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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사랑의 이름으로 쥐여잡은 솔 [음악]

유라가 EP [brush]에 담아 보낸 것

by 이한별 에디터
2026.07.18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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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 가을, 나는 필례산장으로 잠들러 가는 길이었어 구부정한 능선 위로 물보라 치는 장대비가 꼭 만조 날의 짙은 바다 같이 두꺼웠어 빛이란 것도 한줄기도 내려오질 않고 조그마한 개의 눈 속에도 자꾸만 물안개가 껴있었어 우리는 기울고 있었어 시간은 자꾸만 썩어가는데 여길 깨끗하게 닦아낼 솔도 없었어


그때 불쑥 산어귀부터 또아리친 뱀이 거뭇한 음영 사이로 고개를 내밀어 몇 마디를 걸어왔어 네 집은 어차피 벼랑 끝인데 그렇게 많은 짐을 이고 올 이유가 없지 않았냐고 내 가방에는 물어뜯긴 손톱들과 셀 수 없는 후회의 나로 가득차 만원이었거든


새벽까지 구름 밑으로 빗금이 계속 쳐졌어 개는 현을 키듯 울부짖는데 새의 부리만한 입에 약을 욱여넣을 수밖에 없었어 머리 위 꼬마전구가 불현듯 네 몸 위로 스쳐 지나가고 있는데 발 아래에 구덩이가 더 잘 보였어. 그 안에 온갖 껍질들을 넣었어 작은 생채기가 났어 서둘러 매립했어


너는 니가 스몄던 틈에서 찬란이라는 새순이 자라면 꺾어줬고 새빨갛게 굽은 해를, 그리움을 쌀알만 한 사랑의 이름으로 건네어 주기 시작했어 넌 내 집을 쓸어낼 솔을 한가득 보내고 있어 지금


- brush 앨범 소개 글.

 

*


26년 여름, 싱어송라이터 유라가 미니앨범 brush를 보내왔다. 이 여름 하늘 위에 안착해 있는 묵직한 공기와 함께 온 신보는, 공기에 반해 자유로운 뛰놀음을 보여주는 가락들이었다. 그가 앨범이라는 판 안에 눌러담은 이야기들은 너무도 정성스러운 형태여서 가만 듣고 넘기기에는 커져가는 아쉬움을 달랠 길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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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범 소개에 적혀 있는 묵직하고 깊은, 신화 같기도 한 유라만의 이야기를 지표 삼아 앨범 전곡을 무한 반복했다. 그리고 이건 유라의 세계가 귓구멍에 가득차 저절로 써 내려갈 수밖에 없었던 순전히 개인적인 감상, 그리고 약간의 사심이 보태어진 글이다.

 

 


*Track 1 <고삐> (HELP)



 

Still looking for more 고삐

고삐 풀린 것 같이

나를 산채로 담가줘, 유명한 내친구 담보할게

..


아무렇게나 쑤셔박은 농담들

활처럼 굽어, 흐느끼는 노래들

알고싶지 않은 타인의 소문들


- <고삐> 가사 중

 

 

산뜻한 리듬으로 시작하는 음악은 가본 적 없는 곳으로 모험을 떠나는 기분을 들게 한다. 마치 고삐가 풀린 것처럼 뒷일 따윈 고려하지 않고 앞으로 직진. 그리고 나타나는 여러 갈래 길에서 이리저리 헤매지만, 그 헤맴조차 선택한 것이니 후회는 없다. 도움이라곤 하나도 안되는 타인의 말소리와 나와 무관한 이야기들. 그런 것들로 둘러싸인 세상에서 벗어날 방법은 나의 고삐를 스스로 풀어버리는 것. 의식하거나 말거나 했던 것들로부터 은근히 신경 쓰며 자신을 옥죄어왔던 부스러기에서 벗어나면 집중할 건 오로지 나뿐이다. 그제야 내 눈동자에 비친 빛이 보인다. 자, 교묘한 술수가 위축을 유발하는 이 세상에서 더 이상 고삐 풀지 않고는 못 배길 테니 다음엔 어떤 선택으로 만든 덫에 걸려볼까?

 

 

 

*Track 2 <누군가 먼저 뜬 자리> (EMPTY SEAT)


 

 

누군가 먼저 뜬자리

밤새 쌓아둔 허기들

The world is too full of colors

It's not the light I seek


누군가 헤메였던 ,거기 그 자리에서

얼마나 많은 우수를 , 우수를 건지나


- <누군가 먼저 뜬 자리> 가사 중

 

 

본격적으로 시작된 여정. 가다 보니 낯설지 않은 발자국이 마구 찍혀 꺼져버린 길이 있다. 자세히 들여 보니 자국의 시초는 꽤 되었으나 붙어있는 온기는 직전의 따뜻함이 아직 꺼지지 않았다. 누군가 존재했던 게 분명해. 막 시작된 길에서 나와 비슷한 헤맴을 발견했을 때의 안도감은 그에겐 미안하지만, 심히 큰 위로가 된다. 그가 남기고 간 허기와 우수는 나로 하여금 털썩 주저앉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힘을 준다지. 마치 이 노래의 웅장한 전주처럼. 예리하지만 당차게.

 

 


*Track 3 <목욕탕> (BATHTUB)


 

 

고요히도 떠있던 너의 미련들은 욕실에 두고 오렴

나의 팔에 손에, 목욕탕에 다 게워 내려가게


Born to roll, but barely alive

Born to melt, but never been alive


기꺼이 문질러 댄다 기꺼이 문질러댄다

차장 위에 얼음들까지 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얼기설기 망쳐두고

침몰하고


- <목욕탕> 가사 중

 

 

가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물속에 담그고 싶을 때가 있다. 머리카락 한 올마저도, 삐져나오는 발가락까지도 전부. 욕조에 몸을 담근다든지 장대 같은 빗물을 맞는다든지 머리를 굴려 간단한 해소 법을 찾아보지만, 결국 어렸을 적 추억에 이끌려 목욕탕에 가 본격적으로 몸을 분리하고픈 욕구로 이어지기도 한다. 엄마와의 추억을 벗 삼아 찾아간 목욕탕에서 피로해진 몸을 물에 맡겨 노곤해지고 나면 한결 개운해지는데, 그건 처음 목욕탕을 가던 시절부터 덕지덕지 축적된 찐득이 같은 미련과 더러움이 게워 내려지기 때문이려나. 살아내며 받아내는 것들을 제대로 흘려버리지 않으면 때가 되기에, 일부러 밀어주지 않으면 기어코 피부가 되기도 한다. 이젠 어렵사리 목욕탕을 찾지 않아도 이 노래가 나만의 욕조가, 비누가 되어주겠지. 또 이 여름 빗물에 몸을 맡기기도 하며 곳곳에 나만의 하수 처리장을 심어놓으려고.

 

 


*Track 4 <2510 기미> (MELASMA)



 

기미가 날것처럼 햇빛을 마셔줘

미친 목소리로 짖어줘

너무 심하게 말라버린 몸

The hardest thing to say The hardest 안녕


도처에 아름다운 건 전부 너로 변했고

거긴 어때? No more sorrow, right 어?

Hope you've been alright


- <2510 기미> 가사 중

 

 

햇빛. 아, 빨간 해, 노란 해, 어쩌면 하얀색일 수도. 타오르는 해, 굽어가는 해. 본인을 소멸하며 내어주길 서슴지 않는 해. 그런 해에 고마워하며 있는 힘껏 들이마시자. 기미가 나도 상관없어. 나를 탁하게 만들었던 것들로부터 안녕(bye). 나를 저 아래부터 은은한 빛으로 감싸줄 햇빛이여 안녕(hi). 이 빛으로 죽어가던 나를 되살릴 수 있다면 힘껏 숨을 들이켤래. 정면으로 해를 마주할래. 마침 해가 길어진 여름이야. 그게 내가 여름을 사랑하는 이유야. 되게 보잘 것 있는 거지. 

 

 


*Track 5 <고양이의 편안한 숙면을 위한 야상곡 제1번> (A GOOD NIGHT’S SLEEP FOR CATS : NOCTURNE, OP.1 NO.1)


 

나, 고양이일 수도 있나? 고양이인 게 분명해. 고양이어도 좋아. 이런 야상곡으로 평생 보장된 숙면이라니. 들어보지 않은 이에겐 사심으로 가득 찬 주접으로 들리려니, 들어보지 않았으면 말을 얹지 말아. 요즘 이 곡은 숙면 그 외에도 집중이 필요할 때, 가사 있는 음악을 귀가 견디기 힘들 때, 적당한 박자가 분위기를 흐리게 하지 않을 때 등 언제고 몇 번이고 찾는다. 딱 이 정도의 편안함이 좋아. 억지로 들뜨지도 과하게 우울해지지도 않아. 유라는 인간인가 고양이인가. 정말로 물어보고 싶다. 어느 쪽이든 아마 고양이와 인간을 둘 다 사랑해 마지않아 누구보다 잘 지내고 싶어 보인다.

 

*

 

보이는 일기장 정도로 생각하고 쓴 감상이 막상 적고 보니 더욱 정연하지 못한 것이라 이래도 되나 싶다. 하지만 그렇기에 아주 내밀하게 정리된 무질서한 마음이다. 유라의 음악을 겉으로 핥기만 했다면 이 정도의 마음치는 내비치지도 못했을 거다. 그가 이 앨범을 준비하며, 그리고 삶 전체를 살아내며 얻은 조각들이 곱게 쏟아져 포장된 걸 듣고 있자면 그저 감사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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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갈아줘서 고맙습니다. 당신이 사포로 갈 듯 애정을 쏟아주었기에 누군가는 듣는 것만으로 매끈하게 광이 날 수 있었습니다. 마치 목욕탕에서 나온 뒤 한껏 매끈해져 은은한 광이 오른 나 자신이 어떤 치장을 했을 때보다 아름다워 보이는 것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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