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의 존재가 희미해질 때,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색하게 느껴질 때 보곤 하는 영상이 하나 있다. 2019년 MMA(멜론뮤직어워드)에서 아이유가 꾸민 <이름에게> 무대다.
노래 시작 전 위와 같이 ‘누구에게나 있는 세상의 모든 “이름”들을 위하여’라는 문구가 화면으로 등장하고, 서서히 조명이 켜지며 아이유는 노래를 시작한다. 1절은 평소의 아이유가 그랬듯 혼자 노래를 부른다. 피아노 반주 아래 잔잔하게 흐르는 노랫소리를 따라 1절이 끝나고, 이 무대에 더 없는 특별함이 부여되기 시작한다.
아이유를 비추고 있던 조명이 꺼지고 2절이 시작되며, 아이유가 아닌 인물들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그리고 화면에는 지금 노래하고 있는 사람의 이름과 그가 누구인가에 대해 비춰지고 있다.
잠시 아이유에게 파트가 넘어갔다가 카메라는 다시 많은 사람을 보여 준다. 이들은 “제 이름은 OOO입니다.”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다양한 신분, 연령, 성별을 가진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 노래를 한다.
그들이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어떤 사연을 가진 사람인지 우리는 알 수 없지만, 그들이 가졌을 ‘어떤 이름’을 생각하며 잠시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게 된다. 무대가 끝날 때쯤에는 아이유와 다양한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노래하고, 이윽고 무대는 끝이 난다.
나는 <이름에게>를 그렇게 좋아하던 사람은 아니었다. 아이유를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그의 많은 노래 중 하나일 뿐, 큰 의미가 있지는 않았다. 노래 속에 담긴 의미들을 음미해 볼 생각을 해 본 적도 없었는데, 이날 이 무대를 본 후 이름에게가 특별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나는 나의 이름이라는 것이 특별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일단 너무 흔할뿐더러 이상한 별명이 많았기 때문이다. 다른 예쁜 성도 많은데 나는 왜 ‘박’이라는 성씨를 가지고 있는 걸까 싶었던 적도 있다. 아빠 성을 따르지 않아도 되니, 크면 내 마음대로 이름을 바꾸겠다고 어릴 때의 나는 생각하곤 했다.
지금의 내가 그런 생각을 완전히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어딘가에 내 이름을 말할 때, 가령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내 이름을 소개할 때 더 예쁜 이름을 가졌으면 어땠을까 생각한다. 따지고 보면 이름이라는 것은 주인인 나보다 남이 더 많이 쓰고, 정작 남들은 내 이름에 큰 신경을 쓰지도 않을 텐데. 그래도 나는 기왕이면 나의 마음에 드는 이름을 가지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러나 전과 다른 점이 한 가지 있다면 지금은 ‘이름이 어떻게 생겼느냐’보다 ‘이 이름을 가진 나는 어떤 사람인가’를 더 고민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변화의 계기가 된 것이 MMA(멜론뮤직어워드)의 <이름에게> 무대다.
이름이라는 것은 생각보다 별거 아니고, 생각보다 거대한 가치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김춘수의 저명한 시 <꽃>에서도 ‘이름’ 그리고 그것을 ‘불러 주’는 것은 큰 의미로 작용한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나’가 ‘그’를 의식하기 전에도 그는 그 자리에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나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되기 시작한 것은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라고 시인은 말하고 있다. 그저 각각의 삶을 살아 온 개체에게 ‘눈짓’이라는 의미를 담게 된 것이다.
이름은 그런 존재인 것 같다. 직업에 귀천이 없듯 이름의 생김새도 귀천도, 어떤 편견도 없지만 그 무엇보다 큰 의미를 머금고 있는 것. 어떤 한 사람의 인생을 망라하고 있는 것.
그래서 ‘이름’이라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거대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공감되지 않는다면 사람들이 익명을 편안해한다는 것을 생각해 보자. 세상에 동명을 가진 사람이 많다는 것을 모두가 알면서도 사람들은 나쁜 일을 할 때, 자신이 잘 알지 못하는 것에 참여할 때 선뜻 제 이름 밝히기를 꺼려 한다. 그들도 알고 있는 것이다. 소소하게 보이는 이름이라는 것이 무엇보다 자신을 가장 잘 보여 주고 있고, 의미하고 있음을 말이다.
반대로 생각하면 사람들은 좋은 일을 할 때나 자신이 활동하는 분야에서 이름을 남기고 싶어 하곤 한다. 꼭 활동 분야가 아니더라도 어떤 일에서든. 이름은 우리가 의식하는 것보다 인식적이고 철학적이고 깊은 것이 아닐 수 없다.
우리의 삶만큼이나 이름도 스스로가 직접 만드는 것이 아닌가 싶다. 내 이름에 무슨 색을 칠할 건지, 어떤 의미를 담을 건지, 어떻게 쓸 건지 자신이 아니면 누구도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누군가 잠시 모양을 바꿀 수는 있어도 없애거나 무너뜨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이유의 위 무대는 자신의 이름을 만들어 가고 있는 사람들을 보여주었다. 처음에는 자신과 비슷한 직업인 가수, 싱어송라이터 등의 목소리와 이름을 보여 주고, 후에는 더 나아가 다양하게 본인의 이름을 외치고 싶은 사람들을 보여 주었다. 앞에서 등장했던 인물들과는 다르게 이들은 이름만을 말하고 있다. 최대한 많은 사람을 보여주고 싶었던 의도일 수도 있겠으나, 나는 이것이 무슨 일을 하는지 혹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어도 우리 곁에 있는 어떤 이름들 같아서 더 마음에 와닿았다.
아직 자신의 이름의 의미를 찾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보여주는 아이유의 무대 자체가 뜻 깊었던 것도 있지만, 솔직히 말하면 나는 무대에 서서 자신의 이름을 말한 인물들에게 더 마음이 간다. 나도 그들과 비슷한 위치이기 때문이리라 생각한다.
세상에 내 이름을 알릴 수 있는 기회나 누군가에게 나를 드러내 보일 수 있는 기회가 우리에게 얼마나 찾아올까. 나는 그렇게 긴 인생을 살아보지는 않았으나 그런 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 정도는 안다. 그리고 우리가 주변의 이름들에 귀 기울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나를 문득 스쳐지나가는 A씨와 카페에서 나보다 먼저 주문을 한 B씨, 어딘가에서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해내고 있는 우리 모두의 이름. 이름은 누군가에게 불렸을 때 제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닌가. 나에게 기억되는, 나의 이름을 기억해 주는 이름들이 지금보다 아주 많아지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