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터] 극단 이와삼_사람은 좋지만 인간은 싫습니다 (1).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411/20241104234701_dpqzsszp.jpg)
혜화의 한적한 골목에 위치한 씨어터 쿰에서 연극 <사람은 좋지만 인간은 싫습니다>를 보고 왔다. 옴니버스 형식의 연극이기에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있을 수 있다고 하여 간단한 작품 설명을 읽고 극장으로 향했다. 하지만 걱정이 무색하게도, 극에서 한 발자국 나와 줄거리를 설명해주는 연출 덕분에 흐름이 끊기지 않았다.
<사람은 좋지만 인간은 싫습니다>는 총 5편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다. 생존율의 정도에 따라 3구역으로 나누어진 미래를 배경으로 한 4편의 이야기와 현재 배경 속 두 명의 영훈을 담은 이야기가 담겨있다. 22/23년에 올라간 극의 서브 텍스트를 만드는 과정에서 출발하였으며, 같은 세계관을 공유한다. 기후 위기가 인간의 사회 정치체계를 바꾸고, 사람들의 거주 구역이 나뉘고, 인공지능 로봇이 등장하여 인간의 자리를 대신하는 사회를 미래의 모습으로 바라본다.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극의 무대 연출이었다. 10개 정도의 작은 정육면체와 커다란 구조물은 극의 흐름에 따라 옮겨지고 배치되었는데, 이때마다 흘러나온 음악과 조명은 한 편의 전시를 보는 듯했다. 이에 더불어 뒷배경에 띄워진 각 에피소드의 제목은 배우들의 역할 변화를 더 쉽게 받아들이도록 도왔다.
<사람은 좋지만 인간은 싫습니다>는 말에 공감하는가. 사람과 인간을 구분할 수 있는가. 네이버 국어사전에서는 '사람'과 '인간' 두 단어에 같은 해석을 부여하고 있다. 표준대국어사전에서도 인간과 사람을 비슷한 단어로 정의한다.
하지만 우리는 두 단어의 미묘한 뉘앙스 차이를 감지해 낼 수 있다. 나에게 '사람'이란 인간으로서 갖춰야 할 마땅한 예절과 감수성을 지니고 있는 동물이고, '인간'은 앞서 말한 지능들의 존재 여부와 관계없이, 사람의 형태를 띤 동물들로 여겨진다. 즉, 인간은 사람보다 더 포괄적인 개념이라 생각한다.
종종 인간에 대한 회의를 느끼곤 한다. 뉴스에서는 끔찍한 전쟁과 잔인한 사건 사고들이 연이어 보도 되고, 일상에서는 마치 타인의 존재를 부정하는 듯한 이기적인 사람들을 만나곤 한다. 이런 상황들을 마주하는 경우가 많아질수록, 나는 '왜 이렇게 못된 인간들이 많은가'하는 염세적 생각에 빠지곤 한다. 세상을 다정하게 바라보고 싶은 나의 다짐을 자꾸 흔든다. 이런 나에게 <사람은 좋지만 인간은 싫습니다> 연극 명은 매우 흥미롭게 다가왔다.
우리는 학창 시절부터 4차 산업 혁명 시대에 살고 있다는 말을 줄곧 들어왔다. <사람은 좋지만 인간은 싫습니다>는 그런 우리가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질문, "로봇이 인간을 대신할 수 있는가?"를 묻고 있다.
자의식을 원하는 인공지능로봇 지니와 마인드 업로딩으로 재현된 엄마 로봇의 이야기는 '감정'에 초점을 두고 있다. 로봇의 3원칙을 철저히 지키는 로봇을 자의식이 있다는 이유로 위험하다고 단정지을 수 있을까. 엄마의 모든 기억과 말투를 품은 로봇을 사람이 아니라는 이유로 배척해도 될까.
연극은 이런 의문을 정리해줬다. 직접 눈으로 본 로봇들은 생각보다 더 차가웠으며, 심지어는 소름 끼치기까지 했다.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기보다는 눈앞의 상황에 대해서만 해결하려고 하는 고집스러운 모습은 무서웠다. 로봇이 인간의 일을 대체할 수는 있겠지만, 인간을 대신하게 된다면 끔찍한 상황이 펼쳐질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이 몰려왔다.
<사람은 좋지만 인간은 싫습니다>는 내게 '그럼에도 세상을 다정하게 바라봐야 하는 이유'를 던져줬다. 그리고 인간성에 대해 고찰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마련해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