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곡미술관 :: 2013내일의작가수상전 하얀비명: 김윤경숙

글 입력 2014.10.27 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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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곡미술관은 '2013 성곡미술관 내일의 작가' 수상기념전, <하얀 비명: 김윤경숙>을 개최합니다. 이번 전시는 개인적 경험과 인식을 바탕으로 한 김윤경숙 특유의 드로잉과 대형 설치작업 20여점을 선보입니다. 사적인 기억 속에서 시작되었지만, 동시대를 살아내는 우리가 공유하고 공감하는 사건과 감정들을 과거·현재의 연장선상에서 반추하고 돌아보는 의미있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김윤경숙, 소리 없는 아우성
 
김윤경숙은 개인의 기억을 객관적 사건에 투영시킨다. 작업을 통해 망각이라는 인간의 방어기제를 해체한다. 작가의 주된 작업방식인 반복적이고 집적(集積)적인 행위는 서로의 기억과 환각을 공유하며 공생하기 위한 도구다. 기록자, 혹은 감시자로서 사회-개인 사이의 관계를 재()쟁점화하거나 잃어버린 개인의 기억을 숙고하도록 유도한다.
 
일회성이 강한 오브제. 얇고 약한 비닐테이프. 김윤경숙은 테이프를 사용한 설치작업으로 알려져 있다. 선홍(宣弘)의 피를 연상시키는 빨간 테이프로 공간에 개입하는 일련의 작업이다. 작가의 작품곳곳에 등장하는 이 투명한 듯 불투명한 빨간색은 작가가 어린 시절에 목도한 한순간에 일어난 처참한 사건에서 생겨났다. 어린 아이의 사고현장에서 비롯된 이 색은, 당시 생겨난 트라우마를 벗어나기보다는 받아들이려는 노력의 신물(信物)이다. 불의의 사건사고로 인한 죽음, 억울한 죽음, 자연사, 생로병사 등 의도적이든 의도적이지 않든 세상으로부터 살생되는 모든 것들을 기안(氣岸)한다. 작가는 거대한 공간구조 안에 수도자의 호흡처럼 가지런히 붙여나가며 신성하고 고유한 영역과 층위를 만든다. 상흔을 시각적으로 드러내어 환기시키고 위로하는 증거적 행위이며 김윤경숙식의 위령제다.
 
1층에 들어서면 구조화된 공간에 갇힌다. 직육면체의 크고 획일적인 공간을 새빨갛게 둘러내는 장막은 보는 이를 옥죈다. 생리적 순환이 잘 되는 체내에 들어 온 듯 일시적인 안도감을 느끼기도 한다. 반듯하고 규칙적으로 나열되어 정갈하게 보이는 구조 덕분이다. 하지만 얇은 비닐의 장력(張力)으로 견디고 있는 허울을 인지하는 순간 이내 불안감을 느낀다. 몽환적이지만 불편한 이곳을 부유하다 계단을 올라서면 작고 좁은 망루(望樓)가 있다. 서서히 공간에 침식되다 보면 장엄한 제단에 있는 듯하다. 망원경을 들고 시야를 넓히면 벽면 곳곳에 표식들이 있다. 그것을 읽고 풀고 판단해야 하는 몫은 거기에 서있는 관람자의 것이다. 편린일지라도 그것은 뭔가를 대변하거나 그에 대한 판단을 중첩시켜 이견이나 공감을 만든다. 망루아래서는 보이지 않는 것들, 수면으로 올라와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다. 독단이나 오판은 없다. 넓게 펼쳐진 빨간색 물결은 조명과 함께 일렁인다. 해가 떠오를 때 혹은 저물 때 비치는 잔잔한 바다를 연상시킨다. 그 속에 표류하고 있는 항다반사(恒茶飯事)는 수면 위의 감정과는 무관하게 발생하고 가라앉고 떠오른다.
 
바늘과 실은 무언가를 엮어내고 이어준다. 치밀하고 계획적이며 철저한 그것은 김윤경숙과 더없이 잘 어울린다. 김윤경숙의 바느질은 과거와 현재를 매개한다. 작가의 기억 속 바느질은 가족을 위해 할머니가 해주던 것, 어머니와 함께 이불을 꿰매던 추억을 공유하는, 그런 온기가 남아있는 행위다. 바늘로 찔러 상처를 내지만 이내 어우러져 한 선으로 매듭을 짓는 작업은 선긋기의 그것과 상당히 닮아있다. 처음 시작한 바느질 작업이 개인의 기억을 봉제하고 저장하는 데서 시작된 것이라면 최근 작업에서는 작가의 확장된 관심을 볼 수 있다. 이렇듯 2층 전시실은 한 땀 한 땀 양면에 새겨지는 바느질처럼, ‘보이지만 안보이고, 안보이지만 보이는사회 이면의 숨겨진 일들과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다양한 문제들을 작가적 시점과 관점으로 이어가고 있다.
 
3층에 들어서면 꺼지지 않는 314개의 빛들이 명멸하며 자아내는 소리 없는 아우성이 들린다. 2014416. 외마디 비명도 허락하지 않은 비현실적인 일, 믿을 수 없는 일이 발생했다. 비극이었다. 국가적, 아니 전인류적 참극이었다. 사고가 일어난 지 반 여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 잔상은 어디든 누구에게든 어떤 부분, 어떤 방향으로든 환시(幻視)되고 있다. 감히 직접 겪은 일이 아닐지라도 그 감각과 기억은 망각할 수 없는 강제적 의미를 지닌 채 엄존한다. 마치 숨소리를 내고 있는 생자(生者)같다.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어쩔 수 없이 장막 너머로 숨죽여 지켜볼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한자리에 모여 있는 304개의 빛은 순차적으로 회오리를 만들며 숨소리를 내고, 외롭게 떨어져 있는 10개의 빛들도 차분히 각자의 소리를 낸다. 희망이나 구원이 보이지 않는, 죽음을 연상시키는 그 빛은 잔인할 정도로 차가운, 그래서 보는 이로 하여금 입김을 서리게 한다. 너무나 미안하게도, 사이사이 보이는 깜빡거리는 빛들은 희미하지만 분명히 빛을 발하며 불안감에 떨고 있는 우리에게 오히려 안도감을 준다. 그 어떤 색감이나 단어로 형언할 수 없는 잔인하고 절망스러운, 극도의 공포를 느끼는 기억을 김윤경숙은 온 몸으로 받아들였다. 불행히도 그 감당할 수 없는 아픔을 나눌 수는 없지만, 넋을 위로하고 위안하려한다. 죽은 자, 살아남은 자, 지켜보는 자 모두를 위한 일종의 살풀이와 같다. 억념(憶念)하여 지켜주기 위함이다.
 
김윤경숙은 20103, 천안함 침몰사건 발생 당시, 진실을 알지도 못한 채 죽어간 자들의 고통과 죽은 영혼에 대한 안타까움, 그리고 살아남은 자들의 미안함에 그 해 겨우내 아팠던 자신의 육체적 고통을 더한, ‘망상의 침몰’(2012)을 작업한 바 있다. 정치적 논쟁과 해결될 수 없는 해결책들이 난무하였지만 속절없이 지나가는 시간에 기억은 서서히 침몰한다. 김윤경숙은 침몰하는 기억을 개인적 기억으로 다시 담아낸다. 끊임없이 연속하는 현재의 시간으로 환생시킨다. 저장된 기억이 과거라 해도 현재가 기억한다. 지금, 이곳이 있기까지의 아픔, 희생, 죽음은 고스란히 아래에 무겁게 놓여있다. 피할 수 없다. 작더라도, 들리지 않더라도 소리 내어 이야기해야 한다.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예술가의 분명한 역할이기 때문이다.
 
송의영(성곡미술관 선임큐레이터)
 
 
성곡미술관
 
 

 
 
 
성곡미술관
2013내일의작가수상전 하얀비명: 김윤경숙
 
2014-10-17 ~ 2015-01-11
[조호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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