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불러일으킨다는 것]
선글라스를 낀 채 웃고 있는 개구진 표정의 여자아이와 성인 남성. aftersun의 포스터를 보며 우리는 이 영화가 아빠와 딸의 가족애를 담은 영화라고 유추할 수 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주된 메시지는 ‘기억’에 관한 것이라 생각한다.
영화는 30대의 소피가 20년 전 아빠 갤럼과 갔던 여행에서 찍은 캠코더를 돌려보며 시작된다. 부모님의 이혼 후 엄마와 살던 11살의 소피와 30대의 아빠 갤럼은 쨍쨍한 햇빛이 가득한 튀르키예의 해변에서 함께 휴가를 보낸다. 공사 중인 리조트와 음료를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자유이용권을 바라보는 소피, 금전적인 여유가 없는 갤럼. 둘은 재밌는 시간을 보내기도 때로는 소소한 갈등을 빚기도 하지만 또래에 비해 눈치가 빠른 소피는 이런 모든 상황을 적당히 넘기며 둘은 즐거운 휴가를 보낸다.
평화로워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여행 중간중간 갤럼은 다소 우스꽝스러워 보이는 태극권을 하며 마음을 다스린다. 그리고 소피와의 대화에서 언급된 사업 실패와 불우한 어린 시절을 통해 우리는 그의 우울한 심리 상태를 눈치챌 수 있다. 집으로 돌아가는 소피를 배웅한 뒤 어두운 문으로 들어서는 갤럼의 뒷모습을 통해 그가 마지막에 어떤 선택을 했을지도.
“가끔 하늘을 보면서 우리가 같은 하늘 같은 태양 아래 있다는 걸 떠올려. 그러면 우리는 같이 있는 거니까.”
갤럼은 장난치는 소피에게 자못 진지한 태도로 호신술을 가르친다. 더는 아빠인 자신이 소피를 지켜줄 수 없기에 소피가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길 바랐을 것이다. 소피는 아빠와 같은 나이가 된 지금에서야 당시 갤럼의 심정을 알아채고 괴로워한다. 어린 소피가 아빠의 아픔을 몰랐던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그래서 기억을 떠올리는 것은 때로 고통스럽다. 어린 소피의 말과 달리, 같은 하늘 아래 있다고 해서 같은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어른이 된 우리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보지 못한 것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
“보지 못한 것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
aftersun을 보고 이동진 평론가가 남긴 한 줄 평이자, 이 영화의 전부라고도 할 수 있는 문장이다.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어딘가 부자연스러운 느낌이 드는 것은 캠코더로 기록된 몇 장면을 제외한 모든 장면이 소피의 기억이 재구성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갤럼은 어딘가 알 수 없는 듯한 표정을 지을 때가 많다. 어린 소피와 어른 소피가 떠올리는 갤럼의 심정이 다르기 때문이다. 식사 후 소피가 홀로 놀던 몇 시간 동안의 갤럼의 모습 – 떨어진 담배꽁초를 주워서 피고, 홀로 밤바다에 뛰어들고, 높은 난간 위에 맨발로 서는 – 역시 소피의 추측에서 비롯된 장면들이다.
영화의 중간중간 어두운 배경 속에서 사람들이 춤추는 장면이 나온다. 다른 장면과 마찬가지로 과거 회상인 줄로만 알았던 이 장면은 거듭 반복해서 등장한다. 사람들 틈에 끼어 알 수 없는 몸짓을 하는 갤럼의 모습을 어른이 된 소피가 바라보고,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그것이 춤이 아닌 몸부림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소피는 그런 갤럼을 힘껏 안아준다.
“당신의 웃음이 들리는 것 같았어요, 당신의 노래가 들리는 것 같았어요, 당신이 애쓰는 걸 봤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꿈이었을 뿐”
어둠 속 몸부림치는 갤럼의 모습과 함께 깔리는 음악의 가사에는 소피의 심정이 잘 드러나 있다. 소피의 기억이 뒤섞인 것은 비단 소피가 어렸기 때문만은 아니다. 모든 기억은 불완전하다. 누구나 자신의 입장에서 사건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기억을 되짚는 과정은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어린 소피가 보지 못한 기억의 파편을 모아 재구성하는 어른 소피가 비로소 당시 갤럼의 아픔을 이해하게 된 것처럼.
[온전하지 못한 기억일지라도 사랑은 남는다]
“소피, 정말 사랑해. 그건 절대 잊지 마. 아빠가.”
여행 마지막 날, 집에 가지 않고 이대로 계속 휴가를 보내고 싶다는 소피의 말에 갤럼은 대답하지 못했다. 대신 소피에게 마지막 편지를 남긴다. 더 이상 얘기를 들어주고 지켜주지 못할, 남겨질 딸을 위해 갤럼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말이었을 것이다. 소피가 짧은 분량의 캠코더를 계속해서 돌려보는 이유 역시 갤럼의 사랑을 계속해서 느끼고 싶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온전하지 못한 기억일지라도 사랑은 남는다.
제목인 aftersun은 햇볕에 탄 피부에 바르는 크림을 뜻하는 말로 감독인 샬롯 웰스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아 만든 작품이라고 한다. 제목을 통해 감독이 전하고 싶었던 것은, 20년 전 기억을 되짚는 소피를 보며 각자의 옛 기억을 떠올릴 사람들에게 이 영화가 후회의 감정보다는 위로로 남기를 바라서가 아닐까. 이 영화를 본 모두가 각자의 소중한 사람들과 불완전한 기억으로도 잊히지 않을 만큼 진한 사랑과 진심을 나누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