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 하면 떠오르는 유명한 밈이 있다. 나는 이 공연을 보러 가겠다고 다짐한 순간부터 밈을 제목으로 꼭 쓰리라 다짐했다. 어쩌면 마음 깊숙이 자리한 본능은 이 제목을 위해 공연을 선택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찾아간 공연, 나는 나의 인생 첫 재즈 공연에게 제대로 혼쭐이 났다. 그래요, 이 글은 재즈의 ㅈ, 아니 J 도 모르는 애송이가 네 명의 천재 아티스트에게 겸손을 배우고 온 날에 대한 기록입니다.
나에게 재즈는 꽤나 휘황찬란한 음악이다. 조금 더 풀어 이야기하면 내게 재즈는 서구 음악, 그 자체다. 무도회, 파티, 또는 벽난로 그런 것들과 제법 무게 잡힌 분위기. 그런 멋을 내고 싶을 때 종종 듣는 음악이랄까. 음악적 식견이 좁은 내게 재즈는 그런 멋부리는 음악이었다. 그래서 공연 날 옷도 꽤 신경 써서 입고 갔고, 부끄럽지만 친구들에게도 “나 jazz 공연 보러가~” 하고 으스대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공연이 시작되면서 나는 당황스럽기 시작한다. 어..? 어?? 내가 아는 재즈가 아닌데? 온갖 악기들이 자신을 뽐내는 소리들로 가득 찰 줄 알았던 공연은 고요히, 조심스럽게 연주되었다. 예상치 못한 여백들에는 내가 미처 갈무리하지 못한 물음표가 가득 찼었다. 그러나 생각지 못한 차분함은 잠시 방황하던 나를 안정시키고 순식간에 나만의 세계로 빠져들게 했다.
피아노와 드럼, 색소폰과 콘트라베이스. 완벽하게 서양 악기들로 구성된 공연이 한국과 일본을 만나 치밀한 동양의 서정성을 담았다. 연주가 내는 소리들은 우리의 것과 닮아 있음에도 되려 이국적인 느낌을 받았다. 일반적인 재즈보다 잔잔하고 차분한 선율들은 보통 어떤 악기를 ‘친다’라는 표현이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유려하게 연주되었다. ‘어루만진다’라는 표현이 더 적절한 것 같다.
가장 신기했던 것은 드럼이었는데, 타악기인 드럼을 부드럽게 두드려 연주할 수 있다는 것에 큰 충격을 받았다. 또, 드럼 채가 기본적으로 우리가 아는 채 말고도 다양한 종류가 있다는 것도 흥미로운 지점이었다.
공연을 보면서 느낀 것은 ‘재즈’라는 음악은 ‘연주자들이 펼치는 필사적인 각개전투의 협화음’ 같다는 것이다. 개중 어느 하나가 고요히 시작하기도 하고, 또 중간에 잠깐 솔로 연주가 나오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네 악기의 합주극이다. 각자의 악기를 연주하느라 서로 눈 맞춤이나 표면적인 교류를 할 수는 없으나 그것이 음악으로, 또 치열한 연주로 보여진다는 것이 매력적이었다.
이내 나는 공연의 제목처럼 서양의 무도회장 테라스가 아닌 어느 고유한 목조 건물의 처마로 이끌려 갔다. 나를 당황케 했던 여백들은 이내 곧 나의 상념들로 채워졌다. 어떤 음악에서는 꽤 음울한 고민에 푹 잠겨 있기도 했고, 또 어떤 음악에서는 기분 좋은 순간들이 불쑥 튀어나오기도 했다. 최고의 연주자들이 뒷받침해 주는 골몰의 시간이 너무 재밌어서, 언제 어색해 했냐는 듯이 마지막 연주에 아쉬움이 남았던 공연이었다.
송영주 피아니스트는 이번 공연을 준비하면서 이토록 무계획적이고 즉흥적인 연주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화려한 기교와 명확한 기승전결이 없는, 재즈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다소 난해할 수 있는 그런 공연. 재즈를 잘 모르는 나는 원래 그런가 싶던 것이 실제 연주자도 새롭게 느껴졌다고 하니 내가 초반에 느낀 당황스러움도 꽤 공연을 잘 즐긴 것이 아닌가 싶었다.
그리고 이번 공연이 내게 준 것은 당당한 무지함이 새로운 방향으로 나를 이끌 수 있다는 것. 밈 하나로 솟구친 재즈에 대한 관심이 재즈에 대한 색다른 면으로 번져갈 수 있었음에 감사함을 느낀다. 지금 이 글도 지난 공연에서 연주하셨던 송영주 피아니스트의
모를 땐 일단 가보자. 당신이 상상하지 못한 세계가 당신을 환영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