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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폐공장이 예술의 공간으로 [테이트 모던 미술관]

런던의 랜드마크로 자리잡은 테이트 모던 갤러리

by 유지은 에디터
2016.02.16 02:54
 
  얼마전, SNS에 영국에서 유학 중인 대학 동기가 테이트 모던에 방문해 찍은 사진을 올린 것을 보았다. 환경 디자인을 공부하는 친구라 그런지, 미술관 구조나 경관에 대한 사진이 가득했다. 환경 디자인 강의를 들어 본 적이 있었다. 그 때에 배운 것들은 건축은 단순히 주거의 기능이 아니라 예술의 한 분야로서 얼마나 아름다운 심미적 요소를 갖추고 있는지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요즘처럼 ‘아름다움’을 중요시 하는 사회적 분위기에서 건축은 이미 오래전부터 예술의 한 분야로서 역할을 해내고 있었다. 특히나 [테이트 모던 미술관]은 독톡한 이력을 지닌 건축물로 유명하다. 과거 공장이었던 건물을 그대로 리모델링한 미술관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과감한 시도는 성공적인 결과를 이루어냈으며, 현재는 런던의 문화 랜드마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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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te Modern Gallery] Bankside, London
 
 
무료 상설 전시, 테이트 온라인을 통해 가장 대중적인 갤러리로
 
 지하철 Blackriars역에서 걸어서 10분이면 런던의 랜드마크인 테이트 모던 미술관이 나타난다. 일부 기획 전시를 제외하고는 입장료가 무료라고 하는데, 이 점이 다른 무엇보다 독창적인 테이트의 성공이라고 볼 수 있고, 가장 대중적이고 개방적인 미술관으로의 재탄생이라는 점이라고 볼 수 있다. 개관한 해에 525만 여명의 방문객을 맞음으로써 세계 현대 미술관 중 가장 많은 관객 수를 기록한 테이트 모던은, 특히 테이트의 대중적 매력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 또한 사회민주주의 성격이 강한 영국 사회의 전반적 성향은, 지금까지도 컬렉션 상설 전시를 무료로 개방하는 전통을 구축했고, 이는 비슷한 규모 및 성격의 외국 미술관들과 비교할 때 거의 전례가 없다. 국가의 미술 소장품을 국민에게 무료로 선보인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 같기도 하지만, 정부로부터의 재정적 지원이 점차 줄고 있는 상황을 고려할 때, 상당한 철학과 실질적인 능력을 요구하는 결정이다.
 
 1998년 본격적으로 시작된 테이트 온라인은 단순한 미술관 웹사이트로서의 기능을 넘어, 테이트 소장품 전체를 담은 온라인 카탈로그와 강연 등 모든 이벤트들의 웹캐스팅 기능 등을 포함한다. 네 곳에 자리 잡은 물리적인 미술관 공간의 확장임과 동시에 독자적인 미술 공간으로 기능하는 테이트 온라인은, 페이스북, 트위터 등 소셜 미디어를 통해서도 적극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다. 온라인 학술 전문지 기능을 하는 ‘테이트 페이퍼스(Tate Papers)’, 실제 공간이 아닌 웹 공간에서만 벌어지는 ‘BMW 테이트 라이브 퍼포먼스 등은, 자료 보존이나 정보 제공에 머물지 않는 역동적인 온라인의 역할을 잘 반영하는 프로그램들이다.
 
 영국 미술의 국립 컬렉션으로 시작하여 세계적인 미술관으로 성장한 테이트의 역사는 세계 각국의 다양한 미술관으로부터 시범적인 사례로 여겨지고 있다. 한 미술관의 비전과 도전 의식이 한 나라의 미술 지형을 바꿀 수 있고, 나아가 국제 미술의 흐름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은, 정치적 의도나 경제적 상황에 의존하지 않으면서도 효과적으로 한 국가의 현대미술의 위상을 높일 방안을 구상하는 데 좋은 예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21세기 런던의 문화 랜드마크, 테이트 모던
 
버려진 화력 발전소에서 런던의 랜드마크인 [테이트 모던 미술관]으로
 
 본래는 작은 미술관이었지만 공간에 비해 많은 작품수와 관광객을 수용하기 어려웠던 테이트 갤러리는 1981년 이후 폐쇄 상태로 있던 화력발전소를 2000년도에 [테이트 모던 미술관]으로 준공, 개관하게 되었다.
 
 세인트 폴 대성당을 중심으로 런던의 이미지를 확립하는 일은 지난 60여 년 동안 런던의 화두였다. 이러한 맥락에서 템스 강 건너편, 세인트 폴 대성당과 마주한 위치에 어떤 건물이 들어서는가는 무엇보다 민감한 문제였다. 2차대전이 끝난 뒤 런던 시의회는 런던 시민과 기업들에게 안정적으로 전기를 공급하려고 템스 강변에 몇 개의 대규모 발전소를 건립하기로 결정했다. 그 중 하나가 테이트 모던의 모태가 된 화력발전소다. 당시 자일스 길버트 스코트는 교회 및 산업 건물 디자인을 통하여 최고의 권위를 인정받은 건축가였다. 따라서 그가 섬세하게 디자인한 발전소는 기존의 공장 건물들이 갖고 있던 추한 이미지를 바꾸는 데 크게 기여했다. 템스 강변에 우뚝 솟아 전력을 생산하는 발전소를 ‘산업 대성당(Industrial Cathedral)’이라고 치켜세울 정도였다.
   
  스코트는 템스 강을 사이에 두고 세인트 폴 대성당과 화력발전소가 시각적으로 어떻게 연계될 것인가를 가장 중요하게 고려했다. 특히 화력발전소의 위치, 형태, 재료, 색깔 등에서 세인트 폴 대성당과의 관계를 염두에 두었다. 세인트 폴 대성당 돔의 높이와 모습을 고려하여 디자인된 99m 높이의 굴뚝이 한가운데 세워졌고, 길이 152m, 폭 24m, 높이 35m의 건물을 위해서 약 4,000만 개의 벽돌이 사용되었으니 대성당과 충분히 비교될 만하다. 따라서 현재와 같은 극적인 모습의 테이트 모던이 탄생할 수 있었던 보이지 않는 공은, 사실상 스코트가 디자인한 화력발전소에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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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익히 알려진 것처럼 지난 1994년에 있었던 테이트 모던 현상설계에는 렘 콜하스, 안도 타다오, 렌조 피아노 등을 비롯하여 여러 세계적인 건축가들이 참석할 정도로 큰 호응을 얻었다. 그 중에서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낮았던 스위스 건축가 헤르족과 드 뮤론이 당선된 것은 의외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테이트 재단에서 이들의 안을 선정한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바로 헤르족과 드 뮤론의 안이 기존에 스코트가 디자인한 화력발전소의 모습을 가장 적극적으로 보존하고 활용했기 때문이다.
 
 화력발전소가 비록 1981년 유가파동으로 인하여 문을 닫긴 했지만, 벽돌로 섬세하게 지은 이 건물은 영국 근대건축을 상징하는 건물 중 하나로 여겨지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결국 헤르족과 드 뮤론의 디자인은 화력발전소가 지닌 상징성과 잠재력을 재발견하여 극대화시켰다는 점에서 다른 건축가들의 작품과 큰 차이를 보여주었다. 실제로 헤르족과 드 뮤론이 탈바꿈시킨 테이트 모던과 과거의 화력발전소를 비교해보면, 지붕 위에 덧붙여져 전시실로 사용되는 ‘유리 박스’를 제외하고는 큰 차이를 느낄 수 없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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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한편으로 테이트 모던의 핵심은 서쪽의 주출입구인 터어빈 홀이다. 대규모 철거작업을 통해서 깔끔하게 비워지고, 경사로가 놓인 터어빈 홀에서는 다른 현대 미술관들에서는 소화하기 힘든 대규모 전시나 행사가 가능하다. 그런데 보통 이곳은 특별한 전시나 행사가 없이 비워져 있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에 템스 강변을 따라서 걸어온 사람들은 서쪽 출입구를 통해서 자연스럽게 터어빈 홀로 흘러들어온다. 즉, 미술관이면서 동시에 강변로의 연장인 셈이다. 이와 같은 터어빈 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은 소풍 온 어린이들과 전시를 보러 온 사람들이 도시락을 먹거나, 편안하게 누워서 책을 보는 것이다. 그야말로 실내에 만들어진 공원이나 다름없다. 세계 어느 미술관에 이 정도로 큰 휴식 공간이 있을까. 기존의 화력발전소가 지니고 있던 구조를 그대로 사용하지 않았다면 이처럼 독특한 공간은 만들어질 수 없었을 것이다.

 테이트 모던은 지난 수백 년간 런던이 안고 있던 두 가지 딜레마를 해결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첫째, 테이트 모던은 문화·예술 도시로서 런던의 위상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켰다. 런던에는 국립미술관, 테이트 브리튼, 대영박물관, 자연사박물관 등 세계적 수준의 박물관들이 많지만 이들을 소위 ‘월드 클래스’로 부르기에는 부족한 감이 없지 않다. 보편적으로 월드 클래스로 불리는 박물관들은 두 가지 조건을 만족해야 한다. 하나는 높은 수준의 소장품이고, 다른 하나는 박물관 자체의 건축적 매력이다. 중요한 사실은 건축적으로 매력적인 박물관들은 전문가와 일반인 모두에게 그 자체로 높은 수준의 전시품이나 다름없다는 점이다. 바로 테이트 모던이 그 역할을 해낸 것이다.
 
 둘째, 테이트 모던은 세인트 폴 대성당과 연계하여 그동안 런던에 존재하지 않았던 남북을 연결하는 선적인 도시경관축을 만드는 초석을 놓았다. 테이트 모던 내의 여러 각도에서 볼 수 있는 세인트 폴 대성당과 뒤편의 도시 모습이 예전에는 감상할 수 없었던 것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테이트 갤러리의 확장
 
영국 정부의 밀레니엄 프로젝트 중 가장 성공적인 사업으로 평가되는 테이트 모던의 설립은, 1988년 문을 연 테이트 리버풀(Tate Liverpool), 1993년 설립된 테이트 세인트 아이브즈(Tate St Ives)에 이어 테이트 산하에 총 네 곳의 미술관 설립을 완결지었다. 런던 지역을 넘어 잉글랜드 북부와 서부로 국립 컬렉션의 전국적 확산을 도모한 테이트의 비전은, 밀레니엄을 맞아 비로소 전면적인 재구성 기회를 맞은 것이다. 런던 서더크(Southwark) 지역에 거의 버려져 있다시피 했던 화력 발전소를 재건축한 테이트 모던 미술관은, 발전소 본래의 외관을 그대로 살린 채 인상적인 중앙 터빈홀과 현대적인 갤러리 공간으로 개관 당시부터 눈길을 모았다. 프랑스 출신의 원로 미술가 루이즈 부르주아(Louise Bourgeois)의 대규모 거미 설치 작품과 연대기적 구성 대신 주제 중심으로 재구성한 소장품 상설전으로 테이트 모던이 문을 열었을 때, 테이트는 이 미술관의 개관이 1920년대의 뉴욕 현대미술관(The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 개관, 1970년대의 파리 퐁피두 센터(Centre Pompidou) 개관을 잇는 세계적인 미술계의 사건이 될 것이라고 자평한 바 있다.
 
밀뱅크(Millbank)에 자리한 본래의 테이트 갤러리 또한 테이트 모던의 신축과 발맞추어 증축의 과정을 거쳐, 보다 크고 현대적인 테이트 브리튼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네오 클래식 양식 건축물의 발판 위에 새로운 기획 전시 공간과 소장품 전시 공간, 장애인 출입 경로 등을 확보한 테이트 브리튼은, 말 그대로 16세기부터 오늘날까지의 영국 미술을 관장하는 영국의 대표 미술관으로 그 위상을 확보했다. 영국이 자랑하는 터너 컬렉션으로부터 라파엘 전파(Pre-Raphaelite Brotherhood), ‘YBA (Young British Artists)’에 이르는 영국 미술의 유산이 독립적인 연구와 전시 공간을 확보했다는 점은 상당한 역사적 의미를 지니는 사건이었다.
 
 
주요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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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 Robert Delaunay 1885-1941
Title : Endless Rhythm
Rythme sans fin
 
Date : 1934
Medium Oil paint on canvas
Dimensions Support : 1619 X 1302 mm
frame : 1644 X 1332 X 45 mm
On display at Tate modern
Theme : Level 4 : Structure and Clarity
Room : Around Abstract Art 1920-1935 (Room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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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 Pablo Picasso 1881-1973
Title : Weeping Woman
Femme en pleurs
 
Date : 1937
Medium Oil paint on canvas
Dimensions Support : 608 X 500 mm
frame : 847 X 739 X 86 mm
On display at Tate modern
Theme : Level 2 : Poetry and Dream
Room : Surrealism and Beyond (Room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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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 Wassily Kandinsky 1866-1944
Title : Swinging
Schaukeln
 
Date : 1925
Medium Oil paint on board
Dimensions Support : 705 X 502 mm
frame : 954 X 750 X 80 mm
Collection Tate
Acquisition Purchased 1979
Reference T02344
On display at Tate Modern
Theme : Level 4 : Structure and Clarity
Room : Around Abstract Art 1920-1935 (Room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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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이 아닌 하나
 
테이트 모던으로 가는 가장 보편적인 방법은 무엇일까. 지하철 세인트 폴 역에서 내려서 밀레니엄 브리지를 건너서 걸어가는 것이다. 그럼, 세인트 폴 대성당을 감상할 수 있는 최상의 위치는 어디일까. 바로 테이트 모던이다. 세인트 폴 대성당은 종교적·사회적·정치적 의미에서 런던의 중심 역할을 해왔고, 테이트 모던은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이미 런던의 문화적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지금 두 랜드마크는 템스 강을 사이에 두고 당당히 마주 서 있다. 이제 세트 폴 대성당이 없는 테이트 모던이나, 테이트 모던이 없는 세인트 폴 대성당은 상상하기 어렵다. 둘이 아닌 하나가 되어 21세기 런던의 새로운 이미지를 창조하고 있는 것이다.
 
 
영국 국내 미술의 범주를 넘어 국제 현대미술의 중심지로
 
테이트 갤러리가 영국 미술의 범주를 넘어 국제 현대미술의 컬렉션을 확보해야 한다는 결정은, 거의 개관 직후인 1917년에 이미 내려졌다. 입체주의, 표현주의, 미래주의 등 다양한 아방가르드 미술이 국제적으로 성장하고 있던 당시의 상황은, 영국의 국립 컬렉션 또한 세계 미술의 동시대 흐름에 민감해야 한다는 필요성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기존의 테이트 갤러리가 규모 면에서나 성격 면에서 더 이상 하나의 미술관에 한정될 수 없다는 판단은 1980년대에 본격적인 증축 계획으로 이어졌고, 이후 테이트는 컬렉션의 문을 보다 많은 관객들에게 열기 위한 목적으로 런던 이외의 지역으로 그 물리적 범주를 넓혀가기 시작했다. 거의 20년 동안 진행된 테이트의 증축 계획은, 밀레니엄이라는 획기적 계기를 맞아서야 비로소 실현되었지만, 그 이면에는 100여년에 걸친 장기적 계획과 비전이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테이트 모던의 개관을 비롯한 테이트의 양적, 질적 성장은, 테이트의 역사 뿐 아니라 영국 미술의 역사에도 중요한 전환과 발전의 계기로 작용하였다. 국제적으로 부상하기 시작한 영국 미술의 힘은, 1984년부터 개최된 개최된 ‘터너상(Turner Prize)’ 의 위상을 최근 들어 획기적으로 높였고, 데미언 허스트(Damien Hirst), 크리스 오필리(Chris Ofili), 레이첼 화이트리드(Rachel Whiteread), 마크 월린저(Mark Wallinger), 마틴 크리드(Martin Creed) 등 이 상의 수상 작가들은, 영국을 넘어 세계적인 작가의 대열에 오르기 시작했다. 10여년전부터는 영국 국적 작가뿐 아니라 영국에서 활동하는 외국 작가들도 포함하기 시작하면서, 터너상은 더욱 중요한 미술상으로 주목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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