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탄이 나올 정도로 뛰어난 재능을 가진 이들을 두고 우스갯소리로 ‘악마의 재능’이라고 부르곤 한다. 그런데 19세기 유럽, 압도적인 천재성으로 정말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다는 오명을 뒤집어썼던 음악가가 있었다. 그 유명한 ‘라 캄파넬라’의 주인공, 니콜로 파가니니다.
오늘날 사람들의 사랑과 손가락질을 동시에 받는 연예인을 두고 악마의 스타성을 지녔다고 하듯, 파가니니 역시 신들린 기교와 뛰어난 연주로 유럽 전역의 사랑을 받았지만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다는 괴소문에 시달려야 했다.
그 소문은 죽음 이후에도 그를 괴롭혔다. 그는 자신의 고향의 교회에 묻히고 싶다는 유언을 남겼지만, 교회는 그가 악마와 거래했다는 얼토당토 않는 이유로 매장을 거부했다. 아들 아킬레 파가니니의 끈질긴 법적 싸움 끝에, 사망 36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묻힐 수 있었다.
뮤지컬 <파가니니>는 아들 아킬레 파가니니가 재판장에서 아버지가 악마가 아니었음을 증명하기 위해, 그의 삶의 궤적을 되짚어 나가는 구조로 진행된다.
1836년 파리, 이미 유럽 최고의 명성을 얻은 파가니니의 이름을 딴 ‘카지노 파가니니’가 개관 직전 허가가 무산된다. 동업자였던 콜랭은 모든 책임을 파가니니에게 돌리며 그의 재산을 노린다. 콜랭은 이단 심문관 루치오 아모스에게 파가니니가 악마와 거래했다고 거짓고발한다. 파가니니의 신들린 연주와 이에 현혹된 사람들의 모습을 본 루치오는 그가 악마라고 확신하며 콜랭과 함께 그를 압박한다.
이 작품에서 가장 인상적인 점은, 주인공 파가니니 역의 배우가 무대에서 실제로 파가니니의 곡들을 연주한다는 것이다. 수준급의 바이올린 실력을 가진 액터뮤지션이 니콜로 파가니니의 연주를 재현하며 감동을 선사한다.
특히 극 후반부, ‘라 캄파넬라’와 ‘24개의 카프리스’를 편곡한 7분간의 화려한 바이올린 독주는 왜 파가니니가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라고 불렸는지 단숨에 납득시킨다. 온갖 악기와 사운드가 섞인 음악에 익숙한 현대의 관객들도 깜짝 놀랄 정도인데, 19세기 당시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경이롭고 충격적이었을까.
이해가 가는 압도적인 독주였다.
압도적인 실력과 기교 때문에 죽어서까지 악마로 오해받았던 음악가. 파가니니는 그 자체로 극적인 서사를 가지고 있는 매력적인 캐릭터다.
그러나 극은 이야기를 확장하기 위해 파가니니 주변 인물들의 서사를 꽤 비중 있게 다룬다. 극을 이끌어가는 아킬레 파가니니, 콜랭의 약혼자이자 오페라 가수 지망생인 샬롯, 종교적 강박 속에서 악마를 처단하려는 사제 루치오 아모스까지. 인물 하나하나의 서사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며 극을 풍성하게 만든다.
다만 주변 인물들의 감정선과 맥락이 섬세하게 묘사되는 것에 비해, 주인공인 파가니니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솔로 넘버나 서사의 비중은 원톱 주인공 작품치고 부족하게 느껴진다. 주인공에게 공감하고 동화될 수 있는 장치가 조금 더 보강된다면, 전체 스토리와 주변 인물들의 내적, 외적 갈등의 설득력도 한층 생생하게 살아날 수 있을 것 같다. 매력적인 인물들과 넘버였지만,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 ‘파가니니’에 집중하기 다소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뮤지컬 <파가니니>를 보러 갈 이유는 충분하다. 여타 음악가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작품들처럼 넘버와 연기만으로 인물을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 바이올린 연주를 곁들여 도전적이고 대담한 방식으로 인물에 대한 강한 인상을 남기는 특별한 극이다.
당대 유럽을 뒤흔들었던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 파가니니의 음악이 선사하는 전율을 느끼고 싶다면 이 극을 놓치지 말길. 경이롭고 아름다운 바이올린 선율과 연주를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 화려한 연출이 더해져, 악마에 현혹되는 기분을 느껴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