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들과의 대화 중 던져진 흥미로운 주제였다.
인간이 시간을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딱히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다. 되짚어 보면 후회는 묻어 나올 수밖에 없고, 그럼 다시 과거에 묶여 후회만 하게 될 테니 말이다.
그래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걸 알아도 만약 나에게 그런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난다면. 마치 실제로 그러기라도 한 것처럼 한 번쯤 고민해 보기로 했다. 자, 이제 나는 과거의 어느 장면이든 다시 내 의지대로 바꿔놓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럼 과연 나는 언제로 되돌아가려고 할까? 나에게 그만큼 마음에 남아있는 순간이 있을까?
돌이켜 보니 딱 하나 있었다. 원래 모든 일에 별 미련을 두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사람들과 이야기할 당시에도 딱히 떠오르는 장면이 없어 돌아갈 수 있다 하더라도 돌아가지 않을 것 같다고 대답했다. 그런데 혼자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그때 그랬으면 어땠을까. 그때 내가 뭘 했더라면. 그때 이 말을 했었더라면. 혹은 하지 않았더라면. 만약 내가 다르게 행동했다면, 등등. '그때 만약'이라는 단어가 내 머릿속을 조용히 침범해 나갔다.
그만큼 그 짧은 두 단어는 아주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아쉽게도 인간은 미래를 알지 못한다. 어떻게 될지도 모른다는 모호한 예감, 예측만 존재할 뿐이다. 그런 한정된 시야를 가지고 살면서 매번 완벽한 선택을 하고자 노력하는 것은, 어쩌면 평생 이루어지지 않을 꿈을 품고 사는 것과 같은 듯하다.
결과를 미리 알지 못한 채로 매 순간 결정을 내리고 살아야 하는 삶에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후회'라는 부산물을 만들고 키운다. 어쩔 땐 그 형체도 없는 조그만 덩어리가 얼마나 거슬리는지, 자기 전까지 눈에 밟히고 기억에 밟힌다.
그럼에도 내가 후회에 대해서 하고 싶은 말은 늘 하나로 귀결된다. 뻔하지만, 그때는 그게 최선이었다고. 그리고 그 경험들이 지금의 나를 있게 했다고.
그렇다. 지금까지도 마음 한구석에서 거슬리게 나를 콕콕 찌르는 그 후회 덩어리는 과거로 돌아가자고 계속해 나를 설득하겠지만, 나는 지금 여기 존재하는 나라는 존재가 지난 모든 시간들이 켜켜이 쌓여 만들어진 나임을 안다. 만약 그날 당신이 그 일을 완벽하게 맞이했다면 끝내 알지 못했을 당신만의 배움이 현재에 있다. 지금 당신이 하는 모든 생각은 그날의 실수로부터, 혹은 무지함으로부터 발전해 온 것이다.
당장 1초 뒤에도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상태에서 당신은 최선의 선택을 내렸다. 이건 자기 합리화도 아니고 자기 위안도 아닌 그저 사실이다. 누가 봐도 최선을 다한 결정이 아니었다고, 너무 경솔했다고 말할지라도 변명의 여지없이 그 선택은 늘 최선이었다. 우연과 상황과 감정과 이성이 만나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그럼에도 도무지 자신을 이해할 수 없을 수도, 당장은 용납할 수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과거의 그 결정으로부터 당신이 '알게 된 것'이 있다면, 그러니까 그때 자신의 행동을 '후회'할 정도로 무언가를 자각한 당신은 그것만으로 이미 얻은 게 있는 셈이다. 이미 내가 얻을 걸 얻었다면, 그때의 일은 자기 역할을 다 한 것이다. 굳이 '만약'을 불러들여 재활용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누군가 와서 나를 과거로 데려다주겠다 한다면, 나는 그 시간에 잠이나 좀 더 자겠다 말하려 한다. (요즘 잠이 부족하다.) 몸소 넘어지고 부딪히며 얻은 것들을 다시 되돌리고 싶진 않다. 그게 나의 결론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