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머리였던가?'는 30분 남짓한 러닝타임의 짧은 연극이다. 보통 60분 이상 이어지는 다른 연극 공연과 달리, 이 작품은 잠시 멈춰 서서 보고 갈 수 있을 정도로 짧은 러닝타임을 택했다. 형식 역시 낭독 공연으로, 매일 다른 캐스팅의 배우들이 공연하는 간결한 방식을 취하고 있다.
초연 당시에는 강동, 혜화 등 다양한 카페를 오가며 공연이 이루어졌으며, 이번에는 성수의 길가에 있는 작은 복합문화공간에서 공연되었다. 누구나 일상에서 쉽게 마주칠 수 있는 공간에서 잠시 보고 갈 수 있는 공연이라는 점이 '대머리였던가?'의 가장 큰 특징이다.
이야기는 유바냐가 강으로 투신하는 사람을 목격하며 시작한다. 그는 바로 경찰에 신고하지만, 그 사람의 머리가 어땠는지, 혹시 다른 물체를 사람으로 오해한 것은 아닌지조차 확신할 수 없다. 사건의 진행 상황을 알기 위해 유바냐는 계속해서 경찰서를 찾고, 담당 형사 손마츠코는 아직 아무것도 단정할 수 없다고 답한다.
두 사람은 그 짧은 순간을 계속해서 떠올리며, 정말 대머리였을지도 모르는 그 사람이 강으로 떨어진 것이 맞는지 여러 가능성을 되짚어 본다.

연극 중간에 등장하는 F1 경기는 단순히 빠르게 달리는 스포츠가 아니라, 몇 단계 앞을 미리 내다보며 가장 효율적인 경로를 선택해야 하는 경기로 설명된다. 선수는 미리 몇 단계 앞을 내다보며 다음에 나아갈 방향을 정한다. 투신 사건을 회상하며 유바냐가 던지는 "대머리였던가?"라는 질문처럼, 연극은 끊임없이 과거를 되짚는다. 인물들은 하나의 장면을 반복해서 떠올리며 기억을 더듬고, 그 시선은 자연스레 각자의 과거로 향하기도 한다. 작품의 인물들 역시 투신 사건의 진실을 찾아 몇 단계 앞을 바라보다가, 오히려 돌고 돌아 자신의 과거를 만나게 되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각자의 독특한 이름의 의미가 밝혀진다. 부모가 어떤 책을 감명 깊게 읽은 나머지 그 책의 주인공 이름을 아이에게도 지어준 유바냐의 이야기라든가,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이라는 영화를 감명 깊게 보고 자신 역시 주인공의 이름으로 개명한 손마츠코까지. 사건을 계기로 서로를 알게 된 두 사람은 자신의 이름이 정해진 순간 역시 되짚어 본다. 이어 두 사람의 시선은 또 다른 투신 사건의 두 고등학생에게 향한다. 왜 그 학생들이 죽음을 선택했는지, 그 마음을 상상해 보지만, 마치 그때 다리에서 뛰어내린 사람이 누구였는지 알 수 없는 것처럼 그 이유 역시 끝내 알 수 없다. 앞으로 그 학생들의 가족은 어떻게 살아가게 될지, 그 학생들이 살아 있었다면 어떤 삶을 살았을지 한 단계 앞의 미래를 상상해 보기도 하지만, 그 질문에도 답은 나오지 않는다.
처음 유바냐가 목격한 사건은 끝내 해결되지 않는다. 그때 유바냐가 본 것이 정말 대머리의 사람이 맞았는지 끝내 알 수 없다. 그리고 유바냐의 이름이 정말 '바냐 아저씨'에서 비롯된 것인지, 손마츠코는 영화의 어떤 부분이 마음에 들어 그 이름을 선택했는지 역시 모두 불확실한 채로 남는다. 잠시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모였을 뿐, 이들의 삶에는 큰 변화가 없다. 그때 손마츠코가 처음으로 유바냐에게 무슨 일을 하냐고 묻는다.
거창한 결론도, 극적인 반전도 없다. 잠시 멈춰 서서 한순간을 돌아보던 인물들은 다시 자신의 삶을 향해 나아간다.

작품의 30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 그리고 카페처럼 일상과 가까운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공연은 관객에게도 잠시 멈춰 서서 자신의 삶을 돌아볼 시간을 마련해 준다. '바냐 아저씨'와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처럼, 연극을 비롯해 대부분의 예술은 감상자가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어떤 깨달음을 얻도록 만든다.
반면 '대머리였던가?'는 삶의 정답을 제시하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잠시 멈춰 섰다가 다시 앞으로 걸어가는 모습을 그린다. 희곡과 영화 속 두 인물도, 그리고 그 이름을 따온 유바냐와 손마츠코 역시 삶의 답을 쉽게 찾지 못하는 인물들이다. 그러나 원작 속 인물들이 하나의 극적인 결말에 도달하는 것과 달리, 두 사람은 다시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간다. 그럼에도 중요한 것은 잠시 멈춰 서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본 뒤, 다시 다음 발걸음을 내딛는 일이다.
결국 이 작품은 우리에게 묻는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돌아보아야 하는가. 그리고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명확한 답을 찾는 일이 아니라 다시 걸어갈 용기를 얻는 일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