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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영화 <백룸>의
결말을 담고 있습니다.
영화 <백룸(Backrooms)>을 보고, 알 수 없는 찝찝함과 호기심에 휩싸였다. 사실 영화 자체에서 큰 재미를 느끼지는 못했지만, 신선한 충격과 아쉬움만큼은 오래 남았다. 영화를 본 뒤 여러 해석을 찾아볼수록 '백룸'이라는 소재에 흥미가 생겼고, 유튜브에서 감독 케인 파슨스의 과거 백룸 시리즈까지 감상하게 되었다.
귀신이나 살인마, 잔혹한 연출이 중심이 되는 기존의 호러 영화와 달리, <백룸>은 공간 자체를 공포의 대상으로 삼는다. 이 기묘한 작품은, 과연 어떻게 우리에게 공포감을 선사하는 것일까?
익숙한 것이 낯설게 느껴질 때
'리미널 스페이스(Liminal Space)'란 본래는 복도나 계단처럼 목적지로 향하는 과정에서 잠시 거쳐 가는 공간을 의미한다. 오늘날에는 의미가 확장되어, 놀이공원, 백화점, 아파트와 같이 본래 사람이 많고 익숙한 공간이지만 그렇지 않을 때 낯설게 느껴지는 공간을 뜻하기도 한다.
<백룸>은 이러한 리미널 스페이스를 다룬다. 밝은 형광등 아래 사방이 노란 벽지로 둘러싸인 백룸은, 흔히 노란색은 밝고 따뜻한 분위기를 떠올리게 하는 만큼 공포 영화의 전형적인 배경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현실에서도 한 번쯤 마주쳤을 법한 평범한 실내 공간에 가깝다.
바로 이 지점에서 '언캐니(Uncanny)'가 발생한다. 익숙해야 할 것이 낯설게 변하는 순간 불안감을 말한다. 낯선 공간이기 때문이 아니라, 익숙한 것이 미묘하게 어긋나 있기에 더욱 기묘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특히 현실에서도 충분히 마주할 법한 일상적인 공간이라는 점에서 공포는 허구에서 현실로 다가온다. 사람이 아무도 없는 지하철역 승강장에 홀로 서 있거나, 늦은 밤 학교 복도를 걸을 때 우리는 종종 불일치에서 비롯되는 위화감을 느낀다.
설명되지 않는 공간
영화는 다소 불친절하다. 공간도, 그곳에서 만들어진 정물도, 왜 존재하는지, 혹은 어떻게 발생하는지도 설명하지 않는다.
이미 익숙한 사물들임에도 괴리를 느끼는 이유는 배치에 있다. 미로 같은 공간을 헤매다 보면 용도를 알 수 없는 사물들이 불쑥 등장한다. 등장인물과 관련이 있는 듯하면서도 없는 듯한 물건들이 끝도 없이 펼쳐진다.
그중에서도 아무 설명 없이 덩그러니 놓여 전 세계의 언어를 반 원시인 등신대는 엉뚱하면서도, 기괴함을 자아낸다. 현대적인 복도에 생명력이 없는 가짜 모형은 인지 부조화를 일으키며, 단순히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불쾌감을 준다.
인간은 사물의 의미와 맥락이 이해될 때 심리적 안정감을 느낀다. 그러나 백룸은 그 맥락을 의도적으로 제거한다. 현실에서 충분히 볼 법한 사물인데도 왜 그 자리에 있는지 설명하지 않는다. 익숙한 물건이 제자리를 벗어난 순간, 공간은 더욱 낯설고 불안하게 변한다.
<백룸>은 저화질 캠코더의 1인칭 시점과 사운드로 몰입을 높여 특유의 긴장감을 극대화한다. 이 공간이 어디까지 이어지는지, 바로 다음 공간에 무엇이 있는지, 내 눈앞의 엔티티가 어떤 행동을 할지 어떤 것도 확신할 수 없다. '예측 불가능함'과 '알 수 없음'이야말로 영화가 만들어내는 가장 큰 두려움이다.
그렇기에 클락의 해적 엔티티가 본격적으로 등장했을 때는 직접적이고 순간적인 위협감은 있었지만, 오히려 기대했던 긴장감은 다소 옅어졌다. 백룸의 진짜 공포는 괴물보다도 공간이 품고 있는 미지성에 있기 때문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공간이 만들어낸 막연한 불안을, 괴물이라는 구체적인 대상으로 치환한 듯한 인상이 들어 아쉬움이 남았다.
공포감은 반드시 괴물에게서 오는 것이 아니다. 직접적으로 위협감을 주는 존재와는 달리, 백룸은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는 곳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미로 속에서 홀로 남겨진 고독감과 불안감은, 결국 공간 자체를 적으로 만든다.
괴담은 설명하지 않을 때 완성된다
작품의 모호한 결말을 두고는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 영화는 해적 엔티티에게서 벗어난 듯했던 메리의 일그러진 정물(still life)이 백룸 안에서 구현되는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메리가 정말 백룸을 탈출한 것인지, 아니면 여전히 그 안에 남아 있는 것인지는 끝내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애초에 영화는 백룸의 정체에 관해 말하지 않는다. 이를 연구하는 기업 '에이싱크'조차 그 본질을 알 수 없다고 말할 뿐이다. 명확한 해답을 제시하지 않는 결말은 호불호를 낳기도 했지만, 오히려 인터넷 괴담에서 시작된 '백룸'이라는 세계관에 어울리는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괴담은 모든 것을 설명할 필요가 없다. 설명하는 순간 신비를 잃기 때문이다. 반대로 설명되지 않은 공백은 사람들의 상상과 해석을 끌어들이며 작품을 더욱 풍부하게 만든다. 백룸이 하나의 인터넷 괴담을 넘어 지금까지 수많은 창작물을 낳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결국 <백룸>의 공포는 익숙한 공간을 낯설게 만들고, 그 낯섦을 끝내 설명하지 않을 때 비로소 완성된다.