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오디션 프로 <싱어게인>으로 대중들에게 알려진 가수 이승윤이 2021년 발매한 '폐허가 된다 해도'. 곡의 앨범에는 다음과 같은 설명이 수록되어 있다.
['어차피 사라진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선택하는 것'에 관한 곡입니다. 의미도 실체도 필연적으로 사라지겠지만 지금 이 순간 나에게 유의미하고 실체적인 '너'들을 가지고 '나'로 잘 살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담았습니다.]
곡에서 화자는 허름한 폐가, 발음이 증발된 옛 글자들, 결국 소멸해 버릴 진실, 시간의 손에 무참히 부서질 나 등 곳곳의 다양한 폐허의 형태를 나열한다.
그는 이 모든 게 폐허가 될 것임을 분명하게 알고 있다.
서기가 영원해도 난 마지막 나야
시간이 버릴 때까지 난 너로 가득 흐를 거야
- '폐허가 된다 해도' 중
종말을 인지한 화자는 하나의 결심을 하는데, 이는 이 모든 걸 감수하고도 나로 살겠다는 것이다.
현재의 시점에 서 있는 내가 알 수 있는 건 지금의 나 또한 마지막 나라는 것뿐이니, 어차피 모든 게 무로 돌아간다면 ‘무’에 초점을 두기보단 하루하루의 시간들에 나로서 존재하는 데 공력을 다하겠다는 다짐. 시간의 파편들에 꿈과 희망을 더해 의미를 만들어가겠다고 '너'에게 약속한다.
그 몽환적이고도 굳은 의지가 베인 목소리를 듣다 보면, 좌절과 희망 사이를 부지런히 왔다간 화자의 궤적이 보이는 듯하다.
한편 나에게 이 '폐허가 된다 해도'는, 폐허를 딛고 선 빛나는 희망, 새로운 출발의 노래 같다가도 길고 긴 허무의 군림에 지쳐버린 화자가 마지막으로 쓰는 악과 같이 들릴 때가 있다.
즉, 내가 나로서 순간들을 살아가겠다는 희망적인 다짐이라기보단 마치 폐허의 유혹적인 진창에서 벗어나고자 몸부림치다 힘겹게 뱉고야 마는 최후의 외침 같달까.
뭐 두 개가 크게 다른가 싶을 수도 있지만, 발화하고 있는 화자의 딱 그 시점에선 희망과 악은 천지 차이일 테니까. 문득 거리가 멀어질수록 누군가의 악은 희망으로 남는 걸까 하는 생각도 어쭙잖게 곁들여본다.
여하튼 오늘의 내가 몰입할 화자는, 어제와 마찬가지로, 폐허에 눈이 멀어 ‘나’를 빼앗기기보단 이 악물고 ‘나’로 살아가야겠다는 (그래야만 살 수 있겠다는) 고함을 감미롭게 외치고 있다.
폐허 앞에 선 비소하고도 무력한 한 인간의 처염한 분투의 시. 너무 자주 외치면 쉴까 발음을 잃어버릴까 우려하면서도 줄줄이 외고 있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