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번이 벼슬입니까? 해마다 나타나서 제일 어리고 만만한 여자애 붙잡고서 주장하는 인간도 제 선배입니까? 신OO씨, 민주주의 사랑한다고 하셨어요? 이 작은 집단에서도 자기보다 약한 사람 위에 서야 후련한 사람이 무슨 민주주의 운운이에요. 당신 같은 사람은 차라리 독재가 편할 거야. 인간이 평등하다는 개념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잖아요.” - 최은영, <쇼코의 미소> 中 ‘먼 곳에서 온 노래’ p. 198
“박근혜가 대통령이 됐을 때, 무슨 생각이 들었니. 여보, 나는 울었잖아. 우리 운동할 땐 이천십년대에 이런 세상 오리라고 정말, 정말 상상도······ 그나저나 요즘 너희 기수는 안 모이냐. 빠져가지고는, 회장인 네가 구심점이 돼야지...(중략)...도대체 뭐가 신선하다는 건지. 박근혜가 옛날 여자인 건 전세계 사람들이 다 아는 사실인데. 왜 나이 든 꼰대들은 자기보다 어린 사람만 만나면 자기가 아는 사람의 이름을 백 명쯤 불러대고,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어젠다를 천개쯤 대며, 그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는 걸까. 알아서 뭐 하게. 알면 뭐가 달라져. 비슷한 것을 알고, 비슷한 생각을 하면 나이 차이가 줄어들기라도 해?” - 박상영, 계간 <창작과 비평> 겨울 2018 中 ‘우럭 한 점 우주의 맛’ p.215~216
소설 『쇼코의 미소』로 알려진 최은영의 단편 ‘먼 곳에서 온 노래’에선 운동권 동아리의 선후배 회식 장면이 묘사된다. 등장인물 ‘미진’은 86학번 선배의 꼰대 같은 가르침에 위의 대답으로 반격한다. 박상영 작가에게 문학동네 젊은 작가상을 안겨준 소설 ‘우럭 한점 우주의 맛’ 에서도 위의 문장이 나온다. 이처럼 586세대를 비롯한 운동권과 진보 세력의 모순적 태도는 문학에선 단골 소재로 사용되며, 그것이 우리 사회의 일면임을 계속해서 보여주고 있다.
진보 꼰대 현상의 대두
‘진보 꼰대’라는 표현이 586세대로 대표되는 정치권의 타락을 가리키는 한정적 표현이다. 과거 독재정권의 부당함에 맞서 투쟁했던 586세대들은 정치권에 들어온 후에는 20·30과의 소통 그리고 청렴한 이미지 등을 강점으로 내세웠다. 이들은 보수 정권이 들어섰던 10년 동안 그들이 저지른 도덕적 파산을 언제나 비판하고 문제 삼았다. 특히 2016년 발생했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대해선 촛불시위를 주도하며 정치권의 쇄신을 약속했다.
그러나 이들이 집권 여당이 된 지금에 이르러선 오히려 자신들이 비판했던 보수 정권의 행태를 그대로 답습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김의겸 대변인 흑석동 투기를 비롯한 부동산 관련 문제, 조국 전 장관의 자녀 관련 의혹, 진보계 인사들의 미투 사건들까지 그들이 비판했던 ‘꼰대적 행태’를 똑같이 재현하는 것에 젊은이들은 큰 실망감을 느끼고 있다. 특히 진보계 인사들이 대거 폭로의 대상이 됐던 미투 사건은 586세대 진보 정치인들의 도덕성을 크게 의심케 했다. 여성들을 의식해 그들이 했던 친 페미니즘적 발언들이 실제의 그들이 지닌 젠더의식과 얼마나 괴리가 있는지 알게 됐다.
‘진보 꼰대’라는 표현은 꼰대가 뜻하는 보수적인 태도와 진보라는 이질적인 개념이 연결된 단어다. 꼰대라는 단어는 이처럼 시대적 상황에 따라 변화해가며 기존의 뜻과 어울리지 않는 다른 단어와 결합하기 시작했다. 특히 권위주의적인 보수 정권에 반대하며 젊은 층의 지지를 받았던 우리나라의 진보 정치권이 ‘진보 꼰대’라는 일종의 멸칭을 받는 현 상황은 지금까지의 진보 대 보수라는 전통적 가치 대결로는 설명할 수 없는 새로운 갈등의 양태임이 분명하다.
세대갈등으로 본 진보 꼰대 현상
조선일보의 2019년 4월 1일 자 기사 ‘진보 꼰대에 분노하는 2030’에 따르면 ‘88만 원 세대’의 저자 우석훈 성공회대 교수는 김의겸 전 대변인 사태에 대해 “현 정권의 청와대 대변인도 결국 상가 임대 소득으로 노년을 설계했던 것”이라며 씁쓸한 심정을 토로했다. 이병철 문학평론가 역시 “김의겸 대변인 사태가 한국의 기득권 586 남성이 보여준 윤리적 파탄”이라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필자를 포함한 현 20대는 집권 보수 세력이 도덕적으로 파산하고 그 정권이 몰락하는 것을 지켜봤다. 이런 경험을 가진 20대들은 더는 정치권의 부도덕한 모습을 인내하기 어렵다. 일명 촛불혁명을 계기로 공직사회에 더 높은 청렴함을 요구하게 된 상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촛불혁명 이후 정권을 차지한 진보 세력 그리고 그 중심인 586세대는 그들이 집권 전 밝혔던 청사진을 실제로 이행하지 않았다. 특히 집권이 시작될 때 선임한 주요 장관들이 청문회에서 겪은 논란들은 현 정권이 시작될 수 있었던 당위를 처음부터 약화했다.
20대가 맹목적으로 진보를 지지하지 않는 시대가 왔다. 정의, 공정, 적폐 청산 등의 이념만 외치다 실상 자신들은 지키지 않는 그들의 태도에 많은 젊은이가 환멸을 느끼고 있다. 또한, 2016년부터 겪었던 우리나라의 정치적 격변에 대한 피로도 일부 존재한다. 이제 탄핵도 끝나고, 새 정권도 들어섰는데 내 삶은 어떠하냐는 바로 이 질문이다.
<좌파 기득권과 진보의 몰락>이라는 분석서를 낸 김장수 제3정책연구소 소장은 “20·30대, 특히 남성들의 경우 이념 지향성은 별로 없다고 본다. 굳이 따지자면 실용주의적이다. 그리고 ‘꼰대 문화’를 싫어한다”고 말했다. 더불어 그는 “젊은 층이 실용적이라고 했는데, 정확히 말하면 경제적 이해관계에 민감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힘든 취업난과 N포 세대로 대표되는 먹고사는 어려움 속에서도 젊은 층은 탄핵에 참여하며 정치적 목소리를 냈다. 그리고 이런 젊은 층의 정치 참여는 분명 새로운 정권 탄생에 큰 도움이 됐다.
그러나 바랐던 정치적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586 정치권은 오히려 스스로 도덕적 문제를 일으키며 실망스러운 모습만 보여줬다. 바랬던 그들의 삶 역시 달라지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그들이 정치에 대해 어떤 기대를 품을 수 있을까? 20대로 대표되는 젊은 세대는 결국 자신의 생존 문제에 집중할 수밖에 없게 됐다. 정치는 응답하지 않고, 삶은 팍팍하니 경제적 문제에 민감해지고, 처음 그들이 정권에 보냈던 높은 지지도 낮아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진보 정치권과 586세대 중 일각에선 이런 상황은 분석하지 못하고 20대 지지율이 낮은 것은 반공교육 때문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주장을 펼쳤다. 그래서 20대들은 이런 586세대와 진보 정치권에 분노하고 있다.
이처럼 현재 586세대가 우리 사회의 정치적·경제적 이권을 가장 많이 차지하고 있는 것은 두말할 것 없다. 88만 원 세대, N포 세대로 대표되는 젊은이들이 여러 경제적 곤궁에 처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과연 이 둘 사이의 세대 갈등은 어떤 사다리를 어떻게 놓아야 해결할 수 있을까?
담론의 유효성과 갈등의 해결
진보 꼰대 담론은 민주화 세력의 무능과 부도덕을 지적하기 위해 등장했다. 586세대는 박정희 독재정권 시기의 교육을 받은 세대다. 그들은 ‘대학이라는 열린 공간을 통해 진보적인 정치의식과 탈권위적, 탈지역적인 모습’을 갖추게 됐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586세대는 당시 기성세대가 했던 악습을 반복했다. 민주화라는 미명 아래 선후배 간 억압적인 서열문화를 구축하고 폭력을 사용하는 등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으로 투쟁에 나서지 못했다. 실제로 천정환 성균관대학교 국문과 교수는 ‘세대 담론 2018, 그리고 영화 1987’이라는 글을 통해 이렇게 밝히고 있다.
“여성과 청년 세대가 지닌 586에 대한 분노에도 여러 가지가 얽혀 있을 것이다. 돈과 권력을 가진 기득권자들에 대한 보편적이고 자연스러운 분노 외에도, 민주화운동과 운동권 또는 민주 정부의 ‘실패’에 대해 조중동 같은 세력이 퍼뜨려온 조롱과 폄하가 개재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분노의 본령은 ‘헬조선’ 현실에 대한 것이며 특히 ‘진보 꼰대’에 대한 실망과 분노일 것이다. 586세대가 ‘민주화운동 했노라고…’, ‘우리 때는…’이라고 말하지만, 그들의 생활 세계에서의 무능이나 보수적인 이중성과 위선, 한국 사회 타자들의 현실에 대한 무감각, 시대에 동떨어진 젠더의식 등에 대해 분노하는 것이다. 그 분노는 정당하다.”
- 천정환, '세대 담론 2018, 그리고 영화 1987’
이처럼 586세대가 가진 한계는 분명히 존재한다(물론 ‘진보 꼰대’가 사회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담론이 된 것은 ‘조중동’이라는 보수 언론의 공작이 일부 있었다는 사실까지 부정하긴 어렵다). 그러나 천정환 교수의 말처럼 ‘진보 꼰대’ 담론은 586세대의 비겁한 모습에 대한 현세대의 분노를 담고 있다. 586세대는 기성세대를 비판하는 입장에서 이제 그 반대의 위치가 됐다. 그렇기에 ‘진보 꼰대 담론’은 이제 기성세대가 된 586의 권력과 그들이 취한 경제적 과실을 견제하고 비판적으로 인식하는데 기여할 수 있다.
진보 꼰대 담론을 통해 세대 갈등의 현주소를 알았다면, 본격적으로 그 갈등을 봉합해볼 시간이다. 앞서 이야기한 세대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행동은 아마 ‘성찰’일 거다. 자신들의 모습이 어떠한지 살피고 되돌아보는 것은 흔히 말하는 꼰대 자가 진단 첫 번째 사항이다. 이런 철저한 자기반성을 통해 586과 현세대 모두 나아가야 한다. 나의 가치관을 상대에게 강요하고 주입해서도 안 된다. 한편에선 이렇게 서로를 조심하고 피하다 보면 소통이 단절돼 우리 사회가 개인화되고 파편화될 위험이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서로에 대한 존중이 없는 강요된 소통은 세대 사이 상처만 남길 수밖에 없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서로의 감정을 헤아릴 수 있는 면밀한 감수성을 가지고 살펴야 한다. 현재의 세대 담론은 대립적 구도 속에서 반목과 갈등을 조장하는 측면이 있다. 양보와 통 큰 타협을 통해 세대 간의 화해와 상생의 길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다.
아울러 정치권에선 청년들을 위한 정책과 청년들의 정치 참여를 위한 통로를 만들어야 한다. 이미 정당마다 청년들이 참여할 수 있는 여러 조직이 마련됐지만, 실효성 있게 운영되는 경우는 드물다. 능력만 있다면 젊은이들이 국회 공천을 받는 혁신이 일어나고, 30대, 40대 장관 대통령이 출연할 수 있어야 한다. 청년들이 우리 사회의 문제들에 대해 자기만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창구(혹은 이를 대변하는 인물)가 존재할 때 세대 갈등을 해결할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철 지난 세대론이라 비판할 수 있지만, 진보 꼰대 담론은 이제 우리 사회의 세대 갈등의 한 부분으로 분명히 인식되고 있다. 이런 진보 꼰대 담론이 제기하는 문제의식에 대한 공감 여부는 개인마다 다를 수 있다. 그러나 분명히 존재하는 이 갈등과 반목을 해결하려면 여러 정책 개발과 더불어 서로의 세대를 함부로 재단하고 판단하지 않으려는 최소한의 노력이 필요하다. 서로를 위하는 배려와 감수성이 세대갈등을 조금이나마 봉합할 최선의 방책이 될 수 있다고 믿으며, 정말 그런 세상이 오길 신실한 마음으로 기도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