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환선 개인展
제1특별관
2014.10.22 ~ 2014.10.27
제1특별관
2014.10.22 ~ 2014.10.27
정환선-차이의 도입, 낯섦을 발생시키는 그림
박영택(경기대교수, 미술평론)
우리의 삶과 문화는 항상‘차이와 타자성’에 노출되어 있다. 우리가 사회에서 산다는 것은 나와는 다른 타자들과 공생해야 하며 상이한 시스템, 이질적인 사유들과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그러니 살기위해서는 ‘타자가 속한 시스템의 규칙을 배우면서 새로운 주체로 변형되는 삶의 길을 추구’(강신주) 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독선적이며 자아중심적인 세계에 사로잡히거나 폐쇄적이고 관습적인 틀 안에서 머물 수밖에 없다. 예술 역시 자국의 문화나 자아, 주체에 사로잡힌 틀에서 벗어나 타자와의 진정한 교류, 소통, 공생을 도모해야 한다. 그것은 어떻게 가능할까? ‘차이를 가로지르려는 운동’만이 진정으로 자신의 삶을 반성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준다고들 말한다. 니체는 고정적 진리란 없다고 말한다. 그에 의하면 진리의 나타남이란 ‘관점 수립의 문제’이다. 새로운 진리를 바라보는 관점은 기존의 가치와 진리에 대한 비판에서 나오며 그 기존의 가치를 비판에 부치는 것이 바로 ‘힘의 의지’다. 따라서 그는 존재자들이 자기를 부정하지 않고, 다른 존재자를 부정하지도 않고, 다른 존재자와의 차이를 지닌 체 자신의 본성 가운데 머무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그래서 니체를 이은 들뢰즈를 비롯한 탈근대철학자들이 제기한 중요한 문제의식 중 하나는 ‘나’에 집착하는 존재론을 깨는 것이 되었다. 그러니 ‘나’를 알려면 “문밖”의 ‘낯선 기호’(들뢰즈)와 부딪쳐야 한다. 그때 비로소 사유가 발생한다. 새로운 미술이 가능하다. 근대 이후 동양/한국은 서양과의 만남을 통해, 그 타자로 인해 새로운 시스템으로 재편되었다. 이로 인한 갈등과 혼돈, 그리고 그로부터 파생된 다양한 흔적들이 향후 한국 현대미술의 궤적을 수놓았다. 타자가 없었다면 지금의 한국 현대미술은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정환선은 한 화면 안에 이른바 동양화와 서양화를 뒤섞었다. 수묵과 담채로 그려진 부분과 아크릴, 유채로 그려진 것을 한지 위에 올려놓았다. 재료적 차이가 낯섦을 발생시킨다. 또한 수묵의 선염과 발묵으로 표현된 산과 유채로 그려진 도시의 야경이 공존하고 고흐와 마그리트 그림이 한옥의 내, 외부에 펼쳐져 있으며 상이한 기법, 이질적인 요소들이 공존한다. 산수화와 사군자,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해바라기> 그림 등이 나란히 자리하고 있고 동양화 재료와 서양화 재료가 공존하며 정적인 것과 동적인 것, 불변하는 것과 변하는 것이 동거하는 풍경이다. 본래 그림자 없는 동양화 화면에 나비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고 서로 다른 재료, 기법으로 그려진 해바라기가 함께하며, 담장 밖에 펼쳐진 가을날 풍경과는 대조적으로 바닥에는 단심과 지조의 상징인 난초가 불변의 자태를 유지하고 있는 식의 연출이 이루어진다. 한편 정물처럼 자리한 소재들 위로는 눈부시게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이 그려져 있다 그것은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의 은유다. 모든 것들은 시간의 힘에 의해 변화하고 사라진다. 절대적인 것은 없다. 고유한 것, 확고한 것, 단일한 중심은 시간의 부침 속에서 소멸한다. 구름은 자신의 형체를 지니지 않는다. 그것은 있기고 하고 없기도 하다. 단지 차이에 의해서만 구름은 일시적으로 존재한다. 기압과 날씨, 수증기의 양 등에 의해 순간 형성되었다가 점차 사라지는 것이 구름이다. 정환선의 그림은 단지 다른 것들을 병렬한 것이 아니라 상이한 것들이 어우러져 완성되고 있다. 차이를 지닌 것들이 모종의 중심으로 수렴되지 않는 채 그들 각자의 고유성을 유지하면서 존재한다. 그렇게 그려진 그림은 익숙한 장면이고 일상적인 풍경이지만 어딘지‘언캐니’하다. 친근하면서도 낯선 느낌, 그러니까 원래 낯익은 것이지만 동시에 망각된 것이기에 의식에는 낯설게 느껴지는 것이다. 불안한 모호함으로 인해 발생된 ‘낯익은 낯섦’이라고나 할까.
“그들의 대비가 무엇보다 동양과 서양의 차이를 인식케 하는 장치가 되어주길 바랬다. 그렇지만 그보다는 두 화법의 이질적인 성질이 부딪쳐 불안정하고 불편한 분위기를 자아내면, 그들의 그러한 모습이 동ㆍ서양 문화가 혼재된 우리 사회의 참모습이라고 말하고 싶었다.”(작가노트)
정환선의 작품구성은 이질적인 타자의 미술과의 공존과 이로 인해 발생한 변종의 상황에 대한 비판적인 언급과 동시에 불가피한 오늘의 모습을 드러내기 위한 방편이란 생각이다. 작가의 그림은 이질적인 두 문화의 기이한 공존을 보여주면서 동시대 한국의 문화 상황에 대해 발설한다. 급속한 속도전으로 치러낸 한국의 근대화, 서구화, 그리고 그와 연관된 한국 현대미술은 전통의 와해, 서구미술에 대한 오해와 오독, 그리고 자의적으로 접합된 전통과 현대 등으로 점철되어 온 그간의 상황을 고스란히 노정하고 있다. 작가가 드러내고 있는 이 기이하고 이상한, 불편한 동거는 어쩌면 현재 한국 사회, 미술의 초상인지도 모르겠다. 동시에 그것은 어느 하나로 통합되고 억압 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차이의 존중과 공존의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니까 정환선의 작업은 그동안 한국 현대미술이 한결같이 ‘전통의 현대화’란 수식에 저당 잡혀서 서구 현대미술의 형식을 추종하되 이를 동양적이라고 부르고 싶은 내용으로 채워 넣거나 서양화재료를 동양화 기법 안에서 용해시키는 스타일로 나가는 것과는 다른 차원에서 자리한다. 작가는 각자의 차이, 즉 고유성을 강조함으로써, 그 고유성에 의해 각자가 모두 존중 받기를 원한다. 작가는 말하기를 동양과 서양이라는 두 세계의 만남 이후에 가장 중요한 것은 차이와 다름의 강조가 아니라 ‘조화를 위한 조율’이라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두 개의 서로 다른 문화가 공존하는 하나의 그림을 이상하게 마주하고 있다. 사실 서로 다른 것들의 조화란 과연 가능할까, 가능하다면 어떤 것이 그 길이 될 것인가는 무척 곤혹스러운 문제다. 정환선은 우선 시급한 것이 타자들 간의 소통과 만남, 대화라고 말한다. 그것들 각자의 고유한 모습을 차별 없이 평등하게 인정하고 발현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장자에 의하면 자신이 옳다는 판단을 중지해야 우리는 타자의 움직임에 맞게 자신을 조율하는 섬세한 마음을 회복할 할 수 있다고 한다. 그 긴장된 균형, 판단중지의 마음을 일컬어 ‘천균’(天鈞)이라 한다. 그것은 자신의 삶과 문화의 시스템에 길들여진 익숙한 일상의 세계를 벗어나는 길이자 라캉 식으로 말하면 상징적인 것이 지배하는 세계를 벗어나 현실의 세계로 나아가기 위해 불가피하게 요구되는 것이다. 그러니 정환선 작업의 궁극적 의미는 우리가 어떻게 ‘자기중심성으로부터 벗어나 탈중심성을 확보할 수 있느냐’하는 문제이자 진정한 새로움이란 타자와의 마주침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메시지의 전달에 있다고 본다.
[오시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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