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코펜하겐의 자치 공동체, 크리스티아니아에 대한 단상
2015년 여름, 코펜하겐에 갔을 때였다. 나는 자전거를 타고 여유로이 도시를 가로지르는 깔끔한 외모의 북유럽사람들이 떠올렸고, 그런 이미지를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다 프리워킹투어에서 만난 호주 친구가 “크리스티아니아”가 꼭 가고 싶다고 하여 (뭔지 모르지만) “OKAY”했다. 그리하여 마주한, 정갈한 코펜하겐 도심 속 크리스티아니아.
그렇다, 나는 완전한 낯섦에 떨고 있었다. 입구부터 심상치 않더라니, 온 동네가 자유와 반항의 예술, 그래피티 천국이었다. 태국에서 볼 법한 석탑이 광장 중앙에 있었고, 그 한 켠에는 요란한 무대가 설치되어있었다. 허름한 집들이 많았는데 난잡하게 미술도구들이 흩어져있었고, 요상한(?) 사진을 전시하는 집도 있었다. 생필품을 파는 집도 있기는 했다. 강 주변을 걸을 땐 쓰러져가는 판자집에서 멀끔한 백인이 빼꼼히 나와서 내가 더 당황스러웠다. 어디서나 알싸하면서 몽롱한 냄새가 풍겼다(호주 친구가 말하길, 그 냄새는 마리화나였다). 한마디로, ‘북유럽, 덴마크, 코펜하겐’이라는 카테고리에 속해 있을 수 없는 곳 같았다. 더 놀라운 사실은 많은 이들이 북적 였다는 점이다. 광장 테이블은 앉을 자리도 없었다.
코펜하겐 크리스티아니아는 이렇게 이상한 장소로 기억되고 있었다. 그리고 몇 개월이 지난 후 [히피와 반문화]라는 책과 함께 다시금 내 머릿속에 떠올랐다. 이 책을 간단히 말하자면, 60년대 미국에서 일어난 정치, 예술적 반문화 운동의 양상과 그 평가를 적어둔 책이었다. (미국인들이 쓴, 그 시대를 신격화하는 경향의 저술들이 없잖아 있는 반면) 프랑스인 저자라 그런지, 미국의 반 문화운동에 꽤 객관적이었다. 결국 반 문화운동이 흐지부지되고, “여가”를 통해 산업사회의 전에 없던 황금기를 가진 세대들이 시간이 흘러 주류사회에 복귀했음을 “고유의 모순을 극복할 수 없었다”고 지적한다. 고유의 모순이란 무엇인가? 깊게 들어가지 않아도 된다. 산업자본주의라는 단단한 바탕을 둔 주류에 반해, 반문화 운동은 마르크시즘적 혁명들이 결국 실패했고 예술운동들도(예를 들면 1969년 8월 뉴욕 주에서 열린 우드스톡 록페스티벌) 폭력적으로 변했던 점들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런 결과 60년대 미국에서 발발하고 70년대 전 세계로 퍼진 ‘반문화 운동’은 2015년 현재에는 자취를 감추었다.
이런 맥락에서 크리스티아니아의 존재는 더 빛을 발한다. 물론, (고유의 통화단위를 쓰지만)그들도 ‘화폐경제’에 살고 있고, 코뮌 외의 사람도 그 장소에 발을 들일 수 있는 어느 정도의 개방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맥이 끊긴 반문화의 역사를 유지하고 있는 지구상에 몇 안 되는 공동체임은 분명하다. 어떻게 이게 가능할까? 크리스티아니아의 대변인, 토마스에 따르면 850여명 남짓의 구성원들은 주기적인 자치회의를 통해 공동체의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 살 방안을 마련한다. 공동체 유지비-세금-을 내고, 여력이 안 되는 이들은 보조금을 지급하면서 어쨌든, 공동체가 원활히 돌아갈 수 있게 한다.
간과하지 말아야 할 또 다른 요점은 그들을 “인정해주는” 코펜하겐이다. 코펜하겐 시는 크리스티아니아를 새로운 사회 실험의 일환이라고 보면서 1971년 이래 그들이 버려진 군영 지를 불법 점유했음에도 크게 상관하지 않았다. 근래 그들의 불법점유에 반대의견이 나오자, 시중가 보다 싼 가격에 공동체 구성원들이 그 땅을 매입할 수 있도록 주선했다. 크리스티아니아와 코펜하겐 시는 대화와 타협을 통해서 서로의 “존재”를 조화시킬 수 있는 방안을 지속적으로 찾아가고 있다. 코펜하겐 시민들도 이런 행보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크리스티아니아에 있던 많은 이방인들(사실 히피들과 非히피들은 겉모습에서부터 구별이 가능했다)에서부터 그 공동체 존속이 사회적으로도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건 자명했다.
크리스티아니아를 보며 한국의 세태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이 공동체와 오버랩 되면서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에서도 나오는, 재개발 때문에 고통 받는 소시민의 모습이었다. 새로 지을 아파트 분양권을 받아도 입주할 돈도 없고, 여태 살아오던 삶의 터전도 잃어버린 소시민들의 목소리는 누구도 들어주지 않았고, 결국 주인공은 자살했다. [난쏘공]의 배경이 70년대라는 걸 알면 더 소름이 돋는다. 동일한 70년대인데 지구 반대편에서는 공동체의 공생을 모색하는 반면, 여기서는 누군가의 부귀영화를 위해 누군가의 생명이 바스러진다.
어디서나 시끄러운 한국사회를 더 잘살게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크리스티아니아를 보면서, 해결책은 진보와 보수라는 정치적 논리, 이익과 손해라는 경제적 논리로 따져 나올게 아니라는 생각이 계속 든다. ‘마주보고 말한다’는 대화, 이 참 의미를 실현할 수 있는 사회 문화를 가졌느냐, 아니냐 에서부터 문제는 풀릴 수 있을 것이다.
참고 문헌
[히피와 반문화] 2015, 크리스티안 생-장-폴랭 지음, 성기완 옮김, 문학과 지성사
대항문화와 문화적 좌파
'자유도시'크리스티아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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