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기변환]나태주 시인 이미지.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102/20210228010600_rzdvlpkw.jpg)
시를 좋아하지 않았다. 이유는 두 가지다.
1. 시의 학습화
1. 다음 시의 A 단어가 함축하는 의미로 알맞은 것은? (2점)
2. 다음 시에 대한 설명으로 알맞지 않은 것은? (3점)
학교는 시를 ‘가르쳤다’. 그리고 필자는 ‘공부했다’.
시를 쓴 의도와 단어가 함축하고 있는 바를 찾는데 몰두했다. ‘이 시는 5점짜리야’, ‘이 시는 교과서에 나왔던 거네’ 등 시를 음미하는 것이 아닌 학습의 대상으로 인식했다. 심지어 긴 시를 암기하는 수행평가도 있었다. 시의 뜻을 이해하지도 못한 채 벽을 보고 하루에도 수십 번 시를 뱉었다.
그래서 비문학이나 문학보다 시를 기피했다.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풀어쓰면 안될까, 굳이 많은 의미를 함축해서 써야했을까’. 수능을 치르고 시를 접하지 않았다. 필자에겐 시란, 어렵고 난해하고 이해하는 데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는 장르였다.
2. 해석의 어려움
아무리 해설지가 시의 암호를 해석해줘도 이해되지 않았다. 필자가 겪어보지 못한 인생의 아픔, 고난 그리고 역사적 배경들. 상상하기엔 필자의 상상력에 한계가 있었다.
시는 그렇게 멀어져만 갔다.

시인 나태주가 알려주는 인생의 눈덩이
몇 년만에 조우한 시는 필자에게 자연스럽게 흡수되었다.
나름의 개인적인 아픔과 고난을 겪고 나니 시는 학습의 대상이 아니었음을, 시는 시인의 개인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필자의 이야기였음을 깨달았다. 시는 의외로 ‘일반성’을 가진 장르였다.
또한 시는 눈덩이였다. 인생에서 느낄 수 있는 희노애락을 하나로 꽁꽁 뭉쳐 하나의 단단한 눈덩이로 만든 듯 했다. 눈덩이 하나는 손을 시리게도 만들지만 존재자체로도 마음이 뜨끈해진다.
누구나 마음이 힘든 시기가 있고 지금 필자가 그 울퉁불퉁한 시간을 지내고 있다. 그때, 시인 나태주가 말했다.
시가 사람을 살리는 좋은 약이라는 믿음을 나는 한순간도 놓아본 적이 없답니다.
- 시인 나태주
‘시’야 말로 ‘가성비’ 좋은 치료제가 아닐까. 10줄 내외의 짧은 글로 사람의 마음을 위로한다. 더하여 시집 ‘시가 사랑을 데리고 온다’는 시인 나태주의 ‘음성’까지 함께 느낄 수 있다. 시 하나하나에 그의 소견이 담겨있다. 시의 ‘해석’이 아닌 시를 읽은 독자들에게 위로와 공감의 음성을 더한다.
조심스레 말해보지만, 시집 ‘시가 사랑을 데리고 온다’는 아트인사이트 최고의 문화초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