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의미를 찾고 그것을 실현하는 일. 말로만 들으면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지만, 막상 내 삶에 적용하려 들면 그것만큼 어려운 일이 없다.
몇 년 전, 도서관에서 빅터 플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읽었다.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기며, 나는 처음으로 '소자하고 싶은 책'이란 무엇인지 깨달았다. 그 책은 나에게 인간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 존재인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그 나약함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그로부터 또 몇 년이 흘렀지만, 나는 여전히 사소한 분노와 불안, 그리고 내 안에 오래도록 자리잡고 있는 결핍에 쉽게 흔들리고 있다. 나는 그 이유를 <죽음의 수용소 이후>에서 찾고자 했고, 감사하게도 책을 통해 지금껏 인간의 삶을 대하는 나의 태도를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삶의 의미를 찾는다는 건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서는 내가 좋아하는 것과 하고자 하는 일에 확신과 믿음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확신과 믿음보다는 불안과 걱정을 안고 살아간다.
나 역시 그랬고, 그것이 인간의 숙명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앞으로 나아가고 싶지만 무엇이 옳은 방향인지 알 수 없고, 내가 선택한 이 길이 맞는지 끊임없이 의심하는 것은 당연한 과정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불안이나 걱정이라는 감정을 깊이 들여다보기보다는, 그저 스트레스로 여기며 빨리 해소하려고만 했다.
그러나 책의 저자는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서는 삶이 던지는 질문에 계속해서 답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답은 거창한 목표나 완벽한 확신으로부터 찾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마주한 상황과 그에 따른 책임을 통해 조금씩 정의해 나가야된다고 말한다.
삶의 의미를 찾는다는 것은 모든 고민과 불안을 해결한 뒤 나아가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답을 알 수 없는 순간에도 내가 선택한 삶을 책임지고, 그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찾아가는 과정에 가깝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앞으로 마주할 감정들을 어떠한 태도로 받아들여야할지 깊이 고민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내 삶의 중심을 잡는 건 내가 아닌 타인이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개인이고, 특히 지금 시대는 나를 지키는 것이 중요한 사회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거리를 두고, 손해 보지 않기 위해 나를 먼저 생각하는 것이 지금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하지만 빅터 프랭클은 인간은 자신을 들여다볼 때가 아니라, 자신이 아닌 다른 무언가를 향할 때 비로소 나를 알 수 있다고 말한다. 즉,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마음을 쓰고, 내가 맡은 일에 책임을 다하고,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그 과정 자체가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이 부분을 읽고, 어릴 때부터 들었던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말의 의미를 이제야 조금 이해하게 된 것 같았다. 그리고 나를 지키기 위해 했던 선택들이 오히려 나에게 나를 더 숨기는 행위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아닌 타인을 가치 있는 존재로 생각하는 것이 어쩌면 내 삶의 중심을 잡는 가장 현명하고 올바른 방법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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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와 <죽음의 수용소 이후>에서 말하는 삶은 어쩌면 너무도 단순하다. 주어진 일에 몰입하고, 타인을 사랑하는 것. 말로만 들으면 이토록 당여한 것들이 왜 항상 어렵게만 느껴질까.
점차 개인주의가 심화되는 이 시대에 길을 잃은 많은 현대인들이 이 책을 통해 각자의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우리 모두를 위한 삶의 가치를 다시금 고민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