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당신이라는 이름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 며칠은 먹었다

by 김수정 에디터
2015.06.28 23:20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박 준 

박준은  1983년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문학을 잘 배우면 다른 이에게 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대학과 대학원에서 알았다. 2008년 『실천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jpg
문학동네/2012



     "이번 생의 장례를 미리 지내며 시인은 시를 쓰네."
허수경(시인)



서점을 돌아다니다 보면 문득 눈에 들어오는 시집이 있다. 
이 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가 그렇다. 

       시집은 읽고 이해하기에 전혀 난해하지 않다. 
시인이 '미인'을 바라보며, 그를 그리며 낮게 조곤조곤 언어를 풀어 나간다. 
시를 읽다보면 시인과 미인의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나는 이 시집을 읽으며 정말 오랜만에 시언어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느꼈다. 
     그것은 피부 깊숙이, 뼛속으로 나를 파고들었고 내 세포들을 떨게 만들었다.       



모든 글의 만남은 언제나 아름다워야 한다는 그의 말.  



a5e1cef4c8095d0cd5bbf516aec6b884.jpg
 


동백이라는 아름다운 재료
 
'시는 모든 언어예술의 최전방에 항상 서있어야 해요. 모국어가 썩지 않게끔 고유성을 찾아내야 해요.' - 인터뷰 中

항상 최전방에서 몸을 떨어야 하는 시의 숙명. 


나의 사인(死因)은 너와 같았으면 한다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를 읽다 보면 
어느새 시와 함께 최전방에서 추락하고 있는 내가 있다.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이상한 뜻이 없는 나의 생계는 간결할 수 있다 오늘 저녁부터 바람이 차가워진다거나 내일은 비가 올 거라 말해주는 사람들을 새로 사귀어야 했다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이의 자서전을 쓰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지만 익숙한 문장들이 손목을 잡고 내 일기로 데려가는 것은 어쩌지 못했다
 
'찬비는 자란 물이끼를 더 자라게 하고 얻어 입은 외투의 색을 흰 속옷에 묻히기도 했다'라고 그 사람의 자서전에 쓰고 나서 '아픈 내가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는 문장을 내 일기장에 이어 적었다
 
우리는 그러지 못했지만 모든 글의 만남은 언제나 아름다워야 한다는 마음이었다


 
tumblr_mxynu0ADHd1r1m3mko3_500.jpg
 

슬픔은 자랑이 될 수 있다


철봉에 오래 매달리는 일은
이제 자랑이 되지 않는다

폐가 아픈 일도
이제 자랑이 되지 않는다

눈이 작은 일도
눈물이 많이 일도
자랑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작은 눈에서
그 많은 눈물을 흘렸던
당신의 슬픔은 아직 자랑이 될 수 있다'

나는 좋지 않은 세상에서
당신의 슬픔을 생각한다

좋지 않은 세상에서
당신의 슬픔을 생각하는 것은

땅이 집을 잃어가고
집이 사람을 잃어가는 일처럼
아득하다

나는 이제
철봉에 매달리지 않아도
이를 악물어야 한다

이를 악물고
당신을 오래 생각하면

비 마중 나오듯
서리서리 모여드는

당신 눈동자의 맺음새가
좋기도 하였다



tumblr_nmh0b3qyo81ustp3io1_500.jpg
 


미인의 발



반디미용실에서 처음 낙타를 보았습니다 미용실 누나는 쌍봉낙타 봉 같은 가슴 사이에 제 머리를 묻고 비뚤어짐을 가늠했고 저는 실눈만 떴다 감았다 했습니다 왼쪽과 오른쪽을 맞춰 다 듬다 머리는 새싹처럼 짧아지고 쥬시후레시를 건초처럼 씹는 미용실 주인의 잔소리에 미숙한 누나는 푹푹 발이 빠졌습니다 누나는 동네 아저씨들 술자리의 기본 안주가 되기도 하고 아주머니들의 커피 잔에서 설탕과 함께 휘저어졌습니다 엄마보다 동네 형들이 반디미용실에 더 많 이 들락거렸고요 낙타가 떠난 날은 감나무집 형이 소주를 댓병으로 마신 날이었습니다 형 가 슴보다 까맣게 그을린 반디미용실 건물, 석유 말 통과 담뱃불이 반딧불이처럼 날아들어왔다는 미용실 주인은 양귀비 염색약처럼 까맣게 울었습니다 낙타는 불이 다 꺼진 뒤에야 미용실에서 나와 삼거리 지나 일방통행로로 천천히 걸어나갔습니다 낙타가 사하라로 갔는지 고비로 혹은 시리아 사막으로 갔는지는 알 수 없지만요 마음을 걷던 발자국은 아직도 남아 저는 요즘도 간혹 그 발자국에 새로 만나는 미인들의 흰 발을 대어보기도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