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에세이] 포기의 중요성

by 이호준 에디터
2024.05.14 03:16

 

 

131.jpg

 

 

지난 4년간 아트인사이트 에디터로 글을 쓰며 처음 있는 일이 발생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써 내려간 글을 모두 지웠다. 마음에 들지 않아서였다.


무언가를 버리는 일, 특히 새로운 것을 창작하는 예술가들에게는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새로운 것을 만드는 일에는 어떤 형태가 되었든 수많은 노력이 들어간다. 우선은 창작에 바탕이 되어야 할 경험이 있어야 할 것이고, 이것을 글, 미술, 음악 등으로 풀어나갈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의 결과물을 만들기 위한 시간에 대한 투자이다. 이 시간을 위해 다른 무언가를 해야 할 시간을 양보해야 하며, 이 모든 것들이 종합되어 탄생한 하나의 작품에 원작자들은 애착을 갖기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술가들은 자신들의 결과물을 포기하는 것을 굉장히 어려워한다. 이 결과물을 탄생시키기 위해 투자한 모든 것들에 아쉬움이 남아서, 세상에 내놓아 봐야 빛을 보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이미 완성된 하나의 결과물을 다시 백지상태로 돌리는 것은 큰 부담이 가는 일이다.


한편, 무언가를 버리는 일은 예술가들이 필수로 가져야 할 자세이다. 무엇보다 예술가들의 결과물은 어떠한 형태로든 ‘기록’이 되는 것이고, 이에 필요한 완성도 높은 작품은 원작자의 애착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특히, 새로운 작업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조금이라도 애착이 가지 않는다면 재빨리 지워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다. 애착이 가지 않는 작업물을 계속 붙들며 마무리를 짓기 위해 머리를 쥐어짜 봐야, 완성된 결과물을 보게 되면 작품에 대한 아쉬움은 물론, 투자한 시간에 대한 미련만 남게 될 뿐이다.


음악 작업용 컴퓨터를 열어보면 수많은 작업 파일이 있는데, 이 중에서 완성된 곡은 얼마 되지 않는다. 처음 머릿속에 떠오른 악상 네 마디, 혹은 여덟 마디 정도를 작업하여 들어보면 이 곡을 끝까지 마무리하는 것에 어려움이 없을지, 완성된 결과물에 만족할 수 있을지를 알 수 있다.


그렇기에 컴퓨터에는 고작 네 마디, 여덟 마디짜리 작업 파일들이 수두룩하다. 이 클립들은 추후 다른 작업에 쓰이거나 다른 동료들에게 아이디어를 얻어 작업을 이어가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그대로 방치되어 잊혀져간다. 아마 음악 작업을 하는 대부분의 아티스트들이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보다 결과물로 이어가지 않고 포기하는 작업물들이 훨씬 많을 것이다.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로 처음 한두 문단을 쓰다 보면 느껴지곤 한다. 이 글을 끝까지 다 써 내려갔을 때, 업로드 하기 직전 내가 느낄 만족감이 어느 정도일지 말이다. 음악 작업을 할 때와 마찬가지로, 그 한두 문단을 써내려가는 과정에서부터 이미 피로감을 느낀다면 그 어떤 망설임 없이 썼던 내용들을 전부 지워버리곤 한다.


하지만 이번처럼 마무리까지 지은 글을 ‘불만족’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지워버린 적은 처음이다. 무언가를 창작하는 일을 좋아하고, 글을 쓰는 것에 대한 애착이 있기에 쉽게 지울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해 보려 한다. 처음 있는 일이었지만 아쉬움을 남기지 않고 싶었다. 결국에 내가 써 내려가는 ‘글’ 또한 하나의 예술 작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