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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모임에서 선정한 책이라 읽게 된 아베 아키코 작가의 소설 '카프네'이다. 평소 일본 소설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 처음에는 걱정이 앞섰지만, 페이지를 넘길수록 어느새 소설 속에 푹 몰입해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리고 책을 덮었을 땐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잔잔한 힐링이 찾아왔다.


'카프네'는 포르투갈어로 '사랑하는 사람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는 행위'를 뜻한다고 한다. 이 소설 속에서는 가사대행 서비스 회사의 이름으로 등장한다. 이는 남동생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일상이 무너진 누나 가오루코가 동생의 전 여자친구인 세쓰나를 만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다. 무너진 삶을 청소와 요리라는 '돌봄'을 통해 회복해 나가는 과정을 유쾌하면서도 따뜻하게 그려냈다.

 

까칠하고 무뚝뚝한 성격의 요리사 세쓰나는 '집안일에 질식할 것 같은' 사람들을 돕는 가사 대행 회사 '카프네'의 파트너다. 가오루코는 그녀와 얽히며 이 회사에 흥미를 느끼고 함께 일하게 된다. 둘은 어질러진 공간을 청소하고 정성껏 음식을 만들며, 타인의 고군분투가 담긴 공간을 정리한다. 그리고 함께 밥을 먹고 서로를 챙기는 일상을 통해, 상처 입은 두 사람의 세계도 서서히 변화하기 시작한다.

 

 

 

1. 회복할 수 있는 공간을 선물하는 '카프네'


 

'누구나 굶주리지 않고 매일 생활하는 곳에서 편하게 지낼 수 있어야 한다'는 지극히 개인적이고도 다정한 마음에서 '카프네'는 시작되었다. 쓰레기를 버릴 힘조차 남아있지 않은 이들을 위해 직접 찾아가 청소를 해주고, 그 사람의 취향과 상황을 세심히 반영해 맛있고 따뜻한 음식을 대접한다. 단순한 가사 노동 대행이 아니라 사람의 온기가 깃든 서비스라는 점이 내게도 큰 위로로 다가왔다.


사실 나 또한 일을 끝내고 집에 들어오면 완전히 녹초가 되어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싫을 때가 많다. 사회적 에너지를 밖에서 다 써버린 탓에, 정작 나 자신을 돌볼 에너지는 남아있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책 속의 '카프네'를 보며 나에게도 저런 다정한 손길이 찾아와 주기를 간절히 바라기도 했다.

 

 
그런 환경만 있다면 사람은 아주 조금이라도 회복할 수 있어요. 살아가기 위해 행동할 기력을 가질 수 있어요. 이게 카프네를 시작한 이유예요. p.103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남을 위해 청소를 하고 요리를 해주는 행위가, 결국 자기 자신을 돌보는 치유의 과정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세쓰나와 가오루코 역시 카프네 일을 하며 비로소 본인들의 삶을 돌보기 시작한다.


나를 돌보는 것의 첫 단추는 내가 머무는 공간을 깨끗이 정돈하는 것, 그리고 내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에 정성을 들이는 것에서 시작된다. 타인에게 좋은 사람으로 보이는 것보다, 스스로에게 가장 먼저 잘해주는 게 중요하다는 걸 머리로는 알면서도 참 실천하기가 어렵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지친 나를 더 많이 아껴주고 돌봐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지저분해진 방을 먼저 치워야겠다고도 느꼈다.

 

 

1층 쓰레기 수거장에 쓰레기를 버리러 가는 것조차 힘들었는데, 막상 시작했더니 청소에 푹 빠져서 저녁 무렵에는 집이 거의 원상태로 돌아왔다. 지금 당장 손님을 초대해도 문제없을 정도가 된 집을 둘러보며 오랜만에 상쾌한 기분을 느꼈다. p.93

 

상자를 펼쳐 끈으로 묶는 작업을 반복하다 보니 다다미 공간이 넓어졌다. 좋네. 노력으로 인생을 개척해가는 이 감각, 정말 최고다. p.121

 

미래는 암울할지도 모르지만, 달걀과 우유와 설탕은 어지간한 일이 생기지 않는 한 세상에서 사라지지 않아. 너는 너랑 엄마가 먹을 푸딩을 네 힘으로 언제든 만들 수 있어. p.133

 

다른 누군가가 자신을 구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자기 힘으로 과거의 자신을 구하며 어떻게든 살아갈 수밖에 없다. p.331

 

 

 

2. 우리는 타인에 대해 전부 다 알 수 있을까


 

이 책에서 가오루코와 죽은 남동생 하루히코의 관계를 보며 자연스레 나와 내 동생의 관계를 떠올렸다. 나는 내 동생과 정말 친하다고 자부해 왔는데, 가끔 동생이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면 못내 서운해지곤 했다. 소설 속 가오루코 역시 나중에야 남동생의 비밀을 알게 되고 큰 충격에 빠진다.


가장 가깝다고 생각하는 가족조차도 결국에는 나와는 다른 독립적인 인격체이자 타인이라는 걸 다시금 깨달았다. 독서모임 멤버들과도 이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한 사람에게 모든 부분을 이해받으려고 하지 않기에 도리어 모든 걸 보여주지 않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그리고 그것이 결코 나쁜 의도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라고.

 

 

여기에 여태 몰랐던 하루히코의 모습이 있었다. p.106

 

자신이 아는 세쓰나는, 그녀를 이루는 전체 중 몇 분의 일일까. p.176

 

 

가장 가까운 사람이 오랜 시간 비밀을 감추어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누구나 큰 충격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책 속에서 하루히코의 숨겨진 진실은 결국 누나를 깊이 배려하는 마음에서 시작된 것이었음을 보여준다. 침묵이라는 형태로 표현된 그 연약한 배려를 마주하며, 타인의 모든 면을 다 알지 못하더라도 그 안에 담긴 진심을 믿어주는 태도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하루히코는 속이려 했던 게 아니고 아무에게도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을 거예요. p.255
 

 

 

3. 사랑이란 매번 반가운 감정일까


 

사랑에 대해서도 깊이 고민해볼 수 있는 대목이 많았다. 막연히 '사랑을 받는 것은 무조건 좋은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작중 몇몇 캐릭터들이 넘치는 사랑을 받으면서도 전혀 행복해하지 않는 모습을 보며 사랑이 언제나 행복을 보장하는 수표는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부모의 사랑이나 주변의 기대가 과도하거나 잘못된 방식으로 전해질 때, 그것은 때로 숨 막히는 억압이 되기도 한다.


나는 평소에 돈이 많은 사람보다 주위의 사랑을 듬뿍 받는 사람들이 늘 부러웠다. 하지만 그 사랑이 당사자에게는 온전한 행복이 아니라 버거운 짐이 될 수도 있다는 새로운 관점을 얻게 된 순간이었다.

 

 

그러나 사랑받는다는 것이 애초에 뭘까. 필요한 사람으로 여겨진다는 의미라면, 지금 자신은 분명 아버지와 엄마가 필요로 하는 존재이다. 그런데도 이토록 허무하다. p.223

 

하루히코는 너무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았고 너무 많은 사람이 필요로 했어. 그런 일이 29년간 쉼 없이 이어져서 웃고 있었어도 사실은 지쳤었어. p.242

 

두 분의 그런 마음은 분명 사랑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오랜 세월 하루히코를 속박했던 것이기도 하다. p.338

 

 

 

4. 마치며


 

'카프네'는 타인을 향한 다정한 온기와, 소소한 연대를 엿볼 수 있는 소설이었다. '누군가 울고 있는 것을 봤을 때, 도와주고 싶어 하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다고 생각해요. (p.272)'라는 문장에 깊이 공감한다. 오랜만에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는 소설을 읽고 모임원들과 텍스트 너머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무척 다채롭고 풍성한 시간이었다.


마지막으로 내 마음에 가장 깊은 울림을 주었던 대화를 공유하며 글을 마치고 싶다. 책 속 할머니가 하루히코에게 건네는 말인데, 어쩐지 지금의 내 상황에 대고 다정하게 속삭여주는 것만 같아 순간 울컥 눈물이 고였다. 부디 이 글을 읽는 분들도 '카프네' 속에서 자신만의 따뜻한 위로의 문장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란다.

 

 

'할머니의 괜한 오지랖이지만, 너 자신에게 솔직하게 살고 있니? 네가 바라는 것, 원하는 것을 손에 넣으면서 살아가지 않으면 안 돼.'

(...)

'그래도 제가 하고 싶은 것과 주변 사람들이 저에게 바라는 것이 엇갈릴 때가 있어요.'

'그럴 때 선택해야 하는 건 네 마음이야. 네 인생도 네 목숨도 너만의 것이니까 너만이 어떻게 쓸지 정할 수 있어. 설령 누가 무슨 말을 하든 네가 생각한대로 하면 돼. p.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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