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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끝내 다 알 수 없는 사람을 듣는다는 것 - 파리의 사생활

미스터리 끝에서 비로소 시작되는 이해에 대하여

by 박지영 에디터
2026.07.14 13:35

 

 

〈파리의 사생활〉의 릴리안(조디 포스터)은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일을 하는 정신과 의사다. 오랜 시간 환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 말속에서 감정과 상처를 읽어내며 치료를 이어왔다. 그녀에게 누군가의 말을 듣는다는 것은 너무나 익숙한 일이다. 어쩌면 그 익숙함 때문에 듣는다는 행위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또 한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이 얼마나 불완전한 일인지 잊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9년 동안 상담해 온 환자 폴라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기 전까지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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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던 폴라에게 연락을 취한 릴리안은 그녀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는 사실을 전해 듣는다. 장례식을 다녀온 뒤부터 릴리안에게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이상한 증상이 찾아온다. 특별한 순간도 아닌데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안과를 찾아가도, 병원을 찾아도 원인은 발견되지 않는다. 몸은 멀쩡하지만, 감정은 무너져 내린다. 설명할 수 없는 눈물은 어쩌면 9년 동안 곁에 있었던 사람의 죽음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죄책감이 몸 밖으로 흘러나오는 것처럼 보인다.


원인을 찾지 못하던 릴리안은 문득 자신을 믿고 오랫동안 상담을 받아왔던 한 환자를 떠올린다. 그녀는 릴리안의 상담으로도 끊지 못했던 담배를, 최면술사를 만난 뒤 단번에 끊었다며, 오히려 "왜 당신은 나를 바꾸지 못했느냐"고 되묻던 사람이었다. 결국 릴리안은 그 최면술사를 찾아가고, 그 만남을 계기로 자신이 남겨두었던 폴라의 흔적들을 다시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상담 기록을 되짚고, 폴라의 목소리가 담긴 녹음을 다시 들으며 그녀의 죽음을 직접 추적하기로 결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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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단순한 죄책감처럼 보였던 감정은 점점 집착에 가까워진다. 최면 속에서 본 이미지와 폴라가 생전에 남긴 말들은 하나의 방향을 가리키는 것처럼 보이고, 릴리안은 그 조각들을 맞춰가며 사건을 스스로 해석하기 시작한다. 그녀는 폴라의 전남편을 의심하고 그의 뒤를 미행하며, 자신이 보고 느낀 것들이 모두 하나의 진실로 이어질 것이라 확신한다. 그렇게 릴리안은 자신이 만든 이야기 속에서 점점 더 깊이 들어간다. 그러나 영화는 그 확신을 끝내 배신한다.


릴리안이 추적 끝에 마주하는 것은 명쾌한 범인이 아니라, 9년 동안 상담을 했음에도 한 번도 알지 못했던 폴라의 또 다른 얼굴이다. 그녀가 들었다고 믿었던 이야기 바깥에는 전혀 다른 삶이 존재하고 있었으며, 릴리안은 그제야 의사 앞이라고 해서 모든 환자가 자신의 진실을, 있는 그대로 털어놓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보여주고 싶은 만큼만 자신을 드러낸다. 아무리 오랜 시간을 함께했다고 해도 타인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 릴리안은 사건을 해결하기보다, 자신이 끝내 이해하지 못했던 한 사람을 뒤늦게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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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이 과정을 단순히 미스터리의 반전으로 소비하지 않는다. 폴라를 이해하려던 실패는 자연스럽게 릴리안 자신의 삶으로 시선을 돌리게 만든다. 특히 아들과의 관계가 그렇다. 바쁘다는 핑계로 손자를 제대로 안아본 적도 없고, 거짓말을 하며 얼른 집에 가려고 한다. 하지만 릴리안은 자신이 환자들의 이야기는 오래 들어왔지만, 가장 가까운 사람들의 마음은 제대로 듣지 못했다는 사실을 마주한다. 그래서 폴라를 이해하지 못한 경험은 결국 자신이 가족에게도 같은 방식으로 살아왔음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안다고 믿는 것과 실제로 아는 것 사이에는 생각보다 훨씬 큰 간극이 있었고, 릴리안은 그 틈을 오랫동안 보지 않으려 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영화가 끝날 무렵 릴리안의 상담실은 조금 달라져 있다. 공간의 분위기도 이전과는 다르고, 상담실을 지키던 녹음기도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이 변화는 사건이 해결됐다는 표시라기보다, 릴리안이 이제는 기록보다 자신의 귀와 마음으로 사람을 듣기 시작했다는 작은 변화처럼 느껴진다. 폴라를 살아 있을 때 끝내 제대로 듣지 못했다는 죄책감은, 죽은 뒤에야 그녀를 온전히 들으려는 사람으로 릴리안을 바꾸어 놓는다. 누군가의 말을 듣는다는 것은 단순히 내용을 기억하는 일이 아니라, 그 사람이 끝내 말하지 못한 침묵까지 받아들이는 일이라는 것을 영화는 조용히 보여준다.


영화를 보고 나니 자연스럽게 내 주변의 관계들도 돌아보게 됐다. 나는 사람을 얼마나 잘 알고 있다고 믿으며 살아왔을까. 상대를 충분히 듣기도 전에 '이 사람은 이런 사람일 것'이라고 쉽게 결론 내린 적은 없었을까. 우리는 서로를 안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각자가 보여준 일부만을 붙잡고 상대를 완성해 버리는 것은 아닐까.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끝내 닿지 못하는 영역이 존재하고, 우리는 그 빈틈을 이해가 아니라 상상으로 채우며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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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베카 즐로토프스키 감독이 연출하고 조디 포스터, 다니엘 오테유, 마티유 아말릭, 비르지니 에피라가 함께한 〈파리의 사생활〉은 겉으로는 미스터리를 좇는 추적극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실은 한 사람이 '듣는다'라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배우는 이야기에 가깝다. 사건의 진실을 밝혀내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그동안 사람을 안다고 믿었던 방식이 얼마나 쉽게 오해될 수 있는지를 깨닫는 과정이다.


제78회 칸영화제 비경쟁 부문에 초청돼 10분간 기립박수를 받았다는 사실보다, 조디 포스터가 커리어 처음으로 프랑스어로만 연기했다는 사실보다 내게 오래 남은 것은 릴리안의 변화였다. 평생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일을 해왔던 그녀는, 폴라를 잃고 나서야 비로소 사람을 듣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변화는 나에게도 같은 질문을 남겼다. 사람을 제대로 듣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은 그의 모든 것을 아는 일이 아니라, 끝내 이해하지 못할 부분이 있다는 사실까지도 받아들이며 계속 귀 기울이는 일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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