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인생은 무작위적이고 예측 불가능하다. 나와 도무지 맞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인생을 바꿔놓기도 하고,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새로운 사건을 겪기도 한다. 다른 사람을 만남으로써 우리는 상처를 받을 수도, 세계를 확장할 수도, 더 나은 미래를 꿈꿀 수도 있다. 하지만 무작위적이라는 건 우리에게 느닷없이 절망이 닥칠 수 있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갑자기 나타난 폭력이 우리 삶을 망가뜨릴 수 있다는 것.『진실에 다가가기』는 우연의 친절함과 폭력성이 한 인생의 궤적을 어떻게 바꾸는지에 대한 글인 동시에 한 사람의 정체성, 우정, 상실,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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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회고록


 

회고록의 주인 후아 쉬는 대만계 미국인이자 이민 2세대이다. 책은 그의 음악적 취향과 부모님의 관계, 그래서 그가 유년기에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몇몇 장면으로 엮어낸다. 그의 아버지가 녹화해 보곤 했던 MTV, 타워 레코드를 거닐면서 찾고는 했던 음반들, 특히 너바나의 음악 같은 것들. 그런 문화적 유산 옆 한쪽에는 그가 물려받은 아시아계 미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이 있다. 이민 1세대인 그의 부모와 자신이 어떻게 다른지, 문화를 어떻게 경험하는지, 비주류인 아시아계 미국인으로서 살아가는 일들에 대해서 그는 쓴다. 그는 아웃사이더이자 너바나의 정신을 사랑하고, 자유를 열망하는 동시에 물리학자 아버지에게 공부가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듣곤 하는 전형과 비전형의 사이에 있는 아시아계 학생이다. 대학에 가면 자신의 말을 이해하는 비슷한 친구들을 사귀게 될 거라고 기대하는.

 

모든 것들이 기대처럼 흘러가지 않듯이 켄이 등장한다. 켄은 여러모로 작가와 대조되는 인물이다. 이민 3세대인 켄은 더욱 미국적이며, 그의 부모가 가지고 있는 일본인의 정체성도 희박하다. 그는 프래터니티(미국 대학의 남성 사교 모임)의 회장이며 옷을 잘 입고 전형적인 미인형의 여자친구와 사귀는, 여러모로 주류의 길을 걷는 학생이다. 책은 후아와 켄의 첫 만남, 그들이 공유했던 서로의 세계를 보여준다. 서로 도무지 맞지 않을 것 같은 그들이 어떻게 가까워지는지. 자신의 취향에 확고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고 자신이 싫어하는 것들로 자신을 규정하고자 했던 후아와 그 반대편에 있었던 켄은 조금씩 교집합을 만들어 간다.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은 존재하지만, 교집합은 점점 더 커지고, 서로가 공유하는 기억이 늘어나서 상대방의 이해할 수 없는 지점도 포용하게 되는 그러한 우정.

 

 

 

죄책감에서 벗어나기, 기억을 쓰기


 

하지만 이런 평화를 뒤흔드는 일이 발생한다. 켄이 갑자기 살해당하기 때문이다. 그것도 돈을 노린 강도들에게 총을 맞아서. 평범한 아시아계 미국인의 우정에 대한 에세이 같아 보였던 이 책은 이 지점에서 애도의 글로 변모한다. 이제 독자들은 작가와 함께 생각하게 된다. ‘왜 하필 켄에게 이런 일이 생겼지?’ 그가 파티에서 나가 여자친구를 만나는 동안 켄이 죽었다는 사실, 다음 파티에 켄이 자신을 부르지 않길 내심 바랐다는 사실은 작가에게 죄책감을 안긴다. 무엇이 범인들이 켄의 머리에 총을 쏘게 했는지 그는 끊임없이 찾고자 한다. 무엇이 ‘악’을 만들었나?

 

하지만 켄은 엄청난 인종차별적 범죄에 당한 것도, 대의에 희생된 것도, 희대의 악인에게 살해된 것도 아니다. 켄의 죽음은 모두에게 분배된 불운의 확률이 한 사람에게서 비정상적으로 높아졌던 일일 뿐이다. 그가 교도소에서 가르치는 봉사활동을 해도 켄은 돌아오지 않는다. 켄은, 그저 돌아올 수 없는 곳에 있다. 켄의 죽음에서 이유를 찾을 수 없었던 작가는 이제 자신을 그 이유로 만든다. ‘자신 때문에’ 켄이 죽은 거라고. 다르게 행동했으면 켄은 아직 곁에 있었을 거라고. 그러한 죄의식은 후아를 좀먹고, 그를 계속 멈춰 있는 상태로 만든다. 시간은 계속 흘러가지만 후아는 켄에 대한 기억 속에서 여전히 헤엄치고, 켄을 기억하는 사람들과 멀어지고, 홀로 외롭게 켄을 기억하면서 자신의 인생을 살아간다.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켄의 죽음 이후에 자신이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느끼면서.

 

후아는 대학원에 진학하고, 상담사와의 대화를 통해 켄의 죽음에 자신의 책임이 없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는다. 켄의 죽음은 자신이 막을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는 것을, 그것에 과도하게 의미부여를 하는 것은 자신의 역할을 과도평가하는 자의식과잉의 일종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죄책감에서 벗어난 작가에게 한 가지 질문이 남는다. 그렇다면 켄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책 속에서 상담사는 후아에게 묻는다.

 

 
역사가 뭘까요? 그 안에서 당신도 보이나요? 삶의 모델은 어디에서 찾았어요? 사랑과 존경, 연민과 자부심, 동정과 희생을 어떤 식으로 배웠어요?
 

 

죄책감에서 자유로워진 후아는 질문에 답하며 지금의 자신이 있기까지의 과거를 돌아보기 시작한다. 그리고 다짐한다. 자신이 지나온 모든 궤적을 써야겠다고. 그것이 있어야만 켄의 존재를, 그와의 우정을, 찬란했던 순간들을 설명할 수 있으니까. 여기에서 새롭게 책이 시작된다. 그가 이 책을 써야 했던 이유를, 쓰게 만든 질문들을 읽으면 다시 첫 장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마지막에서 새롭게 책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마지막 장에 이르러서야 독자는 이 책의 시작을 목도한다.

 

그러니까 이 책은 단지 운이 없다는 이유로, 그런 말도 안 되지만 있을 법한 이유로 친구가 세상을 떠난 이후에 그와의 시간을 되짚어 보는 이야기다. 우리는 종종 우정의 끝을 생각하지만, 친구가 갑작스럽게 사고로 죽는 엔딩은 쉽게 상상하지 못다. 대부분의 우정은 그저 마음이 달라져셔, 상황이 달라져서, 서로 더는 맞지 않게 되어서 끝나버린다. 그리고 많은 경우 그런 우정은 과거에 존재했다는 사실로만 기억에 남는다. 아마도 이 책이 특별한 이유는 이 예외적인 우정을 반추하는 일이 우리에게 우정에 대해 많은 것들을 알려주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은 다시는 볼 수 없는 한 명의 친구에 대해 오랜 시간 생각한 결과물이니까 말이다. 한 사람에 대한 애도글은 많은 시간을 할애해서만 완성될 수 있으므로.

 

 

 

지나간 우정의 지극히 사적인 역사


 

후아 쉬와 켄이 늘 하던 말이 있다. “진실하자”. 제목처럼, 이 책은 후아 쉬가 그들의 진실에 다가가는 이야기다. 책에는 책에는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발췌한 말이 나온다.

 

 
“모든 것은 역사가가 연구에 착수해 해독하고 나서야 의미를 갖게 된다.” (...) 따라서 과거를 이해하려면 역사가 자신이 얽혀 있는 상황,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언제나 “무한한 역사의 고리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 책을 후아 쉬가 자신과 켄의 역사에 대해 쓴 글이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연속해서 지나가는 현재 속에 있는 우정은 해석하기 어렵고 위태롭고 종종 부서지려 하지만, 지나간 우정은 해독하려고 노력해 볼 수 있으니까 말이다.

 

모든 이야기는 서술자의 관점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에 불안정하지만, 우정의 경우에는 다르다. 모든 우정은 지극히 사적이기에 두 사람의 관점으로만 서술될 수 있다. 그러니까 이 책은 한 작가가 글쓰기로써 진실에 다가가고자 한 부단한 노력의 결과다. 우연히 찾아온 우정이 자신을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지, 우연한 폭력 이후에 후아의 삶이 어떻게 전환되었는지를 후아 쉬의 아름다운 문장들로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글을 쓰고 싶어진다. 어쩌면 글쓰기는 우리를 진실에 가장 가까운 곳에 데려다 줄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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