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총량의 법칙이 있는 것 같다. 공부, 연애, 운동… 장르가 뭐가 됐든 각자에게 주어진 몫이 있다고 생각한다. 누구는 10대에 연애의 총량을 다 써버리고, 누군가는 서른 넘어 몰아서 사랑을 한다. 어떤 이는 어릴 적부터 유난히 부지런하다가, 어느 순간 완전히 멈춰버리기도 한다. 인생의 많은 일들이 신기하게도, 사람마다 정해진 속도와 크기만큼 도달하는 듯 보인다.(추후에 바뀔 수도 있지만 말이다.)
그리고 지금, 현재, 나에게 주어진 총량 중에서 가장 큰 건, 나를 이해하는 일인 것 같다. 누군가를 이해하는 일보다, 무언가를 잘 해내는 일보다 결국은 내가 나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데 가장 많은 시간과 감정이 필요하다 생각한다.
그런데 그걸 채우는게 참 쉽지가 않다. 모순이 가득한 내 모습을 마주할 때마다 이해하지 못하겠고, 미워하다가 또 어느 순간 좋아하게 되고, 조금은 괜찮다 싶다가도 다시 실망하고. 그 반복 속에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혼란스러워진다. 한결같지 못한 마음, 들쭉날쭉한 반응들을 보며 스스로를 바라보는 눈이 자꾸만 흔들린다.
마트 셀프 계산대에서, 어느 날은 계산이 느린 어르신에게 마음속으로 투덜대다가도, 또 어떤 날엔 똑같은 상황에 “급할 게 뭐 있어!” 하며 여유를 부린다. 나도 평생 젊은이가 아니고, 처음인 게 얼마나 많은데, 어르신은 또 얼마나 낯설까 싶어, 조심스레 다가가 “도와드릴까요,” 말을 건넨다. 퇴근길 지하철 안에서 등을 부딪친 사람에게 짜증이 올라왔다가도, 다음 날엔 나도 누군가에게 실수로 민폐를 끼쳐 놓고 민망해진다. 같은 상황인데도 반응은 다르다. 오늘은 좋은 사람 같다가, 내일은 정말 별로인 사람 같기도 하다. 명확하게 정의할 수 없는 마음이 들고, 괜히 나 자신이 낯설어진다. 사람들과 잘 지내고 싶고, 좋은 마음으로 살아가고 싶은데, 그게 늘 뜻대로 되는 건 아니다.
한동안은 그런 모순을 부정하며 살았다. “나는 왜 이럴까?”, “왜 이렇게 일관성이 없지?” 혼자 자책하고, 잘못된 부분을 뜯어고치려 애썼다. 하지만 요즘은 조금 다르게 생각하려고 한다. 자책하는 마음을 품지 않기 위해 애쓰는 순간, 이미 그건 별로인 사람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으로 말이다. 예민했던 날에도, 마음을 다잡으며 하루를 무사히 통과해 냈다면 그걸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며칠 전, 늦은 퇴근길에 마을버스를 내려 집으로 향하는 골목을 걷다가 갑자기 화가 났다. 큰일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그냥 하루 종일 내 안에서 일어난 감정들을 견디느라 지쳐버렸던 날이었다. 짜증을 내지 않기 위해 참은 말들,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머릿속에서 수차례 지운 문장들. 그렇게 하루를 붙들고 있는 감정들이, 하루가 끝날 무렵엔 말없이 밀려왔다.
집에 돌아오니 며칠 전 쌓아둔 빨래 더미가 눈에 들어왔다. 몇 번이고 마음먹었지만, 도저히 손이 가지 않았던 일. 이상하게 그 장면에서 마음이 복잡해졌다. 왜 이렇게 작은 것도 해내지 못하고 짜증만 낼까 싶다가도, 그래, 오늘 하루는 정말 충분히 애썼다고, 괜찮다고 말해주는 마음이 어디선가 들려왔다. 그건 내가 나에게 건넬 수 있는 작은 용서이자 위로였다. 그리고는 바쁘게 몸을 움직여 빨래를 다 정리하고 나니 오늘은 해냈다는 생각을 하며 속이 다 시원해졌다.
가끔은 나를 너무 잘 알기에 더 미워지기도 한다. 이럴 줄 알았다고, 또 이걸 못 참냐고, 왜 그때 그 말을 했냐고. 어쩌면 스스로를 향한 사랑은 무언가를 특별히 애정하고 아끼는 일이라기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끝까지 외면하지 않는 마음에서 시작되는 건지도 모른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 예민한 날에도, 다정한 날에도, 모순으로 가득한 날에도 끝끝내 정직하게 바라보는 일. 그것이 지금, 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으로 나를 사랑하는 것이란걸 이젠 조금 알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