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급한 마음은 때때로 잘못된 선택을 불러일으킨다. 평소라면 거들떠보지도 않을 것들이 소중하고 대단해 보일 수도 있다. 판단력을 흐리게 만드는 이 나쁘고도 슬픈 마음은, 무엇인가를 간절히 원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뿌리를 내린다.
대한민국의 취준생으로서 여유를 가지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반복되는 구직 활동에 지친 어느 날은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나를 받아주는 회사에 일단 들어가자, 어떤 기업이든 아무 상관이 없다… 와 같은 그런 생각들. 블랙 기업이든 말든 일단은 나를 받아주는 회사가 최고라는 거다.
블랙 기업은 불법과 편법을 통해 비상식적이고 가혹한 노동을 강요하는 ‘악덕’ 기업이다. 사람이 할 수 없는 기괴한 업무를 지시하고, 해서는 안 되는 흉악한 일을 벌이는 그런 회사들. 이런 블랙 기업들이 현실에 없음에 감사하며, 재미있는 상상을 하나 해보자.
돌아갈 곳이 없는 ‘장기 취준생’이 되었다고 가정해 보는 것이다. 궁지에 몰린 당신은 잘못된 선택을 한다. 스트레스나 정신건강 따위가 아니라 ‘목숨’을 걸어야 하는 다섯 곳의 블랙 기업으로 발걸음하는 것이다. 우열을 가릴 수 없는 다섯 곳의 악덕 기업 중, 당신은 어느 곳을 선택할 것인가?
바이오하자드 <엄브렐라>
첫 번째 후보는 창작물 속 ‘블랙 기업’의 대명사, 바이오 하자드 시리즈의 엄브렐라! 표면상으로는 성공한 제약회사지만, 사실은 바이러스와 생체 병기를 개발하고 거래하는 뒷세계의 ‘큰 손’이다. 악명에 걸맞은 사원들도 잔뜩 준비되어 있다. 엄브렐라는 윤리를 저버린 매드 사이언티스트는 물론, 일 처리를 위한 군사력까지 가진 막강한 악덕 기업이다.
제약회사라는 탈을 쓰고 생물병기를 만들던 엄브렐라 연구소에서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유출되고, 감염을 막지 못한 정부는 결국 도시를 파괴하는 결정을 내린다. 이 과정에서 엄브렐라의 사원이 된 당신은 피해를 수습하고 처리하는 것이 아닌 연구 자료만을 찾아내는 괴물로 변해야 한다.
어쩌면 엄브렐라를 선택한 이상, 당신 안에 있던 양심과 윤리는 자취를 감췄을지도 모른다.
서브노티카 <알테라 주식회사>
다음은 돈에 미친 회사다. 극단적 자본주의의 상징이 되는 알테라 주식회사는, 은하계의 9%를 점유하고 있는 범우주적 대기업이다. 어떻게 이런 대기업이 되었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심한 착취를 일삼는 알테라 주식회사는, 생존을 위한 모든 액션에 자비 없는 가격표를 매겨버린다. 그게 설령 충직한 직원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우주선 추락으로 인해 알테라 주식회사 소유의 한 행성에 추락하게 된 주인공은, 그곳이 알테라 주식회사의 땅이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돈을 청구 당하고, 결국에는 1조 크레딧이 넘는 빚쟁이 신세가 된다. 앞서 이야기한 또 다른 블랙 기업 ‘엄브렐라’가 생체 병기 개발에 미친 매드사이언티스트 집단이라면, ‘알테라 주식회사’는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혹하디 냉혹한 기업 그 자체라는 것이다.
정상이 아닌 것들 사이에 섞여 나조차도 비정상이 되는 것, 죽을 때까지 뼈 빠지게 빚만 갚는 것. 정말이지 거들떠보기도 싫은 선택지인 것이다.
리썰컴퍼니 <더 컴퍼니>
인디 게임계의 ‘진짜 블랙 기업’을 말하자면 이 회사가 빠질 수 없다. 바로 리썰컴퍼니의 이름 없는 회사, ‘더 컴퍼니’다. 이 회사는 ‘알테라 주식회사’와 같이 사람을 단순 소모품 취급해 버리는 못된 회사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알테라 주식회사보다 ‘쉬운’ 운영 방침을 택한다는 것이다. 직원을 노예처럼 부리며 효용가치를 뽑는 알테라 주식회사와는 달리, 더 컴퍼니는 할당량을 채우지 못한 직원을 ‘처리’해 버린다. 말 그대로 죽여버린다는 것이다.
죽음보다 더 무서운 것은 따로 있다. ‘더 컴퍼니’를 직역하면 그저 ‘회사’가 된다. 그 이름에서 느껴지듯, 이 회사의 직원들은 정보로부터 차단되어 있다. 직원들은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 이 회사는 어떤 회사인지, 언제 끝이 나는지조차 모르는 상태로 탐사에 차출된다. 말 그대로 무의 상태에서 시작하는 회사 생활, 정말 녹록지 않으리라고 예상된다.
여피사이코 <신트라코프>
속단은 금물! 귀여운 도트 그래픽 아래에 숨겨진 악덕 기업 중의 악덕 기업, 바로 신트라코프다. 입사만 해도 무려 A급 시민권을 제공하는 세계 제일의 회사처럼 보이나, 그 실상은 조금 다르다. 사원들은 모두 마녀에게 사로잡힌 채 영혼 없이 회사를 떠돌아다니며 기괴한 모양새의 사무실에 앉아 있는다. 퇴사는 자유롭지만, 그들이 퇴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죽음뿐이다.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세계 최고의 회사지만, 사실은 정수기의 물이 교체되지 않는다든가, 엘리베이터가 고장나 있다든가 하는 말도 안 되는 문제가 매일 터지고 있다. 심지어 입사한 지 채 하루가 안 된 주인공에게 회사를 지배하고 있는 마녀를 죽여달라든가 하는 어이없는 업무를 준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이런 중대한 업무를 성공적으로 끝내기 전까지 영영 퇴근하지 못하게 된다 (...) 어느 면에서 보면 최악의 회사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로보토미 코퍼레이션 <로보토미 코퍼레이션>
로보토미 코퍼레이션을 한 마디로 설명하자면 겉과 속이 다른 기업이라고 할 수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에너지를 공급하는 착한 회사로 보이지만, 실상은 고강도 업무를 종용하는 악덕 기업인 것이다. 로보토미 코퍼레이션의 직원으로서 해야 하는 일은 매우 위험하다. 바로 에너지를 뽑아내는 ‘환상체’를 총괄 관리하는 것이다. 단순 말단 직원으로 업무를 받는 것이 아닌, 관리자로서 직원들을 고용하고, 부서를 확장해야 한다.
죽어 나가는 것은 당신이 아니다. 그저 당신이 고용한 직원일 뿐이다! 한 번 죽은 직원은 게임답지 않게 되살아나지 못하고, 심지어는 갖고 있던 장비와 아이템도 함께 소멸한다. 탈출한 환상체들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직원들은 정신적인 붕괴를 겪고, 끔찍한 최후를 맞이한다. 관리자로 일하는 당신은 점점 직원들을 소모품으로 생각하게 되고, 할당량만을 채우기 위해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택하는 괴물이 된다.
위험에 뛰어드는 직원이 될지, 동료를 희생양으로 만드는 괴물이 될지는 당신의 선택에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