이란 게 이런 느낌일까. 이대로 끝일까 조금 얼떨떨했다.
그리고 잘 지낸다고는 못하지만 적당히 지내고 있다. 여전히 스트레스를 받으면 불안해지지만 이전처럼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 아침에 쓰는 일기가 제일 솔직한 마음을 드러낸다고 해서 비몽사몽일 때 한두 문장이라도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정신과 치료를 위해 썼던 일기 앱을 몇 달 만에 켰는데 다시 보니 지금의 나는 굉장히 호전된 상태였다. 또 불안해질까 봐 그게 불안해서 걱정을 떨쳐내지 못했다. 어떤 의미에서는 매몰되고 있었던 셈이다.
제반응(abreaction)이라는 용어가 있다. 억압되었던 고통스러운 기억이나 감정을 의식적으로 다시 떠올리고 경험함으로 스트레스나 긴장을 완화, 해소하는 것이라고 한다. 되새김질과 해소의 차이를 잘 모르겠다. 어떤 생각은 악화시키고 어떤 건 완화시킨다. 지금 무엇을 생각하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 어떤 상태인지 알아야 하는 걸까?
진료를 앞두고 내 상태를 알리기 위해 그동안 있었던 일과 그때의 감정을 기억해뒀다가 진료시간이 되면 털어놓았다. 안 좋았던 걸 복기하는 과정이었는데 스트레스의 중첩이란 느낌은 들지 않았다. 꾹꾹 눌러 담거나 어디에 쌓아놓지 않아서 말로 흘려보낸 것 같기도 하다. 매일 밤 미뤄둔 감정을 일기로 쓸 때는 서러웠는데 2주치의 증상을 정리해서 말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뭐가 다른 거였을까.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건강하기 위해서는 정보가 더 있어야 할 것 같다고. 음식을 먹기 전에 영양성분을 보는 일이나 스트레칭을 하거나 근력운동을 하는 것처럼 정신 단련을 위한 수단도 배워둬야겠다.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는 건 조금 어려운 일 같다. 배움에는 끝이 없다더니 부단히 공부를 해야겠다. 조금 더 나아질 나를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