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요즘들어 나에게 큰 변화가 생겼다. INTP의 정석이던 이전의 나는, 타인의 시시콜콜한 것들이 별로 흥미롭다거나 사랑스럽게 느껴지지 않고 그저 귀찮았다. 누군가와 함께하는 일정이 생기면 좋을 때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귀찮다는 감정이 날 지배했다. 그런데 요새는 인간 한 명 한 명이 사랑스럽다. 심지어 모르는 사람을 봐도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나사가 하나 빠진걸까? 어디서부터 이런 변화가 생겨났는지 짚어봐야겠다.

 

 

 

#1 네덜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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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의 지각변동은 유럽 교환학생 시절에 처음으로 감지되었다. 나는 네덜란드로 6개월 간 교환학생을 다녀왔는데, 그곳의 사람들은 한국인과는 마인드셋부터가 다른 것을 보고 적잖이 충격을 받았더랬다. 우선 타인의 외모에 대하여 이러쿵저러쿵 평가하지 않다보니 모두가 당당하고 자유롭게 살아간다. 아기들이 아주 많고, 그 누구도 시끄럽다고 핀잔주지 않아서 어딜 가도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문으로 드나들 때는 뒷사람을 위해서 꼭 잡아주고 눈을 마주치면 눈인사도 잊지 않는다. 모르는 게 있을 때 주변 사람들에게 질문하면 대부분 친절하게 알려준다.

 

이런 환경 속에서 6개월을 살다보면 모든 사람은 존중받아야 하며 개성있는 존재라는 가치관이 내재화된다. (보편화 할 수는 없겠다. 일단 나의 경우 그러했다.) 한국에 돌아온 지금은 다시 서로 눈치보고 경쟁하는 사회 속에 적응해가고 있지만, 나 스스로 귀중하다는 마음은 내 안에 굳게 자리잡았다. 교환학생을 다녀와서 수많은 좋은 점이 있었지만 이 지점이 가장 소중하지 않을까.

 

 

 

#2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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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초등학교 3학년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육봉사활동을 했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지지리도 집중을 못해서 좀 애를 먹었는데, 날이 갈수록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서 소통하는 방법을 배웠다. 앞에서 밝혔듯 나는 로봇같은 성격의 소유자 INTP라서 아가들이 좋아하는 타입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똘망똘망한 눈망울을 보고있으면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이 들었다. 말을 안 들을때는 꿀밤 한 대 쥐어박고 싶다가도, 귀여운 목소리로 재잘재잘 떠드는 것을 듣다 보면 근심 걱정을 잊게 되었다.


봉사를 한 이후로, 지나가는 사람을 볼 때 ‘저들도 모두 어린이 시절이 있었겠지?’ 하는 마음이 든다. 그렇게 생각하다보면 세상에 밉기만 한 사람은 없는 것이다. 사랑할 이유를 찾을 수 없는 사람은 없다. 물론 가끔 마음이 힘든 날, 세상이 날 괴롭히는 것 같은 날, 결정적으로 스스로를 사랑할 수 없는 날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사람이 귀찮고 세상이 미워지기도 한다. 그래도 언제나 행복하기만 한 사람은 어딘가 하나 고장난 게 틀림없다고 생각하며 나를 위로한다. 대부분의 시간에 사람을 싫어했다면 이제는 대부분의 시간에 사람을 사랑스럽게 볼 수 있으니, 이정도면 엄청난 발전 아니겠는가?

 

 


#3 에브리띵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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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주 좋아하는 영화 중에는 ‘에브리띵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가 있다. 에블린(양자경)이 다양한 멀티버스를 누비며 딸 조부 투바키에 맞서 세상을 구하는 이야기이다. 이 영화의 훌륭한 점은 수도 없이 많지만, 나에게 가장 와닿는 것은 ‘허무주의를 이겨내는 법은 결국 인간에 대한 사랑’이라는 주제의식이었다. 인생에 대해 생각하다보면 허무할 때가 많다. 허준이 교수가 서울대학교 졸업식 축사에서 말한 것처럼 우리는 "취업준비, 결혼 준비, 육아, 교육, 승진, 은퇴, 노후 준비를 거쳐 어디 병원 그럴듯한 일인실에서 사망하기 위한 준비에 산만해지기” 쉽다. 하루하루의 일과는 정신없으며 피곤하고, 그 속에서 꿈을 좇다가도 자잘한 실패에 무력해지기 일쑤이다. 이런 생각을 하다보면 축 처진다.


그러나 에블린의 남편이 웨이먼드 왕이 간절히 호소하는 것처럼, 우리에게는 인간에 대한 친절함과 사랑이라는 열쇠가 있다. 인생이 난장판인 것 같고 세상이 다 싫을 때에도, 옆에 있는 사람이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내가 다시 주변 사람들을 친절히 안아줄 때 비로소 우리는 허무와 무기력에 맞설 수 있게 된다. 광활하고 때로는 공허한 우주 속에서 우리가 믿을 구석은 내 주변의 사람들이다. 인류애는 단순히 이념이라기보다 그 자체로 존재 방식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지나가는 사람을 사랑스럽게 보는 것, 그게 내가 인생에 맞서 꿋꿋이 살아갈 수 있는 이유이다. 이것이 교환학생과 봉사활동, 그리고 에브리띵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가 나에게 알려준 소중한 교훈이다.


인간을 사랑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바로 이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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