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무대 위에서 ‘액터 뮤지션(Actor-Musician)’은 여전히 대담한 도전이다. 연기와 노래, 무용을 모두 소화해야 하는 배우에게 ‘실황 악기 연주’까지 요구하는 방식은, 그 자체로 높은 밀도의 긴장감을 전제한다.
뮤지컬 <파가니니>는 이 도전을 작품의 핵심 정체성으로 내세운다. 역사상 가장 신비롭고 위대한 바이올리니스트로, ‘악마의 재능’이라 불렸던 니콜로 파가니니의 삶을 실제 연주가 가능한 배우의 몸을 통해 구현한다. 이 과감한 시도만으로도 관객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하다.
<파가니니>는 예술가의 삶을 무대 위로 소환하는 데 강점을 보여온 HJ컬쳐의 대표 레퍼토리다. 트라이아웃을 거쳐 완성도를 높여온 이 작품은 이번 시즌,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 무대에 오르며 규모와 밀도를 한층 확장했다.
뮤지컬 <파가니니>는 1840년 파가니니가 숨을 거둔 직후, 교회가 그의 시신 매장을 거부했던 실제 사건에서 출발한다. 종교계는 그가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 종교를 모독했다'는 오명을 씌웠고, 아들 '아킬레'는 아버지의 명예와 영원한 안식을 위해 외롭고 긴 법정 싸움을 시작한다.
극은 이 아킬레의 여정을 나침반 삼아 19세기 유럽을 뒤흔든 비르투오소(Virtuoso)의 화려한 단면 대신, 편견과 시기 속에 갇혀 있던 인간 파가니니의 고독한 내면을 따라간다.
이 서사의 설득력은 액터 뮤지션의 존재감에서 비롯된다. 초연부터 작품의 상징으로 자리 잡은 KoN(콘)은 뛰어난 바이올린 실력과 내공 있는 연기로 무대를 장악한다. 파가니니 역으로만 이미 100회 이상의 공연을 소화해 낸 그는, 인물과 동화된 듯한 압도적인 몰입감을 만들어낸다.
무대 위에서 실시간으로 펼쳐지는 바이올린 연주는 단순한 볼거리를 넘어, 캐릭터의 생명력을 완성하는 핵심 장치로 기능한다.
뮤지컬 <파가니니>는 액터 뮤지션이라는 형식을 효과적으로 활용한다. 관객이 배우를 넘어 '인간 파가니니'를 마주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압도적인 연주력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점을 정확히 짚는다.
이러한 장르적 쾌감을 극대화한 라이브 밴드의 전면 배치 역시 인상적이다. 밴드를 무대 뒤로 숨기지 않고 드러내면서 시각적 에너지를 더했으며, 정통 클래식 선율 위에 드럼과 건반, 기타의 강렬한 사운드를 얹은 '락 클래식' 편곡은 강한 카타르시스를 만든다. 이러한 조화는 작곡과 연출을 동시에 맡은 김은영 연출가의 감각에서 비롯되었다.
특히 파가니니의 독주 장면에서 정교한 조명 연출만으로 무대를 미니멀하게 비워낸 연출은 효과적이다. 불필요한 시각 요소를 최소화함으로써 관객의 감각을 오직 바이올린 소리에 집중시키며, 극도의 몰입을 이끌어낸다.
다만 서사적인 측면에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극은 파가니니라는 예술가의 전방위적인 삶을 다층적으로 조망하기보다, 그의 '악마적인 재능'과 그로 인한 비극에 초점을 맞춘다. 인물이 가진 천재성에 서사가 다소 종속되면서 그 이면에 존재하는 평범한 인간으로서의 고뇌를 충분히 들여다볼 기회는 제한된다.
이 한계는 아이러니하게도 공연의 강점과 맞닿아 있다. 관객 역시 압도적인 연주에 몰입한 나머지, 인물의 삶보다 음악 자체에 감탄하게 된다. 결국 우리는 파가니니를 이해하기보다, 그를 ‘목격’하는 데 그치게 된다.
그럼에도 이 아쉬움을 상쇄하는 것은 뮤지컬이라는 장르만이 할 수 있는 '음악적 기교'다. 극 후반부의 대미를 장식하는 파가니니의 ‘라 캄파넬라’ 7분 독주 장면은 그야말로 뮤지컬 <파가니니>만의 백미다. 신들린 듯 활을 켜는 파가니니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동시대 사람들이 왜 그를 '악마'라며 두려워했는지 자연스럽게 납득하게 된다. 이 생생한 현장감과 전율은 오직 극장에서만 가능한 경험이다.
올여름 전율의 무대를 선사할 뮤지컬 <파가니니>는 6월 20일부터 8월 30일까지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공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