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미 한국에도 안도 타다오의 건축이 여럿 있지만 이곳은 그의 매력을 가장 많이 엿볼 수 있는 건축이 아닐까 싶다. 끝없는 직선. 어디가 시작인지 끝인지 알 수 없는 곳.
바로 원주, “뮤지엄 산”이다.
오브제

일상 속 예술, 일상의 예술. 예술이라는 장르가 점점 확대(혹은 축소)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뮤지엄 산의 특별 전시회, “오브제”는 나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 주었다.
마르셀 뒤샹의 “샘”은 남성용 소변기이다. 뒤샹은 이 작품으로 레디메이드, 즉 기성품도 예술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후, 기성품과 같은 일상적인 사물들이 예술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한 물음이 시작되었고, ‘오브제’라는 새로운 장르가 생겼다.
우리 주변의 일상적인 사물들이 예술이 될 수 있을까? 익숙한(혹은 그렇지 않은)물건을 놓고 나의 주관적 의미를 부여한다면 그걸 예술이라고 할 수 있을까? 예술이란 기능이나 기술을 부여하여, 인간이 만들어내는 창작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제는 예술작품 그 자체를 넘어, 내가 작품을 보고 느끼는 감정,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객관적 의미들이 예술이 되어가는 것 같다.
“우리는 모두 예술가다”
내가 예술을 보고 느끼고, 생각하며 또 내 것으로, 내 방식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혹은 바라보는 자체만으로- 우리는 모두 예술가가 아닐까. 그것이 거창한 의미가 아니라 그냥 ‘나’가 바라보는 매일, 매시간이 예술인 삶이다.
제임스 터렐
이번 뮤지엄 산에서 처음 알게 된 ‘제임스 터렐’. 그의 전시는 관객으로 하여금 빛을 바라보며 명상과 사색을 느끼게 한다. 전시는 정말 놀라웠다. 너무나 과학적인 빛, 마치 착시현상을 일으키는 그림을 보는 듯 한 묘한 기분… 단순해 보이는데 복잡하다. 유한하지만 무한한하다. 앞서 말한 객관적 시선으로서 예술이 바로 이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임스 터렐의 작품을 통해 내가 바라보고 생각하는 자체가 예술이 된다는 것, 내가 상상하는 그 나름대로의 것을-혹은 그 이상을-느낄 수 있는 시간들이었다.
제임스 터렐은 ‘나’가 세상의 중심임을, 누구나 저만의 세계가 있다는 걸 보여주었다. 내가 걷거나 뛰어도 창을 통해 비친 내 발 아래 하늘은 절대 나와 떨어지지 않는다. 내가 있는 이 곳, 이 순간, 앞으로 내가 어딜 나아가든지 나의 중심은 항상 ‘나’가 바라보고 향하는 지금 이 순간에 있다.

사진출처: 뮤지엄 산 홈페이지
재단을 떠올리는 계단, 그리고 뻥 뚫린 창 사이로 보이는 지금 이 순간의 하늘. 마치 액자 같다. 하지만 그 곳을 따라 올라가보면 이제 서야 액자 속 그림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그 창밖으로 나가면 또 다른 세계, 아름다운 자연이 눈앞에 펼쳐진다. 창을 볼 때는 보이 는 게 전부라고 생각했는데, 창을 향해 올라가니 이제 시작이었다. 더 큰 세계가 내 눈앞에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유도한 사색과 명상의 시간을 통해 저마다 느끼는 바는 다를 것이다. 나는 그의 작품세계를 처음 겪어보았지만 분명 정해진 답은 없을 거라 생각한다.
내가 느끼는 그 자체, 행위 모든 게 예술이라는 것.
“경계가 없는 곳”이라 정의하고 싶었다. 안도 타다오의 건축도, “오브제”도, 제임스 터렐의 공간 속에서도. 그 어디에도 정해진 경계는 없었다. 우리가 경계라고 말한 모든 것들이 이 곳에서는 존재하지 않았다. 하늘과 땅, 일상과 예술, 유한함과 무한함, 끝과 시작… 이 모든 경계가 사라진다.
내가 있는 이 곳, 지금 당장 보이는 풍경. 나는 이 모든 게 예술이라 생각한다. 그러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