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평생 '남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살아간다. 회사에서는 상사와 동료의 말을, 지인이나 친구들과 있을 때는 그들의 근황을, 가족과는 오늘 각자가 보낸 하루를 듣는다. 정작 자기 안에서 올라오는 목소리는 쉽게 지나치기 일쑤다. 심각한 문제조차도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며 덮어두곤 한다. 인간은 자기 자신과 가장 오래 살지만, 가장 늦게 자신을 이해하는 존재다.
조디 포스터 주연의 〈파리의 사생활〉은 이 아이러니를 담은 영화다. 정신분석가가 내담자의 죽음을 추적하는 심리 미스터리로 시작하지만, 결국 영화가 파헤치는 것은 사건의 진실이 아니라 주인공 자신도 몰랐던 자신의 내면이다.
조디 포스터가 연기한 '릴리안 스타이너' 박사는 파리에서 개인 상담실을 운영하는 미국인 정신분석가다. 그녀의 일은 환자의 무의식을 읽어내고 말 속에 숨겨진 감정을 분석하는 것이다. 처음 등장하는 릴리안은 조디 포스터가 오랫동안 연기해 온 인물들의 전형처럼 보인다. 침착하고 냉철한 전문가이지만 살짝 방어적이고 예민하다.
그러나 오랫동안 상담해 온 내담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여기에 더해 다른 내담자가 그녀를 찾아와, 그녀에게 오래 금연 상담을 받았지만 아무 효과도 없었는데 최면치료사를 단 한 번 찾아간 뒤 담배를 끊었다며 환불을 요구한다. 자신의 전문성이 흔들리는 사건들이 연이어 릴리안에게 일어난다.
이후 릴리안은 목숨을 끊은 내담자의 가족들과 대면하며, 자살이 아닌 타살일 가능성을 제기하고 전 남편과 함께 사건의 진실을 파헤친다. 하지만 영화가 전개될수록 어쩐지 스릴러와는 거리가 멀어진다. 심지어 누군가 릴리안의 집에 침입해 상담 녹음을 훔쳐가고, 약이 바뀌었을 가능성이 제기되는 등 온갖 의혹이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영화의 장르는 코미디로 흘러간다.
사실 이 영화는 릴리안이 파헤치는 진실이 아니라, 릴리안이 진실을 추구하는 이유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영화 초반 죽은 환자의 남편에게 "당신은 자신의 죄책감을 나에게 투사하고 있다"고 말하지만, 정작 그렇게 행동하는 사람은 릴리안 자신이다. 그녀야말로 내담자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했고, 사건을 '제대로' 해결하면 자신의 죄책감도 해결될 것이라 무의식중에 믿으며 엉뚱한 짓을 벌이기에 이른다.
이 이유를 코믹하게 보여주는 장치가 '전생 체험'이다.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릴리안은 문득 최면치료사를 찾아가고, 그곳에서 전생 체험 같은 꿈을 꾼다. 꿈속에서 그녀와 자살한 내담자는 파리 오케스트라 현악부에서 함께 연주하던 연인이었고, 현재 자신과 서먹한 아들은 히틀러의 민병대원으로 등장한다. 반면 릴리안 자신의 정신분석가는 전생 체험보다 훨씬 설득력 있게 그녀를 분석한다. 그는 릴리안의 어머니에 대한 아픈 기억을 꺼내지만, 릴리안은 더 이상 들으려 하지 않고 점점 전생 체험에 집착한다.
누구보다 이성적인 정신분석가가 가장 비합리적인 설명에 기대는 모습은 우스꽝스럽지만, 동시에 인간적이다. 사람은 자신의 고통을 설명해줄 이야기라면 허황된다 할지라도 붙잡고 싶기 때문이다.
영화에는 계단과 거울, 나선형 구조가 반복해서 화면을 채운다. 히치콕을 연상시키는 연출은 관객마저 방향을 잃게 만들고, 토킹 헤즈의 'Psycho Killer'는 영화 전체에 기묘한 리듬을 더한다. 처음에는 어울리지 않는 선곡처럼 느껴지지만, 이야기가 끝날 무렵에는 이 엉뚱한 음악이 릴리안의 혼란스러운 내면과 절묘하게 맞물린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릴리안이 사건을 파헤칠 수록 마주하는 것은 오직 하나다. 오랜 시간 담당 의사였음에도 자신은 그녀를 거의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녀는 환자의 삶을 이해했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증상을 분석하고 해석하는 데 더 익숙했다. 그 순간 그녀는 자신이 놓치고 있던 것이 무엇인지 비로소 깨닫는다.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정답을 찾아주는 일이 아니라, 그 사람의 이야기를 끝까지 함께 들어주는 일이라는 사실이다.
릴리안은 상담을 녹음하고 나중에 듣겠다는 마음을 품고 있기도 했다. 기록을 남기려는 습관이라고는 하지만, 지금 이 순간보다 ‘언젠가’를 우선하는 태도이기도 하다. 그녀는 내담자의 이야기뿐 아니라 자신의 마음 역시 늘 나중으로 미뤄왔을지 모른다. 또한 영화 초반 시력을 검사받는 장면이 나오는데, 릴리안이 정말로 바라봐야 하는 대상은 자기 자신이라는 은유일지도 모르겠다.
릴리안이 타인의 이야기를 듣지 못했던 이유는 사실 누구보다도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듣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사건을 추적하며 끊임없이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려 하지만, 타인과 연결되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 자신과 연결되어야 했다.
〈파리의 사생활〉은 장르가 혼합된 묘한 영화다. 코미디와 추리, 로맨스를 한꺼번에 품고 있고, 전생 체험과 정신분석이 더해져 다소 산만해지는 순간도 많다. 그럼에도 이 영화에 공감하게 되는 이유는 인간을 바라보는 시선 덕분이다. 사람은 미스터리한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 계속 질문하게 된다.
우리는 타인을 얼마나 믿을 수 있는가?
우리는 자기 자신을 얼마나 믿을 수 있는가?
그리고 우리를 둘러싼 설명할 수 없는 세계를 어디까지 믿어야 하는가?
여기에 자기중심성이 들어서게 두는 대신 ‘함께 찾아보자’는 답을 내놓을 때 진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